[이대현의 영화세상] 배 보다 배꼽이 커지는 이유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이 올해 3/4분기까지 한국영화시장을 결산했다. 지금이 땅의 세상살이와 달리 ‘좋아졌다’ 일색이다.

관객(서울 기준)이 2,550만명으로 19.9%나 늘었고, 특히 한국영화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2.2%나 급증했다. 당연히 시장점유율도 39.9%로 늘었다. 새삼스러울 것도없다. 그동안 수없이 떠들어 왔으니까.

당연이 국내 배급사의 파워도 커졌다. 지난해 2위였던 시네마서비스가 한국, 외국영화를 합해 가장 많은 작품(16편)을 배급했고, 서울에서 544만6,00여명(21.4%)을 동원해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2위 역시 4위였던 CJ엔터테인먼트(12편에406만7,000여명)가 차지했다. 지난해 1위인 미국 직배사 브에나비스타는 6위로 내려 앉았다.

스크린수도 많이 늘었다. 지난해 720개 보다 40개가 많다. 그렇다고 좌석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다. 소규모 상영관을 여러 개 가진 멀티플렉스가 그만큼 많아졌다. 그런데도 관객이 늘어났다는 것은 객석점유율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그 뿐인가. 한국영화는 작품당 관객동원 능력도 커졌다. 흥행상위 30편중 한국영화는 12편. 편당 77만8,000명(서울)으로 과거 같으면모두 그 해 최고 흥행작으로 오를 만하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35편의 한국영화가 개봉한것을 감안하면 나머지 23편은 그야말로 참패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현상은 외화에도 나타나 올해 개봉작 198편중 상위 5%(10편)에 전체관객 47.2%(지난해 44.1%)가 몰려 ‘빈익빈 부익부’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영화제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단군이래 가장 많은 돈을 쏟아 부었다는 한국영화계.

그러나 작품편수는 늘어나지 않는다. 9월까지 25편. 현재 촬영 진행속도를 고려해도 지난해 59편 보다 크게 늘어날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편당 제작비가 늘어난 셈이다.

당연히 영화가 커졌다. 1998년 편당 평균 총제작비는 15억원. 그러나 올해는 27억5,000만원으로 커졌다. 제작비가 많아졌다는 것은 더 재미있고, 스펙터클하고, 알찬 영화를 만들었다는 의미도 되니 굳이 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씁쓸하다. 영화제작에 들어가는 순제작비는 12억원에서 16억8,000만원으로 40%정도 밖에 늘지 않은 반면 배급과 마케팅 비용(P&G)은 3억원에서 10억7,000만원으로 무려 340%나 증가했다.

물론 상영용 필름 프린트 비용이 많아졌다. 그렇더라도 340%는 포장비(광고, 홍보)가 그만큼 폭증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순제작비와 P&A가 2:1정도인데 한국영화는 1.6:1이다.

이러다가 한국영화는 배 보다 배꼽이 더 커져 버릴 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관객을 끌어 들여야 하니까 한번에 몇 억원짜리 이벤트, 온갖 비싼 경품, 마치 최고 작품인 것처럼 미사여구를 동반한 광고, 관객 부풀리기를 한다.

들인 돈에 비해 엉성할수록 심하다. ‘비천무’ ‘리베라메’ ‘단적비연수’가 그랬다. 블록버스터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예술영화까지 흉내를 낸다. 때론 5억원으로 만들고는 5억원의 광고를 한다.

영화를 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야 당연하다. 그러나 내용은 부실하면서 포장만 요란하다면 결국은 관객을 속이는 것이다. 과대포장은 또 그렇다 하더라도 심지어 내용물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진지한 주제를 담았으면서도 볼거리가 대단한 오락으로, 드라마이면서 화려한 액션물로 호도해 요란하게 선전하는 영화도 있다. 그것을 믿고 극장을 찾았다가 한동안 정서가 안 맞아 혼란을 겪거나, 심한 배신감으로 극장을 나오기도 한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은 판소리와 영상의 조화, 노(老)감독의 실험정신이란 중요한 가치를 자랑하지 못했고, 단순한 코미디라는 컨셉을 강조한 ‘플란다스의 개’는 참신한 감각과 영화어법을 무시했다.

‘흑수선’은 역사와 비극이란 주제보다는 화려한 액션으로, 세련되고 깊은 심리영화 ‘와니와 준하’는 순정 멜로라고 선전한다.

드라마 ‘토마토’의 김희선이 주연을 맡았으니까. 그래서 관객이 더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영화제작보다 요란한 포장에 돈을 더 쓰게 되고, 그럴수록 영화의 원래 가치를 잃어버린다면 슬픈 일이다.

이대현 문화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1/11/2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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