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경제서평] 2020년 기업의 문명

■2020년 기업의 운명
(패트리셔무디, 리처드 모얼리 공저, 이재규 옮김/사과나무 펴냄)

미래에 대한 예측은 이제 더 이상 호사가들만의 일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미래학자들이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어떤 식으로 변화할 지에 대해 많은 전망을 해 ‘미래학’은 우리에게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그래도 미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쩐지 뜬 구름 잡는 것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만 이제 미래 예측은 우리의 생존에 직결된 문제가 됐다. 얼마나 정확히 앞날을 내다보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라진다.

그러나 예측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상황이 너무나 빨리 변하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는 황당무계하게 여겨졌던 것이 현실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오웰의 ‘1984년’ 등을 생각해 봐라. 세상이 엄청난 속도로 변하는 요즈음, 미래 예측은 얼마나 가능할 것인가.

미국에서 잘 알려진 생산 및 제조분야컨설턴트인 패트리셔 무디와 무인공장 제어시스템의 핵심 도구인 프로그래머블 논리 제어기(PLC)에 대한 특허(이 기계의 최초 모형은 현재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를 가지고 있는 기술자인 리처드 모얼리가 공동으로 쓴 이 책은 2020년 제조업, 특히 공장의 모습을 그려본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미래 기업은 기술이 결정할 것이라는 점이다. 저자들은 ‘기술의 시대’가 도래해 ‘엔지니어가 지배하는 나라’가 된다는 것을 풍부한 사례와 탄탄한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앞으로 기업의 운명은 어떻게 되며, 그 일을 추진할 사람은 누구이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가에 관한 것이다. 원 제목인‘The Technology Machine’과 부 제목인 ‘How manufacturing will work in the year 2020’이 책의 내용을 함축해 잘 말해준다.

1800년대 후반 유명 제조회사들은 자사에 전기발전기 담당 부사장이라는 직책이 있다는 것을 자랑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 중요성이 격감했다.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20년 내에 소프트웨어 공학은 대학에서 널리 가르치지도 않는 교과목이 될 것이다. 요즈음 한창 각광을 받고 있는 MBA는 후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또 회사는 고객이 디자인한 것을 만들고, 소비지에 근접한 곳에서 생산을 하게 된다. 슈퍼마켓에서 딸기가 재배되고, 자동차는 전시장에서 고객이 원하는대로 조립될 것이며, 의약품까지도 고객에 맞추어 조제될 것이다. 저자들이 전망하는 2020년 사회 모습이다.

문제는 기술 혁신이다. 저자들은 기업인들에게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슘페터가 강조한 기술혁신을 통한 ‘창조적 파괴’가 되살아 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기술이란 다름아닌 돈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 보다 많은 시간을 돈에 대해 생각하면서 보내라고 충고한다. 돈이라는 짧은 수명의 제품을 어떻게 심고, 가꾸고, 그리고 재빨리 수확할 것인지에 대해 온 신경을 써야 한다. 이것이 저자들이 말하는 기술이다.

2020년 제조업 사회는 완전히 20대 80으로 분리된다. 기술 혁신을 통해 성공적으로 변신한 ‘우수성 집단’(20)과 ‘나머지’(80)의 두 종류 기업으로 나누어지고, 그 격차는 갈수록 커진다. 우수성 집단에 속한 근로자들의 인생은 장밋빛이지만, 나머지에 속한 사람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처럼 참담하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이 책이 그리는 미래상이다.

우수성 집단에 들기 위해서는 어떤분야가 강력한 기술적 발전을 할 것인지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저자들은 이를 127개 ‘와일드 카드’라고 부르고 있다. 이 카드는 기술은 제조 뿐 아니라 사회구조와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바꾼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몇 가지 흥미로운 것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020년의 승자는 규모가 작고, 무명 기업일 것이다. 패배자는 미국과 독일의 대기업들이다.

일본은 재무의 중심이지 제조의 중심은 아닐 것이다. 교육은 대기업이 담당할것이며, 이웃들과 경제적 격차는 급속히 커진다. 영어가 세계어가 된다. 말라깽이는 밀려나고, 뚱보가 득세할 것이다.(비만자 만세!)

이 책은 모든 것을 기술의 관점에서 보아 시각이 다소 편중된 점과 기술적 설명이 많아 일반인들이 읽기가 어렵다는 것이 흠이다. 그래서인지 책 말미에 주요 용어 해설을 붙였다. 그뒤에 실려있는 주요 회사 웹사이트는 보너스다.

이상호 논설위원

입력시간 2001/11/2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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