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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 먹구름, 김대중 대통령도 '숨고르기'

남북대화 먹구름, 김대중 대통령도 '숨고르기'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다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무리하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11월23일, 울산시 지역인사와의 오찬)“(6차 장관급회담 결렬에) 실망했다.

그러나 결코 절망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것(김정일 답방)에 대해 단언해서 말할 수가 없다.”(11월28일, 로이터 통신 회견)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햇볕정책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김정일 답방을 장담해온 김대중 대통령이 최근 엄청난 인식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통일문제에 관한 한 대단한 집념을 보이며 거침없이 내달려온 김 대통령이 ‘실망’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결코 심상치 않은 일이다. 햇볕정책은 후퇴할 것인가.


더 이상 대박은 없다

김대통령의 발언은 남북문제에서 욕심을 내지 않겠다는 일종의 ‘숨고르기’로 해석된다. 자신이 구상했던 남북관계의 비전과 시나리오를 임기 중에 어떤 일이 있어도 실현시키겠다는 고집을 접고, 현실을 인정해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돌아본 현실은 어떤가. 부시미 행정부의 등장과 911 대테러전 개시 이후 북미관계는 완전히 꼬였다.

이와 연계돼 6차 장관급회담이 깨지고 남북관계가 동결됐다. 정부 당국자는 “대통령은 북한이 테러정국을 극복하지 못하고 6ㆍ15 공동선언을 실천하지 못한데 대해 아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김 대통령이 필생의 과업으로 삼아온 남북문제를 지금의 교착상태로 마냥 방치할 것 같지는 않다.

김 대통령이 ‘무리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임기 내에 새로운 사업을 벌이지는 않되, 그 동안 추진해온 일들은 잘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정상회담과 같은 ‘대박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제2 장충식 만들기?

그러나 경의선 철도 복원, 금강산 육로관광등 남북이 합의한 사항들이 다시 추진되기 위해선 당국간 회담이 열려야 하는데, 6차 장관급회담의 앙금을 풀 계기가 없는 상황이다.

북측은 장관급회담 남측 수석대표인 홍순영 통일부 장관의 자격 문제를 노골적으로 제기했다.

“그(홍 장관)가 앞으로 우리의 대화상대가 될 지 검토하겠다”(11월14일, 대표단 성명), “실무진들이 합의한 사안에 대해 ‘남측에 돌아가면 문책을 받을 수 있다’면서 뒤집는 망동을 서슴지 않았다”(11월15일, 조선중앙방송 상보), “한나라당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것을 보면 야당의 통일부 장관인지 가려볼 수 없게 한다”(11월24일, 조평통 서기국 보도)등 홍장관에 대한 인신공격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북측의 비난은 지난해 11월 2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을 앞두고 벌어진 ‘장충식 파동’을 연상케 한다.

당시 북한은 대한적십자사 총재인 장씨의 모월간지 인터뷰 내용을 문제 삼아 장 총재와의 대좌를 거부했고, 결국 장씨의 퇴임으로 이어졌다.

어쨌든 북한의 홍 장관에 대한 태도는 회담 결렬의 책임공방과 맞물려 장관급회담의 재개를 가로막는 장벽이 될 전망이다. 정부 당국자는 “6차 회담의 결렬로 북한내 협상파의 입지가 크게 좁아지고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들이 득세하면서 긴장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정부 내에서는 장관급 회담을 당분간 포기하는 대신 대북사업 분야별 접촉으로 물꼬를 터보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홍 장관도 자신에 대한 북측의 비난을 의식한 듯 “장관급회담 보다는 분야별 회담을 통해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렇다면 어떤 분야의 접촉이 가능할까.


분야별접촉으로 남북대화 물꼬

아무래도 양측이 6차 회담에서 날짜와 장소까지 합의한 4차 이산가족 상봉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6차 회담에 참가한 한 당국자는 “북측이 이산가족 문제에 관한 한 ‘걱정하지 말라’는 언질을 여러 차례 줬었다”면서 무척 아쉬워 했다.

더욱이 남측은 이 문제가 해결돼야 대북 식량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북측이 태도를 바꿀 개연성이 높다.

금강산에서 행사를 하는 만큼, ‘남조선이 불안하다’는 명분도 안 통한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미 행사 재개를 제의할 준비를 마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는 이 행사가 순조롭게 열리면 자연스럽게 식량지원을 논의할 2차 경협추진위가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강산 육로관광 어려울 듯

그러나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등 나머지 굵직굵직한 사업들은 테러 정국이 계속되는 한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우선 경의선 철도 연결과 개성-문산 도로건설 사업. 일부 정부 당국자들은 북측도 이 사업에 기대가 큰 만큼 회담이 다시 열리면 잘 풀릴 것이라고 말한다. 남북은 지난 2월 비무장지대 공사와 관련한 군사보장합의서를 2월 체결했다.

하지만 북측이 합의를 해놓고도 정작 서명을 미루는 것은 하기 싫다는 뜻이라고 완전히 반대의 해석을 내놓는 전문가들이 더 많다.

금강산육로관광은 북측이 현대의 관광대가 미납금과 앞으로 대가지급에 대한 우리 정부의 보증을 요구하고 있어 당국간 회담이 열린다고 해도 쉽지 않아보인다.

북측의 요구는 사실상 우리 정부가 이 사업을 책임지고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금강산 사업에 관한 한, ‘정경분리와 시장경제원칙’을 선언했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결국 경의선 복원과 금강산 육로관광은 똑같이 비무장지대를 개방하는 문제이기때문에 북한 군부의인식변화와 암묵적 재가가 필요한 사안이다. 개성공단 사업과 임진강 수방 대책등도 마찬가지이다.


물 건너 간 김정일 답방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사실상 가시권을 벗어난것 같다. 올들어 무려 여덟차례에 걸쳐“올해중에 실현될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고 했던 김 대통령도 “단정할 수 없다”고 물러섰다.

일각에서는 김대통령의 언급이 서울 답방에 대한 ‘최후 통첩성’메시지라는 시각도 있지만, 어쩔수 없는 현실을 담담하게 말했다는 분석이 더 정확하다.

답방은 북측이 갖고 있는 ‘유일한 카드’이다. 때문에 북한은 DJ 정부 마지막까지 활용여부를 저울질 할 것이다.

그러나 북미관계가 개선될 전망이 미미한데다 최근 북한 군부의 강경자세등을 감안할때, 이미 시기를 놓쳤다는 시각도 만만찮다.

북측입장에선 김위원장 답방의 전제 조건이라 할 ‘서울거리의 대대적인 환영 인파’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년으로 넘어가면 지방선거, 월드컵, 대통령선거등으로 정치적 논란을 면하기 어렵다.


북한 위협론을 차단하라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 같은 위기상황에서 또 다시 ‘북한 위협론’이 득세할 경우 햇볕정책이 좌초할 가능성이다.

정부가 최근 부시 미 대통령의 대북 경고를 평가절하하고, 북한군 총격사건을 단순 오발사고라고 몰아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도 북한 위협론에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북한은 남측을 비난하면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우리에게 장관급회담 결렬의 책임을 물은 것은 ‘대화 중단’의 수순 밟기가 아니라, 대화의 문이 아직 열려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이 내년도 김정일 60회 생일(2월16일), 태양절(김일성출생 90주년ㆍ4월15일) 이전에 남북관계를 다시 제궤도에 올려놓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동준 정치부기자 djlee@hk.co.kr

입력시간 2001/12/0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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