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육상효 감독의 미국서 영화찍기

육상효(38)감독이 드디어 장편영화를 찍었다. ‘드디어’란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있다. 하나는 그가 기자(일간스포츠)를 그만두고 8년 반만의 데뷔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아이언 팜(Iron Palm)’이 2년의 산고를 겪었다는 뜻이다.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소극적 인간들의 억눌림을 코미디 장르로 분출시켜 보려는 욕망, 영화가 갖는 공명심 때문”이라고 했다.

‘장미빛 인생’ ‘금홍아 금홍아’ ‘축제’의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 ‘슬픈 열대’ ‘터틀넥 스웨터’를 만들고, 미국 USC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하면서 그는 그 ‘재미’와 ‘욕망’을 관객과 공유할 수 있는 방식을 배웠다.

그리고 2년 전 그는 ‘아이언 팜(Iron Palm)’이란 시나리오를 썼다. 2년 동안 투자자를 기다렸고, 한달 전에야 메가폰을 잡을 수 있었다.

“아이언 팜’은 5년 전에 헤어진, 바에서 소주칵테일을 만드는 여자 지니(김윤진)를 찾아 로스앤젤레스로 온 최경달(차인표)이란 남자의 사랑찾기를 담은 캐릭터 코미디다.

실제 주변인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학교과제로 쓴 시나리오였는데 의외로 주위의 반응이 좋아 데뷔작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마음의 고통을 손끝으로 치환해 견디는 ‘철사장’의 무모함이 우스꽝스럽듯 고통을 희화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언 팜이란 인물에게는 ‘불합리한 진지함’이 있다. 돈키호테처럼 현실성이 없지만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아이언 팜’은 100%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찍었다. 감독과 그의 아내이기도 한 라인프로듀서인 이윤정, 주연배우 3명(차인표 김윤진 박광정)을 빼고 모두 이방인들이다.

한국계, 중국계, 멕시코계, 체코계, 헝가리계, 이탈리아계, 그리고 흑인과 백인. 이렇게 다양한 인종들로 50여명의 제작진이짜였다. 인종전시장 같다. 공통점이라면 ‘영화’를 위해 모였고, 모두 영어를 쓴다는 것.

육상효감독은 “꿈을 찾아 세계에서 모여든 로스앤젤레스의 축소판”이라고 했다.

지니를 두고 아이언 팜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애드머럴로 나오는 배우 찰리 천은 미국에서 태어난 8년 경력의 재미동포 배우이다.

아버지는 KAIST에 근무한 유명한 과학자 천성순씨이다. TV드라마 ‘ER’과 영화 ‘덤앤 더머’ ‘딥 임펙트’ 등에서 조연으로 나왔다.

그는 현장에 대본을 갖고 나오지 않는다. 완벽하게 외워서 온다. 촬영감독 필 리는 중국계이다. UCLA 출신으로 ‘황혼에서 새벽까지 2’를 찍었다. 성실하고 민첩하다. 현장에서도 그는 감독의 의도를 정확하고 빠르게 받아들여 시간을 절약해 준다.

제1 조연출인 마티 베셀리치는 이탈리아계다. 할리우드에서는 조감독이 없다. 대신제1 조연출이 현장 진행감독이다. 할리우드에서는 거쳐가는 자리가 아닌 ‘전문직’이다. 그의 역할은 오직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것을 다 찍도록 현장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그들은 철저하다. 계획과 준비 없이 촬영 없고, 시간을 넘어 촬영 없다. 하루 12시간을 넘는 작업은 없다. 그마나 한국현실을 감안해 하루를 더한 6일을 일한다.

그래도 휴식시간은 철저하다. 반드시 12시간을 밤새 촬영을 하면 반드시 36시간을 쉰다. 촬영을 위해 장거리 이동하는 것도 근무다. 대신 빈들거리지 않는다. 일단 적은 돈이지만 계약을 하면 최선을 다한다.

“감독이 합리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다. 시간을 허비해 못 찍으면 그 장면은 잃을 수 있다”는 육상효 감독. 그러지 않기 위해 촬영을 단순화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외롭다”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영화제작문화가 부럽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영화촬영’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감독이 “몇시간 더 찍지”하면 대부분 그에 응하고, 또 으레 그렇듯 몇일 밤샘 촬영을 강행하곤 하는 한국영화.

그래서 영화를 찍는 동안 사생활이라고는 없는 현실. 노동조합이 없어서 일까. 아니면 문화의 차이일까. 너무 다르다. “일상생활속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 매일 일상처럼 시나리오를 쓰고, 하루 일정량을 찍고. 무슨 전투하듯이 하지 말고. 평생할 일인데.”

이대현 문화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1/12/2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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