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충북 단양군 대강면 죽령(竹嶺)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 줄기가 뻗쳐있어, 이 산줄기를 넘나드는 큰 고개가 이른바 죽령(689m)이다. 또 소백산 줄기는 남으로는 낙동강, 북으로는 한강물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죽령은 하늘재, 새재, 이화령, 추풍령 등 소백산 줄기의 큰 고개의 하나로 오르막길 30리와 내리막길 30리에 아흔아홉 굽이의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진덕여왕 때 술종공이 삭주(원주)도독이 되어 임지로 가던중 이곳에 이르렀을 때 한 스님이 고갯길을 닦고 있어 서로 칭송하고 헤어졌다.

어느 날 술종공의 꿈에 스님이 나타났다. 이상히 여겨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스님은 공이 꿈을 꾼 날 입적했다는 것이다. 이에 공은 이 고개의 북쪽 봉우리에 스님을 장사지내고 돌로 미륵불을 만들어 세웠다.

그런데 공의 꿈에 스님이 나타나던 날 공의 부인이 태기가 있었고 훗날 아들이 태어나자 죽지(竹旨)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이에 따라 죽령은 죽지령(竹旨嶺)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또 ‘동국여지승람’에는 신라 8대 아달라 이사금(阿達羅 尼師今) 5년(158년)에 죽죽(竹竹)이 이곳에 처음 고갯길을 열었다하여 고개 위에 죽죽사(竹竹祠)가 있었다는 데서 ‘죽령’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죽죽이 고개 전설은 연대에 차이가 있어, 그 신빙성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어찌되었든, 험하디 험한 이 죽령은 북쪽으로는 소백산국립공원, 단양군쪽으로는 단양 제2팔경인 죽령폭포, 영주시 관내에는 희방사와 희방폭포 등의 절경을 지니고 있어 오가는 길손들의 발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죽령 아랫고을 순흥에 기거하던 조선조의 대유학자인 주세붕은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는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를 죽령에서 맞으며 “나부끼며 돌아가는 어부같이/ 바로 긴 한강을 거슬러 왔네/ 오늘 죽령으로 돌아온 뜻은/ 천지만고의 강상이 아니랴!”라고 읊었다.

자동차를 타고 ‘S’자 커브길을 굽이굽이 돌아오르느라면, 자동차의 엔진소리와 승객의 호흡이 하나로 어우러져 숨이 턱에 와닿는다. 때문에 고개 정상에서 쉬어가기 마련. 달려온 길을 돌아 보느라면 산첩첩, 안개속에 아물거리고 고개너머 영남쪽을 바라보면 고개밑 풍기 고을에서 영주, 안동 고을까지 품고 있는 학가산이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죽령은 우리말의 ‘큰 고개’ 즉 ‘대재’가 한자로 뜻빌림 되면서 ‘대재-죽령(竹嶺)’이 된 것. 신기한 것은 이 큰재라는 뜻의 대재가 ‘대=죽(竹)’이 되어, 죽령이 되고 보니 마침 우리나라 자생 대나무(竹)의 북방한계선(北方限界線:동해안의 죽변-죽령-새재-추풍령을 잇는 선)과 맞아 떨어지고 있다.

우연의 일치라 하겠으나 대나무가 이 고개를 넘기 어려운 고개라서 죽령이던가!

그러나 영남과 충청, 경기, 강원을 가로지르는 중앙고속도로가 2001년 말에 개통되면서 나라안에서 제일긴 죽령터널(4.6km)이 뚫리니, 구절양장(九折羊腸)의 죽령고갯길도 옛 이야기가 되었다.

<사진설명> 죽령휴게소의 표지석. 우리말의 ‘큰 재’라는 뜻의 ‘대재’가 한자로 뜻빌림 돼‘죽령(竹嶺)으로 불리고 있다.

입력시간 2002/01/0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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