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정녕 너와 나, 그리고 이땅의 자화상인가" 外

■오태석씨의 신작 ‘지네와 지렁이’

장면 하나: “청천강, 진입 완료.” 그러나 잠시 뒤, 그들은 들켜 버렸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제 그들은 서로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또 하나: 폐광 관광 단지에 들어선 ‘카지노 남간도(南間島)’에서는 허황된 카지노판의 한켠에서 신체포기각서를 작성, 돈을 받고 자신의 장기를 팔려는 무리가 있다.

극단 목화의 ‘지네와 지렁이’는원로 극작ㆍ연출가 오태석씨의 우리 시대 한국 읽기이다. 1996년 9월 18일 01시 강릉 앞바다를 침투한 북한공비에서 강원도 폐광 단지의 풍경을 바꾼 자본의 위력까지,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새 시대, 더 이상 안고 살아 가선 안 될 것들에 대한 외침이다.

제목이기도 한 지네(蜈蚣)와 지렁이(地龍)는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성정(性情)을 상징한다.무대에서 지네는 꽃 같은 새악시 모습이고, 지렁이는 허연 영감의 형상이다. 이들은 남북으로 나뉜 반도땅에서 서로 잡아 먹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과, 그럼에도 이땅 어딘가에 살아 있을 희망의 끄나풀을 관객들에게 들이 민다.

마당놀이판의 말뚝이 대사를 연상케 하는 걸찍한 비판이 인상적이다. “황해바다 전체가 썩고 있다. 시화호도 썩고, 새만금도 썩고, 순천만도 썩고, 다 썩었지. 너도 썩고 너도 썩고 다 썩었지.” 오씨 특유의 4ㆍ4조 운율을 타고 현재 우리 산하의 참담한 실상이 쭉 엮여 나온다.

이어 한강 동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등 굵직한 하천과 각지역 지하수들의 등급을 쭉 읊어 가는 대목에서 객석은 일등국이란 말이 빛좋은 개살구였음을 느낄 수 있다.

카지노 바로 옆에는 대박 꿈을 접지 못해 피를 팔려는 사람들이 있고, 인천공항에는 장기를 팔러 일본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일본 간호사 앞에서 신체 포기 각서를 작성하는 장면은 어쩌면 일본을 닮아 가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 아닐까. 이 대목에서 관객은 일본어 대사와 맞닦뜨려야 한다.

그들에게 신장을 팔려는 16세 소녀가 통역을 통해 하는 말은 어느 구석에서는 절대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은근히 빗대고 있다.

“아빠는 당뇨로 고생하시고 남동생은 청각 장애인인데…” 또 일본인들이 기미 가요를 가르치자 자존심은 떼 두고 따라 부르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대일 관계에서 어딘지 주눅 든 우리와 닮아 있지나 않은지, 극은 다그쳐 묻고 있다.

말미는 다시 출발점, 무장 간첩들의 시신이 널부러져 있는 해안이다. 거기서 지네할미와 지렁이 영감이 노루귀꽃, 금낭화, 꿩의 바람꽃 같은 들꽃에 둘러 싸여 함께 살아 갈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막.

이 극은 진정한 한국적 연극을 찾아 30여년 세월을 쏟아 부은 오씨의 간단 없는 실험선상에 위치한다. 21세기 이후에도 그가 줄기차게 발표했던 작품들을 보자.

‘잃어 버린 강’은 꼭두각시극의 연극화를,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구 고전의 완전한 한국화를 화두로 내걸었던 근작이다.

특히 독일에 초청되기도 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완전히 새로운 해석으로 본고장 서구인을 감탄시켰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산대놀이의 연극화를 미학적 근간으로 한다. 정진각 김병춘 황정민 등 출연. 1998년, 2000년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받은 여배우 황정민의 구성진 연기가 볼 만 하다.

2월 17일까지 아룽구지. 화~금 오후 7시 30분, 토 오후4시 30분 7시 30분, 일 오후 3시 6시, 월쉼.(02)745-3966~7


[전시]



ㆍ 이응노 화백 '그리운 옛 풍경전'

동양화의 대가 이응노(1904~1989) 화백의 청장년기 작품을 모은 ‘고암 이응노의 스케치와 수묵 담채화-그리운 옛 풍경전’이 열린다.

전시작들은 전통적 동양화와 서예적 기법을 바탕으로 한 모방 시기(20대), 자연과 삶에 대한 사실적 탐구(30대)에 뿌리박은 작품들이다. 자연이나 일상의 풍경에 매료, 일련의 작품들을 창조해 낸 시기로 스케치적 수묵화나 수묵 담채화, 산수ㆍ인물ㆍ동물ㆍ식물 등을 단순화에몰두했다.

이 화백은 이후 자연에 대한 사의(寫意)적 표현(40대), 자유 분방하고 추상성짙은 파격미(50대)에 심취했다. 17~2월 7일 그로리치 화랑.


[연극]



ㆍ 희망을 이야기하자…청춘예찬

작ㆍ연출가 박근형씨의 출세작 ‘청춘예찬’이 다시 공연된다. 주정뱅이 아버지, 장님 안마사 어머니, 불량배 고등학생 아들, 간질병 처녀 등 사회의 최하층인들이 보여주는 스산한 삶의 풍경을 통해, 역설적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아버지가 홧김에 뿌린 염산에 눈이 먼 어머니는 안마일로 하루하루 연명해 간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따금씩 어머니를 찾아 가 얻은 푼돈으로 깡소주를 퍼마신다. 그 와중에 아들은 다방 레지와 관계를 맺는다. 거품을 물고 발작까지하는 그 여자는 무엇이든 할 테니 자신을 거두어 달라고 애걸한다.

여기에 불량 청소년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겹친다. 도저히 탈출구가 없는 것 같은 풍경이지만, 청년이 다니는 학교의 역사 선생은 매 100대를 후려 치며 인간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1999년 초연 이래, 강렬한 주제 의식과 탄탄한 연기 등 덕분에 백상예술상 등 갖가지 연극 관련상을 석권해 온 작품이다. 엄효섭 윤제문 천정하 등 출연. 2월 10일까지 학전 블루, 화~목오후 7시 30분, 금~일 오후 4시 30분 7시 30분.(02)760-4634


[콘서트]



ㆍ 함께 불러요, 우리 소리

N 세대를 위한 국악 마당이 펼쳐진다. 국립국악원이 29~31일 갖는 특별 무대‘함께 불러요, 우리 소리’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국악의 모습을 한 데 아우르는 자리다.

29일 가장 정통적인 국악이라 할 수 있는 궁중 음악 ‘여민락’과‘봉래의’로 무대를 연다(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

이어 ‘춘향가‘(29일 양명희), ‘심청가’(30일 유미리), ‘흥부가’(31일 이주은) 등 판소리 3마당이 펼쳐진다. 화려한 부채춤 무대도 준비돼 있다(국립국악원 무용단). 사물놀이 공연에 이어 이준호씨가 지은 창작 국악 관현악곡 ‘축제’가 현대화한 국악의 멋을 알려준다.

이번 연주회의 특징은 다함께 불러 보기 순서. ‘개골청’, ‘방패연’, ‘앙도토리’ 등 민요적 선율에 어린이들도 어깨가 들썩인다. 특히 ‘포켓 몬스터’는 어린를 위한 국악이란 어떤 것인지를 입증할 순서다. 성상희 국악교육원 대표 성씨가 직접 나와 노래를 지도한다. 매일5시 국립국악원 예악당.(02)580-3041


ㆍ 이 무지치 실내악단 내한공연

50년 역사의 이 무지치 실내 악단이 내한 공연을 갖는다. 파헬벨의 ‘카논과지그’,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직’ 등을 비롯, 이들 최대의 히트곡인 비발디의 ‘사계’ 등을 들려 준다. 22일 7시 30분 현대자동차 아트홀.(02)3464-4998


[영화]



ㆍ 이소룡을 찾아랏!

인디록의 대표 주자 크라잉 넛이 영화 ‘이소룡을 찾아랏’의 주연으로 변신했다. 그들의 공연 도중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자, 활동 무대인 홍대앞을 뒤져가며 범인을 찾기까지의 이야기다.

결국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시대 청년 비주류 문화의 일상이다. 대기업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알코올 램프로 끓인 설탕물로 머리를 세우는 모습, 낙원상가에서 악기를 훔쳐 달아나는 모습, 허드렛 엑스트라로 영화에 출연하는 모습 등 기성 질서를 비웃는 우리 시대 언더 문화의 실상이 적나라하다.

여고생만 노리는 긴 머리의 노출증 환자, 공연을 보고 나온 소녀의 시체등 파격적 내용이 기다린다. 별난 제목은 살인 현장에 이소룡과 관련한 표식이 항상 발견되는 데서 비롯했다. 2000년 ‘부천국제영화제’, 2001년 도쿄 ‘필름 X’ 등 독립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26일서울(아트선재센터), 부산(시네마테크) 동시 개봉

입력시간 2002/01/2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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