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이름으로 날 밀어주"

여권 대선주자들 젊은층 지지 확보 노린 개혁세력

2월 3일 오후 여의도 63빌딩. ‘새시대개혁연대’라는 시민ㆍ노동ㆍ학생운동권과 청년기업인 등이 모인 단체가 ‘386 정치개혁선언대회’라는 이름의 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대선주자 중 유일하게 초청받은 민주당 이인제 상임고문이 참석, 눈길을 끌었다.

권용목 현대그룹노조협의회 의장(전 민주노총 사무총장), 염동렬 반부패국민연대이사, 우정미 신지식인연합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고 김성희 전 연대삼민투위원장이 사무총장을 맡은 새시대 개혁연대측은 “이 고문에 대해 공식적 지지표명은 없지만 개별적 지지는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새시대 개혁연대는 사실상 이 고문을 지원하는 외곽단체로 이 고문이 진보적 색채를 강화하기 위해 조직화에 나선 것이다.

현재 당내 제1주자인 이 고문은 2위로 자신을 추격중인 노무현 상임고문에 비해 취약한 지지층이 대학생과 노조 세력 즉 소위 진보적 계층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때문에 취약층인 개혁세력을 조직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한 것이다.

소위 개혁세력이 주된 지지기반인 후보는 노무현 김근태 상임고문이다. 또 정동영상임고문 역시 개혁적 이미지로 무장, 지지기반이 겹치고 있다. 이들은 당내 기반이 약한 반면 당외 개혁적 성향의 젊은 층이 자신을 지지한다는 점을들어 국민참여 경선제에서 우위를 예견하고 있다.


노고문등 개혁 이미지에 이인제측 긴장

대표적인 경우가 노무현 상임고문이다. 노 고문은 3일 경선주자 중 가장 먼저 지역경선본부로 ‘통합과 도약을 위한 국민후보 노무현 추대위원회’ 제주본부 발대식을 가졌다.

각 지역의 재야개혁세력을 주축으로 “지역주의를 극복할수 있는 국민후보로 노 고문을 추대”하는 형식을 빌려 경선본부를 잇따라 발족시키고 마지막으로 서울 본부를 발족시킨다는 것이 노 고문측의 계획이다.

즉 원내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의원 몇 명을 꼽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당내 지지기반이 허약한 노 고문은 중앙선거대책본부는 설치 하지 않은채 지방에서부터 재야세력을 기반으로 경선본부를 꾸리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 “당외 지지기반은 우리가 가장 튼튼하다”고 주장해 온 노 고문 캠프의 과시가 허풍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노 고문을 지지하는 네티즌 후원회도 어느 주자보다 일찍, 튼튼하게 조직화가 돼 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약칭 ‘노문모’는 전국적으로 약 7,000명의 회원이 가입해 지역별로 모임을 갖거나 노 고문과 인터넷 토론회를 갖는 등 활발히 활동중이다.

이들은 대체로 3당합당때 YS를 따라 가지 않고 부산에서 민주당 간판을 걸고 출마해 낙선하는 등 노 고문의 소신행동에 반한 젊은 지지층이 많다.

문화예술인들도 노 고문 지지를 표명하며 모였다. 영화감독 정지영, 이창동씨, 연극 연출가 이상우씨, 영화배우겸 제작자 명계남씨, 박재동 화백, 가수 정태춘씨, 배우 문성근씨, 음악평론가 강헌씨,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교수, 김종선 정책전문가 등이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약칭 ‘노문모’)을 결성, 공식적인 지지를 밝혔다.

사실상 이인제상임고문측은 노 고문측이 민노총 등 거대 조직을 포섭할 가능성에 대해 가장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에 대한 견제수단의 하나로 이 고문은 한국노총간부를 중심으로 5,000명 회원이 속한 ‘21세기 노동연구회’의 고문을 맡아 노조위원장들과 접촉을 놓지 않고 있다.

오래 민주화운동을한 김근태 고문 주변에도 전통적인 개혁세력이 포진해 있다. 일단 경선캠프로 활용하는 ‘한반도 평화와 경제발전 전략 연구재단’(한반도재단)은 외교통상부에등록된 공익법인으로서 현역의원 40여명 외에 김진홍 두레교회 목사,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소설가 조정래씨 등이 참여하고 있다. 또 정치 경제사회 교육 문화분야 교수들이 정책전문가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또 ‘김근태의 친구들’이라는 뜻의 근우회(槿友會)도 재야인사들의 모임. 3개 근우회 중 원조격인 광주 전남 지역의 근우회에는 지선스님,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등 호남 재야인사를 중심으로 한 500명의 후원자들이 모여있다.

이밖에 서울대 상대 근우회와 경기고 근우회가 나머지 근우회들이다.

정동영 고문 역시개혁세력을 잡기 위해 노력중이다. 자금과 조직이 부족한 정 고문은 자원봉사단 형식의 새로운 선거운동조직화 실험에 나섰다. 4일부터 각 지역에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모집 캠페인을 벌여 ‘정치혁명 국민행동 자원봉사단’을 조직할 예정인데, 노 고문과 마찬가지로 개혁성향의 젊은 지지층을 흡수하겠다는 의도다.


소장파, 개혁후보 단일화 움직임도

이렇듯 개혁성향을 강조하는 노무현 김근태 정동영 고문은 원내 지지기반도 거의 겹쳐 간혹 아니러니컬한 상황을 연출한다.

소장파 의원들은 세 주자 중 누구를 확실히 지지한다고 밝히지 못한 채 후원회마다 겹치기 출연을 하거나 또는 2명 이상의 주자들에게 공동지지를 밝히고 양해를 구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예컨대 천정배 신기남 의원 등 정 고문과 함께 바른정치모임에 속한 재선의원들은 정 고문의 제주 대선출정식에 얼굴을 보인 동시에 각각 노 고문과 김 고문 지지를 밝히고 있다.

세 주자는 물론, 이인제 고문으로부터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임종석 의원은 고민 끝에 김 고문 캠프에 합류했다.

김태홍 의원은 “노무현 김근태 정동영 고문과 함께 한화갑 고문과도 친하다”며 곤혹스러움을 표했다. 그는 “곧마음을 정해 한 캠프에 합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내 소장파 의원들이 세 주자의 단일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이와 무관치 않다.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는 대선후보선출을 위한 지역순회 경선이 본격화하기 전인 2월말까지 한명의 개혁후보로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퍼지고 있다.

천정배 의원은 “지금의 개혁후보 단일화는 1987년 양김의 단일화만큼이나 우리 정치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며 개혁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임종석 의원은 “당내에서뿐 아니라 당 바깥의 운동단체 등에서도 단일화요구가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후보 단일화론은 한 주자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 한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다. 대선주자들 사이의 개혁세력 공략은 당분간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김희원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2/02/06 16:20


김희원 정치부 h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