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흥행 성적 맞추기, 그 오류의 원인

“무조건 500만 명” “죽었다 깨어나도 10만 명”

영화 시사회가 끝나고 나면 제작자나 감독, 배우는 흥행여부에 대해 묻기 바쁩니다. 그러면 저마다 자신있게, 혹은 아주 조심스럽게 이렇게 예상 관객을 이야기해 줍니다. 어떤 사람은 냉정하게, 어떤 사람은 듣기 좋으라고 부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예상은 빗나가기 일쑤입니다. 특히 안 되는 영화는 쉽게 알 수 있어도 되는 영화는 그 규모를 알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위험성 높은 일종의 투기산업인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치밀한 시장분석, 관객 기호, 마케팅으로 어느 정도 과학적 분석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게 영화 흥행”이라고 영화인들은 말합니다.

그만큼 영화흥행은 한 두 가지 요인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영화를 잘 만들어도 스타가 없으면 외면 당하기도 하고, 스타가 있어도 때를 잘못 만나면 망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 반대도 비일비재합니다. 완성도도 떨어지고, 큰 배우도 없는데 수백만 명이 몰려 세상을 놀라게 하고 충무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대박’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반대에도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예상이 빗나가는 것은 그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데 있습니다. 때론 터무니 없는 착각이 터무니 없는 예상을 낳고, 그것이 틀리면 “이해 할 수 없다”며 관객을 폄하하거나 다른 것에 이유를 돌리는 한심한 모습도 보입니다.

물론 ‘친구’ 나 ‘엽기적인 그녀’처럼 재미와 완성도가 뛰어나 누가 봐도 흥행성공을 점칠 수 있는 작품만 ‘대박’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와 관련해 최근 가장 기분 좋았던 경우는 ‘조폭마누라’ 였습니다. 시시회가 끝나고 기자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한심하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작자에게 자신있게 “전국 400만 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의기소침해 하던 제작자는 처음에는 기분 달래기 위해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조폭영화 유행이 가진 소구력도 중요했지만 남성 권위주의에 대한 전복적인 쾌감과 사회분위기에 따른 관객들의 심리를 연관시킨 예상이었습니다.

당시(지난해 추석) 그것은 영화적 유치함과 완성도 보다 훨씬 흥행에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결과 역시 그대로 적중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영화에 대한 호(好), 불호(不好)와 별개였습니다.

그 반대 결과로 창피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화산고’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대뜸 “500만 명”이라고 흥분했습니다. 이유는 새로운 감각, 형식, 액션이 꽤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10대는 만화적 감각으로, 30대이후는 무협지에 대한 향수로 폭 넓은 호응을 얻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기존 형식과 이야기 구조의 파괴와 후반 지루한 액션으로 20대이상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여성관객의 무관심도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반지의제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도 실수였습니다.

요즘 상영중인 ‘공공의 적’의 흥행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공공의 적’을 보고 나는 200만~250만 명을 예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잘 만들고 힘과 재미도 있고 사회성도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18세 관람가 등급에다 지금의 젊은 관객들이 10년 전 ‘투캅스’의 매력과 재미를 그다지 알지 못하며, 그들에게는 오히려 조재현 효과까지 톡톡히 보고 있는 김기덕 감독의 ‘나쁜남자’가 매력적일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강 감독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물론 이 예상이 틀릴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실제 흥행 성적 추이와 상관없이 충무로에서 그 예상치가 높아 가고 있습니다. 흥행은 중요하지 않다는 강우석 감독도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겠다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객관적인 시장분석에 의한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영화가 이렇게 좋은데 1,000만 명은 든다” “아니면 다른 곳에서 잘못했기 때문이다”는 식으로 주변에서 심어준 환상 때문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모두 강우석의 돈으로 영화를 만들거나 만들 사람입니다. 아부성 발언이 아니라고 칩시다. 그래도 넓게 보면 한 식구로 감정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입니다.

오류는 자기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아부와 솔직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옵니다. 영화뿐 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현실을 둘러보면.

이대현 문화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2/02/0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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