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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 하천' 살려낸 대포천 사람들

'똥물' 흐르던 개울11개월만에 1급수로, 전국 첫 '수질계약제' 도입

“시궁창이나 다름없는 개울물을 살리지 못하면 우리가 죽는다는 각오로 주민들이 똘똘 뭉쳐 1급수로 만들었습니다.”

부산시의 상수원인 낙동강 매리취수장에서 불과 5㎞ 떨어진 경남 김해시 상동면 대포천.

마을뒤 신어산에서 발원해 상동면 일대 9㎞를 흐르다 낙동강으로 빠지는 이 하천은 10개 마을 1,500여가구 4,300여 주민들의 생활하수가 흘러드는 하수천으로 1960년대부터 오염되기 시작돼 시궁창이나 다름없는 ‘똥물’로 전락했다.

1997년 봄. 공업용수로도 사용할 수 없는 4~5급수의 ‘죽음의 하천’에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낙동강 특별법’에 반대, 하천살리기 나서

대포천변 상동면 일대를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낙동강 특별법‘이 입법 예고됐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낙동강변 5개 읍ㆍ면지역 주민들은 ‘상수도보호구역지정반대대책위원회’를 결성해 2개월여 동안 반대운동을 벌여왔다.

대안없는 반대운동이 대다수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하자 대포천 주민들은 “대포천을 살려놓고 행정당국에 보호구역 해제를 요청하자”며 같은해 4월 반대대책위원회를 ‘대포천수질개선대책위원회’로 간판을 바꾸고 대대적인 정화운동에 나섰다.

당시엔 축산농가만해도 67곳에 돼지 3만8,000마리, 소 815마리나 됐다. 게다가 공장이 326곳, 음식점도 76곳에 달했다. 이처럼 많은 오염원들이 각종 폐수를 대포천으로 흘러 보내고 있어 남들은 ‘어림 없는 일’이라고 비웃었다.

대포천 살리기를 주도했던 김해시수질개선대책협의회 이봉수(47ㆍ상동면 대감리 487)회장은 “시청직원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 조차 40년 이상 더럽혀져 온 대포천의 회생을 확신하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걸레질 하듯 닦아낸 하천바닥

그러나 대포천의 보호구역 지정은 생계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주민들도 오염원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가구당 월 2,000~3,000원의 ‘수질개선기금’을 내 3,000만원의 적지 않은 돈을 마련해 유급 감시원 2명을 대포천에 배치하고 수계별 하천감시단 3개반(18명)을 구성, 축산오물과 공장폐수의 무단 방류 감시에 들어갔다.

또 하천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축산 오물을 아예 씻어내기로 하고 포크레인을 동원해 하천바닥을 긁어내는 등 바닥을 걸래질하듯 깨끗이 닦아냈다.

주부들도 합심했다. 농협구판장을 통한 세제판매 안하기와 세제덜쓰기 운동을 벌이는 한편 빨래도 세탁기 대신 손빨래를 하고 1~2주에 한번씩 모아서 했다. 오ㆍ폐수의 양을 최대한 줄이면서 하천의 자정능력도 키워주는 조치였다. 나아가 하수가 흘러드는 어귀마다 미나리도 심었다.

주민들은 이와함께 하천을 구역별로 묶어 지역 제조업체에 정화구역으로 배정해 동참을 유도하면서 매주 한차례씩 범 면민 하천정화활동도 벌였다.

대포천 살리기를 반신반의했던 김해시도 음식물 쓰레기가 하천으로 흘러들지 않도록 각 가정과 식당에 간이침전조 (451곳)를 설치, 주민들에게 힘을 보탰다.

주민들의 눈물겨운 이 같은 노력끝에 불가능할 것 같았던 대포천 수질은 1998년 2월 수질검사에서 1급수 판정을 받았다.

불과 11개월여만에 일궈낸 ‘대포천의 기적’이자 한국환경운동사에도 큰 획을 긋는 ‘대 사건’이었다.

검붉은 색의 냇물은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맑아졌고 가재와 재첩이 살아나고 멸종위기에 처한 조개류와 물고기들이 돌아왔다. 다시 살아난 대포천은 주민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이어지면서 97년말 BOD(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 6.3ppm에서 2000년 11월에는 0.3ppm으로 향상됐다.

이처럼 1급수 수질이 유지될 경우 법률상 상수원보호구역에서 제외된다.


김해지역 낙동강변으로 번진 생명운동

주민들은 자신의 재산권을 되찾고 친환경농법을 통한 고품질의 농산품 생산의 발판을 마련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대포천 사람들의 성공담은 전국적으로 성공적인 환경운동 사례로 꼽혀 벤치마킹 행렬이 줄을 잇고 있으며 김해지역 낙동강변 5개 읍ㆍ면으로 확대돼 98년 김해시수질개선대책협의회로 확대 개편돼 모든 지역의 하천수질이 1급수 수질에 육박하는 성과를 올렸다.

환경부도 주민들 스스로가 상수원의 수질을 1급수로 보존하는 것을 전제로 해당 지역에 대한 상수원 보호구역 지정을 유예, 주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이른바 ‘수질 계약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대포천 살리기를 주도했던 이봉수 회장은 “대포천살리기는 주민들의 힘으로 하천을 살려내 규제일변도의 환경정책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면서 “대포천 살리기 운동을 친환경영농운동으로 승화시켜 환경농업의 메카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동렬 사회부기자 dylee@hk.co.kr

입력시간 2002/02/2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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