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베를린 영화제의 독일영화 사랑

베를린 영화제의 독일영화 사랑. 당당하고, 적극적이며, 실천적이었다. 국제영화제에서 자국영화 사랑이라니. 그것도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에서. 그러나 올 베를린 영화제는 한 손에는 ‘다양성의 수용’을, 또 한 손에는 ‘독일영화 사랑’을 움켜쥐었다.

독일의 거장들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그동안 외면했던 젊은 독일영화의 실험성과 파격성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며, 미래의 독일영화를 짊어질 인재들을 발굴하는데 눈을 돌렸다.

지난해 5월, 프로듀서 경력 20년의 디터 코슬릭이 새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스위스의 모리스데 하들렌과 달리 그는 베를린 영화제를 독일의 품으로 가져왔다. 처음부터 그는 “나의 목적은 독일영화 산업의 부흥과 정체성 찾기, 그리고 독일영화의 시장성 회복”이라고말했다.

1960년 뉴저먼시네마 이후 날로 추락한 독일영화. 국내에서조차 시장점유율이 10%대에 불과한 독일영화.

현실이 이러한데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를 열면 무엇하나. 정치적인 이슈에 매달려 세계 최고작을 뽑고 상을 주면 무엇하나. “독일영화 없는 베를린 영화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인식이고 선택이다. 프랑스 칸도, 이탈리아 베니스도 넓게는 세계 영화제이지만 좁게는 ‘자국 영화발전의 장’이다. 하물며 할리우드 영화축제인 아카데미 영화제야 말할 필요도 없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 개막작은 독일 톰 티크베르 감독의 ‘헤븐’. 티크베르 감독이 누군가. 독일의 전통 영화양식을 파괴한 ‘롤라 런’의 괴짜 감독이다.

세계 영화계는 “과거 같으면 베를린 영화제 문턱에도 못 올 인물”이라고 놀라했다. 본선 경쟁작에도 5편의 독일영화(합작 포함)를 참가시켰고, 38세의 젊은 감독 크리스토퍼 로스의 ‘바데르’에혁신적인 작품에 수여하는 알프레드 바우어 상을 안겼다.

그뿐 아니다. 독일의 대표 감독인 빔 벤더스의 새 음악영화 ‘쾰른송가’를 비경쟁에 초대해 선보이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독일영화의 전망’이란 특별섹션을 신설해 30대 젊은 감독들의 작품 13편을 소개해 그들의 해외시장 진출 가능성을 타진했다. 내년부터는 ‘베를린 탤런트 캠퍼스’를 열어 유럽 영화인들과의 교류와 교환을 통해 독일영화의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전략도 내놓았다.

그러자 독일 정부도 베를린 영화제를 힘껏 돕겠다고 나섰다. 당장 올해 영화제예산의 70%인 70억원을 지원했다.

당당하고, 아낌이 없다. 누구도 그들의 자국영화 사랑을 이기주의나 배타주의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잔치라는 것이 내 것이 없으면 떳떳하지도, 알차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영화제는 어떤가. ‘아시아영화의 창’이면서 “아시아 영화가 진정 무엇인가”라는 고민과 질문이있는가. 유럽영화제, 유럽 스타일에 대한 숭배와 모방이 아시아 영화의 예술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부산 프로모션플랜(PPP)이 있지만 한국 영화 제작현장과 근본적인 소통관계가 정립돼 있는가. 그것에 대한 고민과 전략을 생각하고 있는가. 완성해 놓으면 골라서 상영하는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는 게 아닌가.

유럽은 우리의 영화제를 너무나 좋아한다. 영화 관계자들은 언제나 환영 받는다.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그랬다. 부산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프로그래머들이 ‘칙사’대접을 받았다.

우리의 영화제가 권위 있기 때문에? 아니면 그들과 친해서? 아닐 것이다. 우리 영화제만큼 아시아에 그들의 영화를 소개하고 팔 수 있는 ‘멋진 전시장’이 어디 있을까. 유럽영화제에서 수상했다면 초청해 상영해 주고 있으니 당연하다.

그것에 취해 “야, 우리 영화제도 대단해”라고 착각에 빠질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수상작을 초청하느냐가 아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배워야 할 것은 자국영화 사랑, 그 이유와 방법이다.

이대현 문화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2/02/2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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