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변방 '촌뜨기'에 당한 세계 최강

'철의 수문장' 섭위평의 중일 슈퍼전①

“어이, 기자들 들어오라고 그래요.”

때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1987년 4월. 무대는 일본의 사학(私學)회관. 고즈넉한 저녁을 맞을 즈음 한 사내의 입에서는 힘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구름같이 몰려든 일본 중국의 기자들이 뿜어내는 플래시로 홀 안이 대낮처럼 눈부시게 밝았다. 호탕한 기다니(木谷)가의 대형(大兄)인 오다케 히데오(大竹英雄)는 힘없는 소리로 그가 즐기던 스타일대로 불계패 선언을 한다.

그의 맞은 편에 앉은 미련한 곰같이 촌스런 사나이는 연신 담뱃불을 붙이며 기나긴 여정을 걸어온 후 나그네답게 폐부 깊숙이 담배연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도 사람인지라 손길은 떨리고 있었다.

‘북경의 반달곰’에서 ‘철의 수문장까지’…. 바로 역사에 남을 대스타가 떠오르는 순간이요 중국 바둑이 베일을 벗고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다. 그 정점에는 바로 중국 바둑의 대부 섭위평이 우뚝 서 있었다.

1986년부터 시작된 중일(中日) 슈퍼 대항전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일본이 그렇게 한낱 변방의 고수쯤 된다고 믿었던 ‘애송이’ 중국 팀에게, 아니 촌뜨기 한 명에게 그렇게 짓밟힐 줄은 몰랐다.

1회 대회는 그냥 한번 실력차를 점검해본다는 뜻으로 나왔지만 전력만은 최고 수준이었던 일본 팀을 막판 내리 3연승으로 보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이 방심의 허를 찔린 것이라고 믿었다. 중국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87년 벌어진 제 2회 때는 중국의 마지막 주자로 또 나선 섭위평은 한술 더 떠서 막판 5연승으로 벼랑 끝에 몰린 중국 팀을 그야 말로 사지(死地)에서 구해냈다.

중국 바둑의 얼굴이 된 섭위평이다. 3회 때도 섭위평은 3연승을 또 올렸으니 도합 중일 슈퍼 대항전에서만 11연승을 올린 것이다. 섭위평이 거둔 성적 11연승은 지금까지 세계 대회가 만연한 지금까지도 최다연승 기록으로 남아있다.

돌이켜보자. 서봉수가 기록한 진로배 9연승도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지만 중일슈퍼 대항전 거둔 11연승은 그에 못지 않은 성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서봉수의 진로배 9연승을 더 쳐주겠지만 바둑계 전체로 보아서는 역시 역사적인 전설적인 사건으로 기록한다. 아마 한국기원 발행 월간 바둑에서도 서봉수의 진로배보다도 상위에 꼽는다.

세계 대회도 아니고 일개의 친선 대회인 중일 슈퍼전이 이처럼 각광을 받는 이유는 과연 무얼까.한마디로 세계 최강이라고 일컫던 일본바둑을 코가 납작해지게 만든 대 사건이라서 그렇다. 1회 대회 때 섭위평의 서슬 퍼런 숨은 칼날에 다친 이는 일본의 대표 주자였던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 가토 마사오(加藤正夫),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

2회 때는 가다오카 사토시(片岡總), 야마시로 히로시(山城宏), 사카이 다게시(酒井猛),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오다케 히데오(大竹英雄)였다. 이름만 들으면 일본 대표의 드림팀이라 할만한 주자들이다. 그들이 모조리 쓰러진 것이다. 삼류 무협활극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리라. 주인공을 핵으로 빙 둘러선 무림의 검사(劍士)들이 주인공을 칼끝으로 겨누고 있는 장면 말이다.

그리고 긴박감이 잠시 흐르고 나면 괴성과 함께 주인공의 검이 허공을 가르고 난 후 돌아보면 단칼에 베어져 있는 코미디 같은 삼류 영화 말이다. 바로 만화 같은 장면을 연출한 이가 섭위평이다.


[뉴스화제]



●목진석 과연 이창호 꺾을까?- 기성전 2:2 팽팽

3월 4일 한국기원 특별 대국실에서 벌어진 제13기 현대 자동차배 기성전 도전 4국에서 이창호 9단은 도전자 목진석 6단을 135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중간전적 2승2패로 동률을 기록, 남은 한판에서 최후의 승자를 가리게 되었다.

현재 이창호 9단이 9년 연속 타이틀 지키고 있다는데 만일 목진석 6단이 타이틀을 획득할 경우, 비 4인방 기사로선 이창호를 상대로 도전기에서 승리하는 최초의 기사로 기록 될 것이다.

이 9단의 대회 10연패 타이틀 방어인가, 목 6단의 타이틀 획득인가를 결정할 도전 5국은 3월 28일 열릴 예정이다. 이 9단은 목 6단을 상대로 통산전적 11승 4패를 기록하게 되었다. 우승 상금 2,200만원.

입력시간 2002/03/12 13:51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