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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논쟁] 반대/ "박근혜는 원죄가 너무 많다"

[박근혜 논쟁] 반대/ "박근혜는 원죄가 너무 많다"

최보은씨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박근혜 논란’에 발을 담그게 된 내 마음은 한없이 불편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처음에는 도무지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사회적 불합리에 대해 용감하게 발언해 왔던 몇몇 여성들이, 농담이 아니라, ‘여성의 주류화’를 앞당기기 위해서 박근혜를 지지하겠다고 정색을 하고 나서는 것이 대체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최씨의 주장에 어떤 심리적 절박성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죽했으면’ 이런 궁리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마음자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나를 너무나 괴롭혔다.

결국 여성이 정치 영역에 뛰어들어 독자적인 권력을 구축하기 전에는, 한국의 후진적 여성 상황은 좀처럼 바뀌지 않으리라는 조바심은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왜 하필 박근혜인가. 꼭 이런 방식으로, 원칙을 어겨 가면서 판을 벌리는 방법 밖에는 없을까.

백보 양보해서, 박근혜 지지 발언이, 앞으로 박근혜 정도의 대중성을 누리는 여성 정치인이 쉽게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조바심 때문에 박근혜의 대선출마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을 이용해서 여성의 정치 문제를 이슈화 하려는 전략적 사고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라고 인정하더라도, 그 정황의 비루함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

박근혜가 생물학적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투사되는 1970, 80년대의 야만적 가부장적 멘탈리티에게 면죄부를 발부할 셈인가. 그녀가 대통령이 되어, 여성들의 상황이 좋아진다면, 지금까지도 박정희의 독재를 신화로 포장하기 바쁜, 우리 사회를 괴롭히고 있는 수구 기득권 세력의 퇴행적 세계관을 용인할 참이라는 말인가.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나는 개인 박근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녀는 보수적 입장의 정치인 치고는 여러 가지 분야에서 비교적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정치행동을 보여 주었다.

한나라당의 개혁을 요구하면서 탈당까지 불사하는 모습은 신선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가 여성의 이름으로 박근혜를 지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박근혜의 개인적 자질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정치적인 상징 지분의 위험성 때문이다.

박근혜를 지지하겠다는 여성들은 그녀를 이제는 독자적 정치인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도 박근혜에게 박정희의 과오의 모든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녀를 독자적 정치인으로 여기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그녀가 박정희의 유산을 단호하게 정리한다는 전제조건을 만족시켜 줄 경우이다.

박근혜는 독자적 역량으로 빠른 시일에 거대 야당의 부총재 자리에 오르고, 대통령 출마까지 생각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른 것이 아니다. 그녀는 철저하게 박정희 신화에 편승했으며, 박정희에 대한 어떤 비판에도 진정으로 귀를 기울인 적이 없다.

박근혜는 박정희 철권통치의 적극적 지지자였고, 그것을 여성적 이미지로 위장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녀는 박정희의 잔인한 독재에 저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매우 적극적으로 미화시키고 있다.

파시즘은 여성의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 그것의 잔인한 마초성은 그것에게 전적인 복종을 바치는 여성의 이미지와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여성의 이름으로 지지하자고? 개발독재의 미명 하에 그 시대에 저질러진 숱한 악행들은 아직 진상조차 가려지지 않고 있다.

수많은 의문사들이 아직도 베일에 갇혀 있으며,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고문의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수구세력의 악착같은 흔들기 때문에, 민주화의 모든 노력이 거품으로 돌아갈 처지에 놓여 있다.

나는 여성주의는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남성들보다도 더 래디컬하게 원칙을 고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타락한 남성들의 세계 안에서 여성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원칙을 놓치면, 여성주의는 모든 것을 잃는다.

우리나라처럼 진보적 전망이 빨갱이 취급당하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진보적 전망이 조롱 당하는 사회에 여성의 진정한 자리는 없다.

김정란 상지대 교수

입력시간 2002/03/2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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