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巨匠] 소설가 김원일

"그들에겐 석양을 물들일 힘조차 없었다"

“매일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여기 도착해, 물기 시작 하는 담배가 점심때쯤 되면 반갑은 넘죠.”. 일터인 계간 ‘동서문학’의 주간실에서 소설가이자 이 계간지의 주간인 김원일씨는 아니나 다를까, 또 담배를 꼬나 문다. 하루 태워 마시는 담배가 줄담배로 5갑.

“자학적 삶, 이라고나 할까요. 굳이 돈 벌어 오라는 사람도 없지, 그래서 자학적으로 지내 온 것이 결국은 잊혀진 늙은이가 되고 싶다는 바램의 다른 표현아니겠어요?” 그러나 안경속의 눈매무새는 사물을 꿰뚫듯하다. 작가는 올해로 딱 만 60이다.

이순(耳順)의 나이. 저잣거리의 벼라별 악다구니가 더 이상 신경을 거슬리지 못 한다는 세월의 두께를, 그는 한 편의 별난 소설로 답했다. ‘슬픈 시간의 기억’(문학과 지성사刊).

60줄을 바라보면서, 작가는 사회니 역사니 하는 거대 담론이 끼어 들 여지조차 없는 양로원(한맥기로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생의 시간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나 본능이 이성적 사고보다 앞서는, 그 퇴락의 시공에 초점을 맞췄다.

노인네들의 온전치 못 한 의식 세계에 걸맞는 실험적 문장은 이 주제와 조응하는 별난 형식을 구축한다.

‘혼자서 쉼없이 주절거리고, 똥 오줌을 함부로 싸고, 자기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 지조차 모르는’ 노인네들은 양로원(한맥 기로원)에 와서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소설은 그들 마음의 행로를 따라 들어 가, 기록한 결과물이다. 어떤 언론은 필독서라며 강력 추천하기도 했다.

이들은 결국 마음이 온전치 못 한 치매 환자들이다. “자기 생의 몇 커트만이 기억으로 남아 있는” 노인네다. 파란의 한국사가 되다가도, 무덤까지 보듬고 가야 할 개인적 치부도 되는 그들 생의 편린은 온전히 살아 남은 자들에게는 묘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번 소설은 사람들을 두 번 놀래켰다. 하나는 ‘김원일이 이렇게 쓸 줄은 몰랐다’는 신선한 충격이고, 또 하나는 온전치 못 한 사람들의 의식을 따라 들어가는 못 보던 표현 기법 때문이다.

분단 등 사회적 이슈에 천착한 기존작들은 리얼리즘에 기대고 있었다. 어느 쪽이됐건 이 소설은 2001년 8월 초쇄 이후, 현재 초판 7쇄라는 예기치 못 했던 순항을 계속중이다.


소외와 단절, 그리고 죽음의 예감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안다’, ‘나는 두려워요’,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등 생의 신산과 비밀을 알아버린 노인네들의 의식을 그린 4편의 중편이 모여, 시쳇말로 슬픈 기억의 콘텐츠를 이루는 것이다. 이성과 의식의 끈을 놓아 버린 노인의 기억은, 아닌게아니라 슬프다.

풍요와 쾌락을 부르짖는 사회는 그들을 잊어 버렸다. 그러나 소설은 그들의 욕망과 힘겨웠던 시간을 기억해 낸다. 때로 그것은 상상밖으로 감각적이다.

‘미나리가 뿌리를 질벽에 착근시키자, 질 벽속으로 파곧드는 실뿌리가 간질간질한 쾌감을 전해온다’(‘나는 누구인가’). 육신은 거덜났지만 기억은, 기대는 저렇듯 잔인하다. ‘빠스 타고 탑골 공원에라도 가보는’ 노인네들의 마음이 그리는 궤적을 소설은 저렇게 표현한다.

젊은 날의 치욕적인 상처를 외모의 꾸밈으로 상쇄하려다 끝내 자신의 정체성 마저 잃어버리는 노인(‘나는 누구인가?’), 적자 생존의 탐욕과 물욕으로 점철된 추악한 과거를 반성 없는 이기심으로 위장한 노인(‘나는 나를 안다’), 임종의 자복 때 죄 많은 세상을 향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신앙심 깊은 노파(‘나는 두려워요’), 해방정국이라는 왜곡된 역사와 타락한 현실에 묻혀 자신은 상실되고만 노인(‘나는 존재하지 않았다’)을 각각 그린 소설이라고 평론가 김병익씨는 요약하고 있다.

동시에 평론가는 ‘마지막 문장을 놓을 때까지 손을 떼지 못 하게 하는 마술적 힘을 가진 소설’이라는 말을 추신처럼 달아두고 있다.

읽기 편한 외형을, 작가는 의식적으로 거부했다. 네편의 소설이 단 네 개의 문단으로 이뤄졌다. 줄바꾸기란 여기서 없다. 의식이 온전치 못 한 노인들의 도통 알아 듣지 못 할 언어 중 어떤 것은 PC 통신에서나 보일 법한 기호(≒ⅹ∞♡ 등)까지 동원됐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발랄한 감성의 언어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아니다. 도처에 죽음의 예감, 소외와 단절, 역사의 폭력 등 이들을 치매의 상태로까지 치닫게 한 상황들이 논리를 초월해 얽혀 있다.

놀랍게도, 이 네편의 소설은 각각 단 한 개씩의 문장으로 이뤄져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두서 없이, 비논리적으로, 간단없이 전개되는 노인 특유의 의식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방식이다.

작가는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Sound And Fury)’에 나오는 백치 벤지의 의식과 표현 양태와 동일하다고 말했다.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에 나오는 시점의 교차와 독특한 어법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화법을 연상케도 한다. 그렇다면 조세희와 김원일은 문학적으로 의식 깊이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조세희의 서라벌 예대 1년 선배이자 문우인 그는 60년대 조세희의 방에서 본 ‘음향과 분노’에 심취해 있었다. 그 결과 산업화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난ㆍ쏘ㆍ공’이, 우리 역사의 폭력성을 현미경적으로 들춰 낸 ‘슬픈 시간의 기억’이 빛을 본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일견 지리하고 난삽한 문장을 해독해 내기가 버거울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근현대사가 보통 사람에게 가한 폭력을 걷어 내고 그들 내부의 상처에 닿기까지 필요한 끈기이다.

그래서 그것은 이 소설 읽기를, 숨은 그림처럼 찾기 혹은 그림꿰맞추기 퍼즐 같은 지적 게임으로 치환시킨다.

또 ㆍ‘불의 제전’, ‘바람과 강’, ‘어둠의 혼’ 등 작가의 역작들에서 익히 봤던 말솜씨는 여기서도 맛있게 씹힌다. ‘짭쪼름한’, ‘은근짜’, ‘해살해살’ ‘드난살이’ 등.

각각의 중편들은 원래 ‘문학과 사회’, ‘문예중앙’, ‘작가세계’ 등 3곳의 월간지에 나눠 게재됐던 작품이다. 첫 회가 나가자, 소설의 독특한 마력에 주목한 다른 출판사에서 실어 줄 것을 요청해 나눠 쓰게 됐다는 것이다. 평균해 두 달만에 3백장을 채웠던, 작가 자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교적 잘 써내려져 간 작품이다.


"이해보다는 새로움을…"

그는 시간이 되면 여자 3명, 남자 3명으로 요량했던 당초 계획을 좇아 갈 생각이다. 이번 책에는 좌익행동대였던 서북청년단 출신의 남자, 순박한 무

지렁이 출신의 농부 등 당초 계획했던 두 명의 이야기가 빠져 있다. 계획대로 두 명의 주인공이 덧보태지면 ‘슬픈 기억’은 더욱 우리 공동체적의 집단 무의식으로 살아 올 터이다.

“피카소는 대중이 이해하든 말든 나름의 새로움을 계속 추구했지요.” 피카소가 걸작 ‘아비뇽의 처녀들’을 완성해 놓고도 20년 동안 발표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대중을 경멸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휘몰아 치듯 말하고는 발길을 재촉했다.

다음 행선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는 무슨 기억을 어떻게 건져 올릴까? ‘생시와 과거 사이에서, 구약과 신약 말씀의 갈피에서 이 생각 저 생각에 이끌려 다니던’ 윤선생(‘나는 두려워요’)을 어느 길목에서 다시 만나게 될까?


인접 장르 예술에도 해박한 지식

그에게는 요즘도 일감이 끊이질 않는다. 당장 시공사에서 창간하는 계간지 ‘문학인’에 기고할 350장 분량의 소설 ‘손풍금’을 완성해야 한다.

이번 작품처럼 해방 공간 이후의 기억들로부터 출발하는 작품이다. 시점이 노인(79세)과 손자 등 여러 사람의 것으로 나뉜다는 점 역시 이 작품과 비슷하다. 늙음과 퇴화의 문제에 대한 또 다른 보고서다.

인접 장르의 예술에 기울여 온 관심은 머잖아 책으로 증명된다. 피카소와 로트렉에 대한 미술 교양서 ‘푸른 색으로 본 슬픔과 죽음’(가제)가 그것이다. 스페인과 파리 등지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을 년내로 답사할 계획이다. 현재 전체 중 1할 정도를 완성해 두었다.

‘그림 속과의 투쟁’이라는 미술 교양서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예술 애호는 장르를 뛰어 넘는다. 이미 소설 ‘가족’에서는 해박한 음악 지식을 펼쳐 보인 바 있다.

‘마당 깊은 집’은 독어 스페인어 일어 불어로, ‘바람과 강’은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등으로 각각 번역돼 있다. 외와 관련, 작가는 “언어의 깊이를 감당해 내기에는 번역 수준이 미흡, 별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5살 아래인 소설가 아우 김원우씨는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관념적인 소설이라 팬은 없다죠, 뭐.”

최근 문학과 지성사는 문화예술계의 중요 인물을 집중 탐구하는 ‘깊이 읽기 시리즈’의 새 주인공으로 김씨를 선정,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한 총론을 펴냈다.

장병욱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2/03/3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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