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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평론] 정치와 관객

[정치평론] 정치와 관객

나는 평소 TV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일상적 소재에 대해, 또한 그것에 대한 편의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에 대해 나의 감정과 판단을 소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나는 주간 내내 이것저것 관련기사를 찾아보며 민주당 국민경선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그 주말 정치드라마의 전 과정을 시청한다.

일반 TV가 그 전 과정을 중계하지 않는 탓에, 그것도 민주당 홈페이지의 인터넷TV를 통해서 말이다.

대학에서 한국정치 관련 강의를 하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학생들로 하여금 우리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수강 학생이 사회과학부 학생들인 만큼 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학생들은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아니, 그들은 정치를 미워한다. 그런데 요즈음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는데, 삼삼오오 정치이야기를 한다든지, 신문이라면 뒷장부터 펼쳐보던 그들이 정치면을 열심히 본다든지 하는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나 역시 한국정치 전공자로서 평소 우리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기는 한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그것은 전공자로서의 의무였을 뿐이다. 때론 내가 왜 한국정치를 전공으로 선택했는지 후회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현대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답답하고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는지, 왜 그리 터무니없는 사건들이 빈발했는지, 그리고 민주화가 되었다는 지금에도 비민주적인 억지가 왜 그리 많은지…인간에 대해, 역사에 대해 회의가 들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 국민경선이 시작된 이래 주말마다 펼쳐지는 이 정치드라마는 갑작스럽게 정치에 회의하던 사람들을 속속 빨아들이고 있다. 물론 그것은 국민경선에 한정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치가 우리를 끌어들이는 이 갑작스러운 현상의 원인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상생활의 대부분 시간을 먹고 살기 위한 사적 생활에 바쳐야 하는 근대사회의 현실 속에서 일반 대중이 매번 공적 정치에 직접 참여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근대 정치에 있어 일반 대중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정치는 그 전문가인 정치인에게 위임되고 일반 대중이 하는 일이란 그들의 활동을 주기적으로 평가하는 것 뿐이다. 그런 만큼 평상시 일반 대중은 정치에 대해 관객일 뿐이다.

관객으로서 일반 대중은 정치에 대해 무엇을 원하는가? 기본적으로 그들은 정치인이 자신들에게 위임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지켜볼 것이다.

또한 그들은 정치인들 간에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그들 간의 정치 경쟁을 제대로 이끌어나가지 못할 경우 일반 관객은 정치에 흥미를 잃거나 심할 경우 정치에 대해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정치가 일반 관객에게 보여주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부정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국민경선의 주말 정치드라마는 일반 관객에게 정치가 보여주어야 할 그 본래적 모습을 아주 극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주말마다 후보자를 통해 일반 관객의 요구가 분출되고, 득표 순위가 뒤바뀌곤 하는 흥미진진한 정치 경쟁의 드라마도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색깔론' '지역주의' 등 경쟁의 공정성을 약화시킬지도 모를 요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경선 자체가 무산되지 않는 한 그것은 경선 자체의 큰 흐름 속으로 흡수될 것이다.

그 동안 일반 관객에게 스트레스만을 주어왔던 우리 정치가 민주당의 국민경선을 맞아 비로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는 이 현상은, 근대 정치의 특질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뿐더러 우리 정치발전의 바람직한 한 모습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입력시간 2002/04/0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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