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밀사' 박동선이 움직인다

코리아케이트의 주역, 북미대화 재개 위한 '모종의 계획' 관측

“북-미 밀사(密使)가 뜬다?”

조지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경색국면으로 치닫던 북-미 관계가 최근 다시 대화 재개 쪽으로 반전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1976년 ‘코리아게이트’의 주인공인 재미사업가 박동선(67)씨가 미국 측의 모종의 메시지를 갖고 미-북 관계의 밀사로 조만간 평양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져 그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간한국 4월2일 발매호 참조

3월말 사단법인 한국차(茶)인연합회 신임 회장으로 취임한 박씨는 1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평양 방문 목적에 대해 “북미 대화 재개 분위기를 조성하고 양측의 입장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 일 뿐”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했다.

그러나 이번 박 씨의 평양방문이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의 방북 시점(4일)과 우연하게도 일치한다는 점 등을 미뤄볼 때 북미 관계를 정상괘도에 올리는데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박 씨의 행보는 청와대와 통일부 등 우리 정부 측과는 일체 사전조율하지 않은 북미간의 직접적인 ‘온-라인’ 채널이라는 점에서 한층 주목된다.


워싱턴서 부시 측근과 의견조율

평안남도 순천이 고향으로 1947년 이남(移南) 한 박 씨는 최근에는 지난해 10, 11월 두 차례에 걸쳐 평양을 방문하는 등 북한 주요 당국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3월초 이례적으로 미국의 워싱턴D.C.에서 거의 한 달 간 부시 대통령의 측근인 공화당 주요 당직 인사들과 잇따라 만나는 한편 국방성 고위 관계자들과 마라톤 협의를 통해 경색된 미국과 북한 관계의 대화재개를 위한 모종의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이 같은 행보에는 ‘코리아게이트’ 직후까지 그가 운영했던 ‘워싱턴 조지타운 클럽’의 탄탄한 미 정ㆍ재계 인맥들이 박 씨를 적극 지원했고 그의 북한 채널에 대해 미 정부로부터 검증을 통해 상당한 신뢰감을 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그가 미 의회 및 정부 관계자들과 이같이 연속적으로 회동 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은 76년 ‘코리아게이트’이후 처음 있는 사건이라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박씨는 이번 주 중 중국 베이징을 통해 방북 길에 오를 계획이다.

박 씨는 최근 미국측이 북한과 대화재계를 향해 움직임을 보이려는 배경에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발언에 대한 이해가 우선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을 이란과 이라크 등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미국의 힘을 이용해, 북한을 강압적으로 몰아세워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공화당의 극 보수파 세력은 당내에서도 25%에 불과하지 않다”며 “그럼에도 부시측이 당장 북한을 일방적으로 몰아세워 가능한 많은 양보를 받아내야 겠다는 강경론이 현재 미국의 대북정책의 기조를 이루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ㆍ11 뉴욕테러 사건이후 아프간 대 테러전쟁 승리를 계기로 미국 내에서 부시의 인기도는 역대 공화ㆍ민주당 대통령들을 통틀어 유례없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북한에 대한 ‘악의 축’발언이후 부시 대통령의 인기 도는 90%에 달했다. 박 씨는 부시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의 배경에는 “올 11월에 치러질 미 의회 중간선거에서 부시가 승리하기 위해선 대 테러 전이라는 호재를 계속 살려나가야 하며 중간선거에 이겨야 차기 대선에서 재선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부시정부의 강경론도 결국은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과 같이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정책기조가 어느 시점에 가서는 전환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화(Deal) 재개 시점을 앞 둔 사전작업

박 씨는 부시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다시 모색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이유에 대해 “부시정부가 북한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대량살상무기(WMD)”라며 “부시정부 역시 클린턴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일정 부분 서로 ‘주고받는’ 형식의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북-미 관계의 메신저 역할을 맡은 박 씨의 메시지는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 까. 박 씨는 놀랍게도 그 메시지에 대해 “매우 간단하며 명확한 것”이라며 “주고 받기(deal)” 라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박 씨는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제조, 국제사회에 수출해 벌어들이는 자금의 규모는 1년에 대략 5~6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며 “북측이 미국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결국 미국이 북한의 무기 수출 로를 가로 막으려면 장기적으로 50~60억 달러 규모의 ‘주고받기’ 식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측으로선 이 같은 북한의 요구사항에 대해 “당장은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것이 강경론 자들의 입장으로 ‘악의 축’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학만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2/04/04 17:33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