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당사자화(當事者化)’의 경계

50대 중반의 한 변호사가 최근 법정에서 젊은 변호사들의 혈기(?)어린 변론태도를 꼬집으며 후배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법정에서는 상대가 무슨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하더라도, 절대로 언성을 높이거나 인상을 써서는 안되네. 늘 온화하게 미소로 응대해야지. 법정 밖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지. 그런데 요즘 ‘젊은 영감’(후배 변호사를 가리킴)들은 이런 간단한 법리(法理)조차 깨닫지 못한 것 같단 말이야.”

소송에서 제3자인 변호사가 당사자가 된 듯 흥분해 언성을 높이고 상대방은 물론 상대방 변호사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가 하면 재판에서 지기라도 하면 의뢰인과 함께 담당재판부까지 원망하는 ‘혈기’ 넘치는 신참 변호사들의 ‘당사자화(當事者化)’를 경계하는 선배의 따끔한 충고다.

최근 개업 변호사 수가 5,000명을 돌파해 2005년 법률 시장 개방을 맞아 ‘1만 명 시대’에 접어들 전망이다. 변호사 업계에는 요즘 무한경쟁이란 치열한 생존의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한정된 사건 수에다 늘어나는 변호사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지면서 사건 수임료로 사무실 임대료 조차 내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일부에선 올해 말 ‘서초동 법조타운’ 위기설까지 흘러 나오고 있다.

이젠 변호사도 법무시장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당사자화’가 될 수 밖에 없는 다급한 심정이다.

법조계 15년차의 고참 변호사들은 새로운 법조환경 속에 적응하기 위해 전문화 재교육 에 열정을 보이는 가 하면, 중견ㆍ신참 변호사들은 더욱 잘게 쪼개진 전문분야에서 앞 다퉈 자신의 영역특화에 진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일부 법무 법인들은 홍보 대행사를 동원해 ‘이름 알리기’에 나서고 있고 부동산 매매 등에까지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법조인을 양성하는 사법연수원에는 자율 단체인 ‘변호사를 준비하는 모임’이 구성될 만큼 대 격변기를 맞고 있는 법조계에는 요즘 ‘당사자화’ 열풍이 거세다.

하지만 이 같은 격변기를 바라보는 ‘소비자’인 서민들의 입장은 다소 상반된다.

현재 국민 1만 명 당 변호사 1명 꼴인 우리나라는 미국(국민 250명당 1명)과 독일(800명당 1명) 등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소비자’의 측면에서는 ‘변호사 1만 명’도 오히려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수임료 역시 웬만한 기업의 10여년차 봉급쟁이 월급보다 많은 건당 385만원 수준으로 변호사 사무실 문턱은 아직도 너무 높은 편이다.

‘당사자화’ 열풍이 몰아치고 있는 변호사 업계가 전문화와 로펌들의 대형화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서비스 마인드가 아닐까.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4/09 14:43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