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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의 경제서평] 저임금 노동현장, 그래도 희망은 있다

■ 빈곤의 경제
(바바라 에렌라이히 지음/ 홍윤주 옮김/ 청림출판 펴냄)

‘위장 취업’이라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학력을 사실대로 말하면 취직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학력을 속였다. 학력이 낮아서가 아니다. 그 반대다. 대학생이거나 대학을 졸업한 것이 결격 사유가 됐다. ‘운동권’ 들이 공장에 들어와 ‘다른 일’을 하려는 것이라고 기업주들은 생각했다.

이 책은 중년 여성 저널리스트의 위장 취업 기록이다. 생물학 박사인 저자는 “이혼해 다시 직업 전선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속이고 저임금 노동 현장에 뛰어든다.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과 개인 집 청소부, 요양원 급식 보조원, 월 마트 판매원 등 6개 직업을 경험했다. 장소는 미국 내 곳곳이다. 저자가 이들 직업을 갖고 하루 하루를 지내면서 쓴 일기가 이 책이다.

저자가 ‘1960년대 (미국의) 급진주의자들이 스스로를 프롤레타리아화하고 노동자 계급을 조직하기 위해 공장에 들어갔던’ 그 방식을 택하게 된 이유는 이렇다. 어느날 한 잡지사 편집장과 30달러짜리 점심식사를 했다. 그러던 중 화제가 가난에 이르렀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람은 그 임금으로 어떻게 살까? 특히 복지개혁으로 노동시장에 내몰리게 된 약 400만 명 가량의 여성들이 시간당 6~7달러의 수입으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그러자 편집장은 “당신이 직접 현장에 가서 부딪쳐봐”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위장 취업을 했고 저임금 노동 현장의 실태를 저널리스트답게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구체적 내용은 일단 생략하기로 하자. 미국이나 우리나 사정은 비슷하다. 아니 세계 어느 나라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약간의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찰리 채프린의 ‘모던 타임스’를 생각하면 된다.

저자의 결론은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보다 훨씬 적게 벌고 있다는 것이다. 한 연구소의 조사 결과 시간당 14달러는 벌어야 최저 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 노동자의 60% 정도는 이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더구나 미국은 다양한 공공 서비스로 임금 부족 부분을 보상하고 있는 다른 문명국가 들과는 달리 모든 것을 임금으로 해결해야 한다. 때문에 미국 노동자들의 삶은 고통스러운 긴급 상황이다. ‘5센트ㆍ10센트화 한(Nickel & Dimed)’이라는 원제가 상징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저자는 위장 취업을 마치고 중상층의 삶으로 돌아왔을 때 왠지 불안감을 느꼈다고 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고도로 양극화하고 불평등한 사회의 시각적 특성으로 인해 경제적 우위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 가난한 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공간과 서비스를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과 공유하려 하지 않으며, 언론들도 굶주림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간혹 있는 성공 케이스만을 부각시킨다.

가진 사람들은 조금만 몸이 불편해도 야단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리 아파도 쉴 수가 없다. 당장 먹고 잘 곳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까. 저자는 그것을 수치심이라고 했다.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다. 누군가 생활비에도 모자라는 임금을 받고 일한다면, 예를 들어 그 사람이 굶음으로써 우리가 더 싸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우리에게 커다란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사람의 능력과 건강, 그리고 인생의 일부를 우리에게 선물로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에 이르면 의자에 푹 파묻히거나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책장을 넘기다 벌떡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은 더욱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일어선 몸을 가만히 안 놔둔다. 저자의 말은 이어진다. 우리가 만족스럽게 부르는 ‘일하는 빈민’은 사실 우리 사회의 주요한 자선가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자녀가 보살핌을 받도록 자신들 아이를 소홀히 하며, 다른 사람들이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자신들은 허름한 집에서 살며, 물가는 낮아지고 주가는 오르도록 자신들은 결핍 상태를 견딘다. 이렇게 쓰여져 있는 마지막 면에 이르면 공연히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나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의 맨 끝 단락은 희망적이다. 언젠가는 그들도 일하는 만큼의 임금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그날이 오면 엄청난 분노와 파업, 분쟁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는 우리 모두 훨씬 더 잘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며 저자는 끝을 맺고 있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입력시간 2002/04/1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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