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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대반격] '더 이상 밀리면 끝장이다. 여론을 붙잡아라'

[이회창 대반격] '더 이상 밀리면 끝장이다. 여론을 붙잡아라'

DJ 때리기로 노풍 잠재운다

‘더 이상 밀리면 끝장이다. DJ 정권의 총체적 비리를 부각시켜 이반된 여론을 붙잡아라’

이회창(67) 후보가 추락한 지지율 만회를 위해 일대 반격에 나섰다. 한나라당 대선 경선전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이회창 필패론’을 깨끗이 날려 버린 이 후보는 이 여세를 몰아 전에 없는 강도 높은 대여 공세를 취하며 ‘노무현 돌풍 잡기’에 팔을 걷어 붙였다.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그간 마지막 보루이자 금단의 성역이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일가까지 날을 들이대며 사활을 건 대여(對與) 투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현정권 공격은 곧 노후보 공격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은 현상태에서 ‘현 정권의 타락성을 공격하는 것이 결국 노무현 후보를 공격하는 지름길’이라는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DJ 정권의 부정ㆍ부패를 강도 높게 비난해 노 후보와 DJ간의 결별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런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 무엇보다 그간 벌어지기만 했던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간의 지지율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4월 중순까지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노 후보에 약 20% 포인트 안팎 정도 뒤졌다.

그런데 4월 24일 모방송이 실시한 대선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는 36.2%로 노 후보(51.9%)와의 격차를 15.7% 포인트 차로 처음 좁혔다. 뿐만 아니라 노풍이 분 이후 역전 됐던 한나라당의 당 지지도도 34.0%로 높아져 민주당(30.8%)을 다시 따돌렸다.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이 장외 투쟁을 시작한 직후인 4월 26일 한국갤럽과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노 후보가 49.4%로 4월 들어 처음 50% 이하로 추락한 반면 이 후보는 36.3%를 유지했다.

최근 들어 두 후보간의 격차가 13.1% 포인트로 좁혀진 것은 처음이다. 정당 지지도에서도 한나라당이 30.6%로 민주당(28.2%)를 앞섰다. 이 여론조사에서는 특히 김 대통령의 직무 수행 평가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가 47.2%로, ‘잘하고 있다’(23.4%) 보다 두 배나 높았다.

앞서 이 후보는 민주당 설훈 의원의 2억5,000만원 수수 주장에 대해 “더럽고 저질스런 행동을 하는 자들은 정치를 못하게 해야 한다”, “조작 행위가 있으면 이 정권은 마지막이다”라고 경고하는 등 원색적 표현을 거침없이 쏟아 놓으며 DJ 정권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 후보는 “현 정권은 이성을 잃은 정권”이라고 규정하면서 “당 차원에서 대통령의 탄핵 소추도 추진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후보의 비장한 투쟁에 자극 받은 한나라당도 당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 사격을 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박관용 총재 권한 대행은 “국가를 이끌 최소한의 권위와 존엄과 국민적 신뢰를 잃은 내각은 총사퇴하고 중립 비상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형식적인 국가 원수로 외교와 국방 등에만 관여하되 권력 비리 수사, 선거관리, 경제정책 등은 모두 중립 비상 내각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행은 “대통령 일가 비리와 은폐 사건의 총본부는 청와대”라고 직격탄을 날리며 “내부적으로 대통령 탄핵 소추를 준비 중에 있다”고 말해 사실상 대통령 하야(下野) 투쟁에 돌입했음을 밝혔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은 당내에서 투쟁했던 그간의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8개월 만에 장외로 뛰쳐 나오는 승부수를 던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 후보의 금품 수수설을 폭로한 설훈 의원을 항의 방문한데 이어, 비상 의원 총회를 열어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을 결의했다.

이어 소속 의원들이 가두 시위를 벌인 뒤 DJ의 3남인 홍걸씨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최성규 전 총경을 붙잡기 위해 조웅규ㆍ엄호성 의원으로 구성된 체포조를 뉴욕 현지에 파견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민주당 대선 후보가 선출되는 전당대회 하루 전인 4월 26일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당원과 시민 5,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대통령 세 아들 비리 및 부패정권 청산을 요구하는 대규모 가두 시위를 벌이며 세를 과시했다.


정권퇴진 투쟁 초 강수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이 현정권 들어 취해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권 퇴진 투쟁’이라는 강수를 두는 대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노풍이 기세를 올리던 4월 중순경까지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불었다.

지난 대선에서 아들 병역 면제로 분루를 삼켜야 했던 이회창 후보가 이번에는 빌라 파문과 노풍에 밀려 또 다시 주저 앉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된 것이다. 당시 분위기는 단순한 위기감의 수준을 넘어 자포자기의 절망적인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지난 2년여간 이회창 후보는 자타가 공인했던 차기 대권 0순위 주자였다. 지난해 초부터 불어 닥친 각종 벤처 게이트로 현 DJ 정권의 부패ㆍ타락성이 부각되는 반사 이익에 힘입어 이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누구도 감히 넘보기 힘든 독주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처럼 확고했던 한나라당 이 후보의 아성은 2월 28일 박근혜 전 부총재가 이 후보의 제왕적 당 운영에 반기를 들고 탈당하면서 균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회창 총재의 고급 호화 빌라 파문, 손녀의 미국 원정 출산 문제까지 터지면서 이 후보의 인기도는 바닥 모를 추락을 거듭했다. 급기야 3월 13일 문화일보와 SBS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이 후보는 노 후보와의 양자 대결 구도에서 처음으로 1윌 자리를 내주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졌다. 민주당 경선에 대한 관심이 최고 절정을 이루던 4월 15일 실시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가 60.5%를 획득, 이 후보(33.6%)를 무려 27.9% 포인트나 크게 앞섰다. 이는 근래 2년여간 실시한 여론 조사 중 가장 큰 포인트 격차였다. 한나라당 내부 이곳 저곳에서 ‘이회창 필패론’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 후보는 사면 초가에 몰렸다.


“밀리면 끝장” 절박감

이회창 후보가 칼을 빼든 것은 바로 이 무렵이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생존 전략이었다. 이 후보는 4월초 경선 당내 대선 경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급진 세력이 좌파적 정권을 연장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포문을 열었다. 이 후보는 4월 13일부터 시작되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대회를 지지율 만회의 마지막 기회로 삼고, 그때부터 연일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했다.

특히 민주당 측에서 이 후보가 윤여준 의원을 통해 최규선씨의 돈을 받았다는 주장과 문제가 됐던 빌라의 실제 주인이 이 후보의 부인인 한인옥씨라는 주장이 추가로 터져 나오면서 이 후보의 감정은 극에 달했다. 이 후보로서는 ‘여기서 밀리면 대선은 물론이고 정치적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 비장감을 느낀 것이다.

이 때 터진 김 대통령의 세 아들 관련 비리는 이 후보와 한나라당의 투쟁 대열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적절한 시기에 불거진 김 대통령 세 아들의 비리 문제를 십분 활용, 상승세의 ‘노풍 잠재우기’에 들어갔다. 민주당 대선 주자로 확정된 노무현을 현 DJ 정권의 후계자라는 식으로 유권자들에게 각인 시켜 노풍을 차단해 보자는 계산된 대선 전략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박관용 총재 권한 대행은 4월 25일 주간한국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노무현 후보는 부패한 정권의 대통령 후보라는 점에서 그 책임과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한나라당은 앞으로 대선 운동 과정에서 현 정권의 타락성 폭로하는 한편, 노 후보의 과거 행적을 검증하는 작업을 함께 지속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DJ정권 후계자’ 강조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이 ‘노무현=DJ정권의 후계자’라는 점을 강조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현재 민주당 노 후보가 처해 있는 입장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후보는 김 대통령의 세 아들 문제에 대해 “법에 따라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정작 “김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시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노 후보는 인간적 도리상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김 대통령을 도의적으로 배반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더구나 김 대통령과의 의도적 차별화를 시도할 경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동교동 등 민주당내 주류 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아직 ‘호남 민심은 김심(金心)’이라는 말이 있듯 대선에서 부산 출신인 노 후보가 호남표를 확실하게 굳히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DJ를 껴안고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은 노 후보는 인식하고 있다. 노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후에도 줄곧 ‘국민의 정부의 정책ㆍ정강 기조를 이어간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도 이것과 관계가 깊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의 이런 대여 강공이 지속적으로 노풍 잠재울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청와대와 여권 내부에서 노 후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DJ의 민주당 탈당이나 대국민 사과 등 비등한 여론을 삭이기 위한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데다, 노 후보 역시 어떤 형태로든 현 정권의 유탄을 지금처럼 앉아서 맞고있지 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새로 선출된 한화갑 대표를 중심으로 노 후보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모종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정가에서는 민주당 노 후보가 수세 국면 탈출을 위해 YS와의 연대를 조기에 추진하거나, 그간 공언했던 정책 중심의 정계 개편을 앞당겨 추진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돌고 있다. 5월 16일 박근혜 의원의 신당인 한국미래연합이 창당될 경우 정계 개편의 소용돌이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 이회창 후보의 대여 강공이 과연 노풍 잠재우기로 성공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진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2/05/0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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