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종로구 경운동

종로구 경운동은 원래 경행방(慶幸坊)이었다. 지금은 화동 쪽에서 내려오던 작은 실개천을 복개하여 낙원상가 밑을 관통, 탑골공원을 끼고 청개천변 관수동까지 큰 길이 됐지만, 옛날엔 개울물이 좔좔 흐르고 있는 전형적인 북촌마을이었다.

그리고 경운동에서 낙원동 종2가,3가 사이에는 한양골의 향교(鄕校)가 자리하고 있어, ‘향곳골’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날 교통(校洞)이라는 땅이름이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말하자면 ‘향교동(鄕校洞)’이라는 뜻이다.

또,교통 근처에는 돌로 된 우물이 있어 새벽녘엔 물을 깃는 아낙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았다고 한다. 돌로 된 우물이 있었기에 지금도 이곳 토박이들은 ‘돌우물골’ 또는 한자명으로 ‘석정동(石井洞)’이라 부르고 있다.

경운동 66번지에는 조선조말 안동김씨(安東金氏)의 세도가 영의정 하옥(荷屋)대감의 집터 자리다. 하옥 김좌근(金左根)의 딸이 흔히 말하는 강화도령 철종비가 된 것을 빌미로 안동김씨의 세도가 극에 달했던 시절, 김좌근과 그의 아들 병기(炳箕)와 함께 이곳에서 살았다.

이 때문에 김좌근은 교동골의 대감이라는 뜻으로 하옥대감 보다는 교동대감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경운동 90번지에는 부제학(副提學)을 지낸 김시찬(金時燦)이 살았다. 그래서 그의 호를 따라 이 일대를 소천골 또는 소천동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렇듯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즐비하게 북촌(北村)을 이루었던 경운동도 지금은 도시화 밀려 옛 영화는 사라지고, 다만 인근 구름재만이 콘크리트 밀림에 갇혀 그 옛날 북촌의 영화를 대변하고 있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이 북촌의 교동 일부와 석정동을 합하여 경행방과 맞은편 구름재에 있는 운현궁의 이름을 따 ‘경운동’이라 한 것이 오늘의 땅이름이다.

경운(慶雲)은 곧 ‘상서러운 구름’의 뜻이다. 경운은 서운(瑞雲) 또는 청운(靑雲)일 수도 있다. 그 청운의 뜻이 서린 땅이 세계 어린이 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ㆍ1899~1931)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소파선생이 주동이 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 문화운동단체인 색동회.청년구락부.소년운동협의회 등을 조직, 나라안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신여성(新女性) 학생(學生) 등의 잡지를 편집, 발간했다. 그 시대가 암울했던 일제의 강점기란 점을 고려하면 그는 분명 선각자였다.

한편 선생은 동화대회, 소년문제 강연회, 아동예술 강습회,소년지도자 대회 등을 주재하여 계몽운동과 아동문화운동의 서운(瑞雲)을 띄었던 곳이 바로 이 경운동이다.말하자면 티없이 청운(靑雲)의 꿈을 지닌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은 곳이 경운동(慶雲洞)이다.

벌써 어디서 다듬이 소리가 들린다/ 별이 아직 하나밖에 아니 뵈는데/ 달빛이 노니는 강물에 복됵하러/색시들이 강으로 간다/바람이 간다, 아기의 졸리는 머릿 속으로/ 수수밭에 속삭이는 소리를/ 아기는 알아 듣고 웃는다.//아기는 곡조 모를 노래로 대답한다/ 어머님이 아기 잠을 재우러 할 적에// 어머님의 사랑하는 아기는/이제 곧 잠이 들겠습니다…

이렇게 주요한(朱耀翰)은 ‘아기의 꿈’을 노래하고 있다.

입력시간 2002/05/1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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