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의학상이 손에 잡힌다

우수 한국인 의·과학자 20인 선정, 2010년 내 노벨상 수상 기대

이 사람을 주목하세요.

국제 학계에서 적절한 평가만 이뤄진다면 2010년 이전에 노벨 의학상 수상 기대주인 우수 한국인 의ㆍ과학자 20인이 선정됐다. 한국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에 이어 두번째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는 의학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그래서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30회 종합학술대회에서 노벨 의학상에 근접한 우수 한국인 의ㆍ과학자 20인을 선정해 기념패를 수여했다. 우수한 한국인 의ㆍ과학자를 미리 선정해 이들을 격려하고 관련 의학자와 과학자들의 연구 동기를 유발해 한국의 노벨 의학상 수상을 앞당긴다는 취지에서다.

선정된 20인에는 울산대 의대 신경과 고재영 교수를 비롯, 이민구 연세대 의대 약리학 교수, 서유헌 서울대 의대 약리학 교수, 이서구 미국립보건원(NIH) 연구위원, 피터 김 머크사 부회장 등이다. 또 이명식 성균관대 의대 내과 교수, 고규영 포항공대 혈관내피세포연구단 교수, 김종성 울산대 의대 신경과 교수, 박재갑 국립암센터 원장, 유남진 가톨릭대 의대 병리학 교수, 김영준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 정종경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최의주 고려대 생명공학원 교수, 김성훈 서울대 약대 교수, 김용석 NIH 연구위원, 데니스 최 머크연구소 수석부사장, 홍완기 미텍사스대 의대 교수, 남문희 미앨라배마대 교수, 김성호 미캘리포니아대 화학과 교수, 정재항 NIH 연구위원 등이다.

학자들 연구동기 유발 취지

학술대회 조직위원장인 지제근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이번에 선정된 우수 의ㆍ과학자 20인은 국내 의과대, 대한의학회, 인간생명과학 관련 학회로부터 추천을 받은 한국 국적의 의ㆍ과학자 79명 가운데 논문의 영향력 및 인용 횟수 등을 고려해 3차에 걸친 심사 과정을 통해 선발한 것”이라고 밝혔다.

고재영 교수는 국내 의학 사상 처음으로 미국 전문과학 저널인 ‘사이언스’에 ‘혈전용해제 tPA의 새로운 신경세포 보호작용’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고 교수는 현재 뇌신경세포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아연의 역할에 대해 연구 중이며 이 연구가 성공하면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과 뇌졸중, 간질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고규영(45) 포항공대 교수는 혈관내피세포에서 ‘안지오포이에틴-1’이라는 물질이 협심증 방지와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입증해 이를 세계적인 순환기 분야 전문의학지인 ‘서큘레이션 리서치’에 발표했다.

김종성(47) 울산대 의대 교수는 뇌졸중 분야의 세계적인 고수(高手)다. 1991년부터 ‘스트로크’’신경과학’등 세계적인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만 해도 80편이 넘고 미국 하버드대학 등 유명 외국대학의 연사로 초청되기도 했다. 그는 뇌졸중 뒤에 복잡하고 다양한 감각장애와 뇌간에서 생기는 뇌졸중 연구에 있어서 독보적인 전문가다. 최근에 뇌졸중에 대한 대중적인 서적인 ‘뇌졸중119’를 펴내기도 했다.

박재갑(54) 국립암센터 원장은 유전성 암에 대한 유전자 진단체계를 국내 최초로 확립했고 그의 업적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현재 유전성 대장암 분야에서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권위자다. 대장암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로서도 국내 최고의 명의로 불린다.

서유헌(54) 서울대 의대 교수는 ‘C단(端) 단백질’이라는 독성 단백질이 치매의 주범이라는 것을 입증해 치매 이론의 새 지평을 열었다. 기존 이론은 ‘C단 단백질’보다 독성이 수백 배나 약한 베타 아밀로이드가 치매의 주범이라는 것이었다. 지난해에는 국제적인 7개 학술지에 한달 동안 무려 8편이 게재되는 최근 한국 의학자로서는 전무한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이명식(46) 성균관대 의대 교수는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생기는 당뇨병인 제1형 당뇨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같은 연구성과는 지난해 미국 면역학회지에 발표됐다.

이민구(38) 연세대 의대 교수는 소화기 계통의 이상이나 췌장염과 췌장암의 원인이 췌장에서 분비되는 중탄산염의 부조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김성훈(44) 서울대 약대 교수는 인체 내에서 생성되는 단백질의 일종인 ‘P3’이 위암과 폐암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정종경(39) KAIST 교수는 치매, 암, 파킨슨씨병, 비만 등 각종 질병치료제의 개발을 위해 필수적인 유전자 라이브러리(데이터베이스)와 질병 관련 유전자 발굴기술을 개발했다. 이 유전자 라이브러리로 지금까지 치매, 암, 파킨슨씨병, 비만 등 4가지 질병에 대한 검색작업을 진행중이며, 6만개 가운데 10~20개 유전자와의 관련성을 확인했다.

최의주(45) 고려대 교수는 지난해 말 한국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국 과학상’을 수상했다. 어떤 과정을 통해 세포가 죽어가는지 밝혀내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세포 사멸을 억제할 수 있는 ‘CIA’라는 유전자를 새로 찾아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재외한국인들 수상가능성 높아

이밖에도 외국에서 거주하면서 과학발전에 힘쓰고 있는 재외 한국인 과학자들이 한국인 노벨 의학상 수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인물이 발암단백질의 입체구조를 규명한 미국 캘리포니아대 김성호(65) 교수와 독감-에이즈바이러스의 인체세포막 침입경로를 규명해 낸 피터 김(한국명 김성배) 머크사(43) 부회장 등이다. 김성호 교수는 생체고분자 결정구조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생물체 안에서 이뤄지는 정보전달과정을 규명해 유명해졌다. 김 교수의 주요 업적은 암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단백질 가운데 하나인 라스의 3차원 구조를 밝혀낸 것과 세포주기에 관여하는 단백질인 ‘CDK’단백질의 입체 구조를 밝혀내 구조 생물학이라는 새 분야를 개척한 것이다.

피터 김 부회장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인체 세포 침투 메커니즘을 밝혀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메사추세츠공대(MIT)에서 15년간 교수로 일하다가 지난해 머크사로 자리를 옮겨 연구개발을 총지휘하고 있다. 데니스 최(한국명 최원규ㆍ49) 한국MSD 머크연구소 신경과학 분야 수석 부사장은 피터 김 부회장과 더불어 미국 학술원 정회원으로 신경세포의 사멸을 연구하고 있다.

이서구(58) NIH 박사는 세포신호전달체계의 세계적 대가다. 이와 관련된 인지질분해효소인 PLC에 관한 연구에서 80년대 중반 3개의 PLC를 분리해 유전자를 찾아냄으로써 분자적 차원에서 연구가 가능토록 했다.

홍완기(61) 미국텍사스대 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암전문병원으로 평가받고 있는 M. D. 앤더슨 암병원에서 암분야 최고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암예방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업적으로 이 분야에서는 미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암연구학회 로젠탈상을 수상한데 이어 98년에는 미국암전문지인 ‘암치료’지의 표지인물로 소개되기도 했다.

“10년내 수상자 안나올 것”이견도

그러나 조만간 한국인이 노벨 의학상을 수상할 것이라는 데에 이견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다. 고등과학원 김정욱 원장은 “앞으로 10년 내에는 국내 수상자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초분야에 대한 투자가 없고 응용분야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권대익 생활과학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17 11:49


권대익 생활과학부 dkw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