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기 마치는 이만섭 국회의장

날치기 근절, 무당적 의장 명분화에 자부심…여야 원하면 연임

8선의 정계 원로 이만섭(70) 국회의장이 5월 29일로 16대 국회 상반기 의장 임기를 마친다. 올해로 고희를 맞은 이 의장은 “2년간의 의장 재임 중 한국 국회의 고질병인 날치기를 없애고, 오랜 숙원이었던 국회의장 무당적 제도를 도입한 것이 가장 큰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최근 여야 정계 개편 움직임에 대해 “경선을 통해 당선된 후보가 그 당을 부인하고 인위적 개편을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적 입장을 밝히며 “정계 개편은 이제 양김 정치를 청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민들도 그것을 바라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 의장은 그러나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대해 “노풍은 이유 있는 바람”이라고 평가했다.

16대 하반기 원 구성에 대해 이 의장은 “이번에는 국회의장의 무당적 제도와 자유투표제가 처음 실시되기 때문에 기존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며 “여야가 합의 추대한다면 하반기에도 국회를 지킬 의향이 있다”고 연임 의사를 내비쳤다.

이 의장은 “현행 대통령 단임제는 선거 비용의 문제 등 국력 낭비적 요소가 있어 권력 구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진정한 정계 원로가 없는 한국 정치 현실이 아쉽다”며 “개인적으로 정계를 떠나더라도 손가락 받지 않는 정치 원로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의장과의 일문일답.


의장 무당적 명문화는 기념비적 제도

-올해로 고희를 맞으셨는데 그간의 정치 인생 역정을 술회 하신다면.

“올해로 만 70세가 되는데 ‘이제야 겨우 철이 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동안 나는 좌고우면 하지 않고 소신껏 살아왔습니다. 지금 느끼는 것은 ‘민주주의를 한다’는 것과 ‘국회를 운영한다’는 것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야에 치우침 없이 공정하게 국회를 운영하는 데는 ‘인내(忍耐)’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요즘 ‘대도재중용(大道在中庸ㆍ큰 길은 중심을 지키는데 있다)’이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좌우 또는 여야에 치우치지 않고 한 가운데에서 화합 시킨다는 뜻이지요. 정치 지도자들도 모름지기 경륜이 중요합니다.”

-5월 29일로 의장 임기가 끝나는데 지난 2년간 16대 상반기 국회를 평가 하신다면.

“16대 국회가 대선을 의식, 여야가 기싸움을 하는 바람에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아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야 대립 속에서도 할 일은 많이 했습니다. 13대 국회부터 비교해 보면 의안 통과가 701건, 의안 발의가 886권으로 제일 많습니다. 민생 관련이나 경제 관련 법안은 올해 3월에 거의 다 통과 시켰습니다.

그런데 언론들이 여야 정쟁만 취급했지 국회 본회에서 안건 통과한 것은 별로 다루지 않아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못한 것 뿐입니다. 하루에 30여개 법안을 통과 시킨 날도 많았습니다.”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줄곧 ‘날치기를 없애겠다’고 공언하셨는데 이 부분에 대해 자체 평가 하신다면.

“제가 16대 국회를 맞으면서 국회의 고질병인 ‘날치기 통과’를 완전히 없앴습니다. 그리고 국회법을 개정해 국회의장이 당적을 갖지 않도록 명문화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헌정사상 기념비적인 제도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국회가 출범한 이례 추진했다 못했던 것은 이번에 제가 해 냈습니다. 헌정 역사에 한 획을 근 것이라 자부합니다.”

-이번 국회를 이끌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양심에 따라 바르게 국회를 운영하는 데도 여야가 당리당략에 부합되지 않거나 불리하면 불만을 털어 놓을 때가 제일 괴롭지요. 작년 여당이 국회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려 할 때 내가 본회 직권 상정을 안하고, 사회권을 자민련 부의장에게 넘기는 것을 거부해 날치기를 막았습니다.

그러자 여당 강경파들이 의장이 우리 편을 안 들어줘 섭섭하다고 전해 왔습니다. 또 야당이 검찰총장과 차장을 탄핵하려 할 때 나는 그것을 국회법 대로 처리하려 했는데 여당 의원들이 나를 막았습니다.

내가 그것 때문에 분통을 터뜨렸는데 야당 일부에서는 ‘혹시 의장이 여당과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했습니다.”


중립적인 사람이 국회지켜야

-16대 국회 하반기에는 자유 투표제가 처음 실시됩니다. 하반기 국회 원 구성에 대한 의견을 밝히신다면.

“임기가 만료되는 5월 29일 이전에 원 구성이 마무리 돼야 합니다. 이번 국회 원 구성은 당적이 없는 국회의장을 선출해야 하고, 자유투표제가 실시되기 때문에 예전과는 사뭇 달라질 것입니다.

이번에는 무당적 국회의장을 뽑아야 한다는 점에서 여야 정당이 의장 후보를 내 경쟁한다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회법 정신에도 맞지 않습니다.

정당 추천 후보가 의장이 되면 아무래도 그 정당쪽으로 치우치지 않겠습니까.”

-이 의장께서는 연임 의사가 있으십니까.

“만일 여야 의원들이 ‘그간 국회를 공정히 운영했으니 앞으로 계속 국회를 맡아 주시오’하고 합의 추대나 연임을 권유한다면 계속 국회를 지킬 용의가 있습니다.

더구나 앞으로 지자체 선거와 대선이 있어 정국이 혼란해 질 텐데 이런 혼란 정국 속에서는 중립적인 사람이 국회를 지키고 있는 것이 나라를 위해 바람직 합니다.”

-현재 정치권이 정계 개편으로 술렁이는 데 향후 정국을 전망 하신다면.

“정계 개편이 정책과 노선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득표를 위해 인위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고, 국민의 신뢰도 얻지 못합니다.

경선을 통해 각 정당 후보로 선정된 사람들은 그 당을 중심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지 그 당 자체를 스스로 부인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정계 개편은 양김(兩金)을 청산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거꾸로 양김 정치로 돌아가는 것은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올해는 지자체 선거, 국회의원 보선, 대통령선거 등 유독 선거가 많은데.

“금년은 각종 정치 행사가 몰려 있는 선거의 해입니다. 이런 선거 정국이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정국을 혼란하게 만들어 나라 발전을 저해 해서는 안됩니다.

무엇보다 돈 안 드는 공명 선거가 치러져야 합니다. 또 유권자들이 올바로 판단해서 돈 안 쓰는 후보, 모략ㆍ중상 안 하는 후보를 선출해야 합니다.”


정치인은 첫째도 둘째도 ‘정직’

-다수의 국민들은 정치인을 ‘신뢰할 수 없는 집단’이라고 말합니다. 8선 의원으로서 정치 불신의 원인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정치인은 정직해야 합니다. 그간 정치인들은 자신이 한 말을 바꾸고, 잔꾀를 부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몰랐습니다. 또 이유는 정경 유착입니다.

기업인들의 부정한 돈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에 당리당략을 위한 여야 싸움도 한 몫을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게 된 것입니다. 지도자라면 하루에 한번쯤이라도 나라를 위한 애국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선거 때마다 국론이 분열되는 악순환을 거듭하는데.

“후보자들은 정정당당하게 페어플레이를 해야 합니다. 돈으로 표를 사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상대 후보를 중상ㆍ모략하는 인신 공격도 없어야 합니다.

지금 같으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청와대에 들어갈 때는 만신창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대통령의 권위가 바로 서고,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흔히들 ‘정치인은 많지만 존경할 정계 원로는 없다’는 말이 있는데.

“정계를 그만 두더라도 손가락질 받지 않는 정치 원로로 남고 싶습니다. 지금 떠나도 정치 원로로 욕먹을 것은 없다고 자부합니다.

나는 정경유착을 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3선 개헌 반대, 부정부패척결 투쟁, 6ㆍ29선언 도출, 국회 날치기 척결 등 그간 한평생을 소신대로 부끄럼 없이 살아 왔습니다.”

-그간의 전직 대통령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등 정치 세력화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직 대통령이 나라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현 대통령에게 충고할 일이 있으면 독대를 하던가, 아니면 전화나 편지를 통해 조용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역 정치인처럼 그것을 신문 지상에 발표하는 것을 보니까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정계 은퇴 후 별도의 계획을 갖고 계신 게 있습니까.

“실현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정치 대학원을 설립해서 나라를 위해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 지망생들을 육성했으면 합니다. 정치는 마음 가짐이 중요합니다.”

-현 대통령 5년 단임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재 권력 구조에서는 무엇보다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현행 대통령은 전권을 휘두르는 제왕적 성격이 강합니다. 또한 대선, 총선, 지자체 선거 등 모든 선거는 가급적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됩니다. 비용도 낭비지만 잘못하면 선거 망국이 될 수 있습니다.

국가 백년 대계를 위해서도 ‘대통령 중심제를 유지하며 권력을 분산하느냐, 내각제로 바꾸느냐, 이원집정제로 하느냐’ 같은 권력 구조 개편은 지금부터라도 연구가 필요합니다. 심하게 말해 현형 구도에선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는 날 오후부터 차기 대권 경쟁에 돌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적인 예로 1998년 2월 김 대통령이 취임해서 오후에 국무총리 인준을 하는데 (야당 의원들이) 모두들 불참하지 않았습니까.”


3김은 조용히 일선에서 물러나라

-선거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는데.

“얼마 전 대통령 후보가 쓸 수 있는 공식 선거 비용 한도액이 1997년 310억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습니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올해 선거는 400억원은 족히 넘을 것입니다. 이 엄청난 자금을 어떻게 일개 후보가 조달할 수 있겠습니까.

양심적이고 깨끗한 사람은 출마하지 말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중앙선관위가 이번 양대 선거에서 정당에 주는 국고 보조금만 1,138억원, 선관위의 선거 관리 비용이 2,888억원입니다. 이것만도 4,000억원이 넘습니다.

여기에 각 정당과 후보가 쓰는 선거 비용을 더하면 아마 1조원이 넘어갈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대통령선거를 5년마다 치러야 하는 지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양김과 같이 정치 역정을 함께 해오셨는데 한국 정치의 폐단을 꼽으라면.

“그 분들(양김씨)이 이 나라 민주화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큰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정경 유착, 패거리 정치, 지역 감정 같은 나쁜 관행 역시 양김 정치의 부산물 입니다. 이것은 사라져야 합니다. 3김은 이제 나라 걱정을 하면서 조용히 일선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국민도 그것을 바랍니다. 3김은 이런 국민의 정서를 알아야 합니다.”

-이 의장께서는 공화당, 한국국민당, 민자당, 신한국당, 국민신당, 민주당 등 정권에 따라 정당을 자주 옮겼다는 지적이 있는데.

“우리 나라는 격변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여러 당을 거칠 수 밖에 없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 공화당을 못쓰게 하니까 한국국민당을 만드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내가 자의에 의해서 정당을 바꾼 것은 여당인 신한국당에서 작은 정당인 국민신당을 만들어 총재가 된 것 뿐이다.

국민신당에서는 이인제 의원을 비롯한 전 당원들이 새정치국민회의와 합당하자고 해서 통합한 게 전부다. DJ나 YS도 따지고 보면 대여섯 개 정당은 됩니다.”

-민주당 경선에서 일어난 ‘노풍’을 어떻게 평가 하십니까.

“이유 있는 바람 입니다. 노무현 자신이 일으킨 면도 있지만, 상대편 바람의 떨어지는 바람이 온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계 원로로서 정계 후배와 현역들에게 한마디를 하신다면.

“후배들에게 ‘정직해라. 잔꾀가 아닌 가슴으로 정치하라’ 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정직하고 당당하게 정치해서 국민의 심판을 받으라고 말하고 싶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17 15:28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