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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문화읽기] 일본 '음악'을 수용해야하는 이유

[김동식의 문화읽기] 일본 '음악'을 수용해야하는 이유

2000년 8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는 일본의 대표적인 남성 듀오 '차게&아스카'의 내한공연이 있었다. 그들은 공연 중에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과거 두 나라 사이에 있었던 일은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사를 같이 슬퍼할 수 있는 세대가 됐으면 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솔직히 정확한 문구까지 기억해 낼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당시의 공연 상황과 감상을 상세하게 적어놓은 웹문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터넷의 위력에 다시 한번 놀라면서, '한국'공연이라는 부담감을 떨치려는 듯 열창을 거듭했던 두 사람의 모습을 간만에 떠올려 보았다.

올해 2월에는 일본의 전설적인 락 밴드 X-Japan의 필름 콘서트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X-Japan은 1997년에 해체를 선언했고, 기타리스트였던 히데(Hide)는 이듬해 의문사했다. 국내에도 수십만 명의 팬을 가지고 있는 밴드이고, 다시는 그들의 실제 공연을 볼 수 없기에 공연 실황과 미공개 필름을 중심으로 콘서트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날의 콘서트에서는 드러머였던 요시키가 직접 무대에 나타나 'endless rain'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고 한다. 팬들의 환호에 감격해 하는 요시키의 모습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필름 콘서트의 컬트(cult:숭배)적인 요소를 감안할 때 적어도 X-Japan의 마니아여야 관객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필름 콘서트에는 참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별다른 후회는 없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일본대중가요의 수입과 유통이 금지된 상태에 있었지만 여러 가수와 음반제작사에 의해서 꾸준하게 '활용'되어 왔다. 일본의 아이돌 스타인 '닌자'의 노래를 그냥 가져다 썼던 '룰라'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90년대 초중반까지는 표절이 대표적인 활용방식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가수들 치고 일본노래 표절시비에 걸리지 않았던 경우가 몇이나 있을까.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노래를 사와서 번안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표절을 근절하기 위한 네티즌들의 정화 노력이 반영된 결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최근 들어서 일본대중음악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는 생각이다. 남성 듀오 '포지션'은 일본대중가요의 번안곡만으로 앨범을 만드는 발빠른 기획력을 보여주었고, 그밖에도 자신의 앨범에 한두 곡의 일본대중가요를 번안해서 앨범에 수록한 가수들은 의외로 많다.

김장훈은 키즈키 다카오와 케이스케 구와타의 노래를 번안해서 ‘goodbye day’와 ‘ELLY, my love’로 내놓았고, 얼마 전까지 '비겁하다 욕하지마'라는 가사로 인기를 모았던 캔의 노래 '내 생에 봄날은…'은 일본의 4인조 밴드 튜브(Tube)의 '거울의 기억'이 원곡이다.

SM기획의 효녀상품 SES는 '미시아'의 첫 번째 싱글을 ‘감싸 안으며’라는 노래로 번안했고, 한국가수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일본의 신세대 여성듀오 '하나하나'의 노래('雨の雩')를 번안한 가요를 들은 적도 있다. 최근에 발표된 신인가수 린애의 '이별후愛'는 이츠와 마유미가 1972년에 발표한 '고이비토요'(戀人이여)를 R&B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노래이다.

마유미의 원곡이 담아내고 있는 절절함과 같은 청명한 호소력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장사 될 만한 외국곡을 찾아서 번안하는 방식이 아니라 리메이크를 통해서 새로운 감성을 표현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현재 일본대중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크게 세 가지이다. 정부는 일본대중가요의 수입문제를 정치외교적인 카드로 활용하고 있고, 음반제작자들은 제작비도 절감하고 의외의 효과도 내심 기대하면서 뜰 만한 노래들을 찾고 있다.

그리고 일본대중음악에 대해 마니아적인 태도와 감수성으로 무장한 팬덤(fandom)이 있다. 이들은 결코 생각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한국대중음악의 획일성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거나, 음악을 직접 경험하면서 일본문화에 대한 편견이 존중의 형태로 바뀐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본'음악이 연상시키는 역사적 경험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역사적 특수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정치외교적 협상을 위한 카드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인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음악이 아니라 일본'음악'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성숙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tymtan@empal.com

입력시간 2002/05/2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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