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지도자의 길로 나서라

일이든 운동이든 뭐든지 유독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 보다 한단계 높은 '학교 대표감'이 있고, 그 보다 윗단계로 한 나라를 대표할 만큼의 수준에 도달해 있는 '국가대표감’이 있다.

그리고 한 분야에서 높은 수준에 있는 '베스트(BEST)' 그룹이 있고, 그 단계를 넘어서 최고 위치에 단 하나 뿐인 '스타(STAR)'가 있다.

이걸 단계를 보면서 필자 본인이 국가대표 인지, 아니면 그저 열심히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 가늠이 잘 안 된다.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도 않을 수 있다.

현재 국내에는 3,000여명의 남자 프로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 중에 상금이 걸려 있는 각종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투어 프로는 약 500명이 있다. 여자 프로는 약 600명 정도가 있는 데 이중 280명이 투어 프로다 .

이중 정상급이라 할 수 있는 스타급 선수는 서너명 남짓하다. 그리고 앞서의 분류대로 베스트급으로 볼 수 있는 선수가 10명, 그리고 15명 정도가 국가 대표급 선수다.

필자도 21세 때 프로에 입문해 5년 동안 나보다 더 큰 백을 어깨에 들쳐 메고 지방과 해외를 이리저리 다니며 열심히 뛰어 다녔다. 정말 열심히 했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화려한 스타를 꿈꾸며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해가 거듭할수록 한계를 느꼈다. 매번 대회에 출전했지만 우승은 커녕, 가뭄에 콩 나듯 10위 안에 드는 게 고작이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는 회의가 갑자기 찾아 들었다.

대회에 출전하면 부모님은 필자가 퍼팅을 할 때마다 내 등 뒤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가끔씩 잘치는 때도 있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스스로가 위축되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서 ‘나는 스타급이 못 되는 구나...아니 베스트급도 안 되는 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곤 한다. ‘적어도 베스트급 안에는 들어야 우승권 안에 드는 데, 어쩌다 우승한 것은 내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프로는 돈이다. 프로가 대회에 나가 상금을 못 받는 것은 무능력한 사회 생활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차라리 대회에 나가서 상금을 못 딴다면 과감히 지도자의 길로 나서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아마추어 골퍼들은 프로들이 동네 연습장에서 레슨을 하고 있으면 ‘프로 대회에 나가서 성적 못 내니까 레슨이나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 때문에 적잖은 투어 프로들이 레슨을 마다하고 성적도 못 내면서 대회 출전을 강행한다.

국내에서 ‘레슨을 하는 프로는 수명이 다 된 프로’라는 인식은 사라져야 한다. 꼭 필드 현장에서 잘 친다 해서 연습장에서도 좋은 스승이 되는 것은 아니다. 투어 프로가 아닌 세미 프로 중에서도 자기만의 티칭 노하우를 가지고 투어 프로들보다 더 잘 가르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끔씩 몰상식한 아마추어 골퍼들의 경우 레슨 프로에게 "어이 이번에 한판 붙지" 하고 전의를 불태운다. 이것은 그리 바람직 하지 못한 일이다.

이제 무턱대고 볼만 많이 쳐서 승부를 거는 시대는 지났다. 박세리나 최경주 선수는 손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연습을 했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바뀌어 가고 있다. 연습도 중요하지만 내 자신이 과연 대회 상금만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베스트 그룹’ 안에 드는 지를 냉철히 파악하는 것도 프로가 갖춰야 할 능력이다.

요즘 골퍼들은 최경주와 박세리의 영향 때문인지 골프 기계가 되길 원한다. 골프 코스 공략 매니지먼트, 국제 대회 적응력, 플레이가 조절 능력과 순발력, 마지막 퍼트까지의 집중력 등 그야말로 모든 조건을 완벽히 갖춘 골프 기계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이처럼 완벽한 골프 기계가 될 자신이 없다면 과감히 현실을 직시해 지도자의 길을 가는 편이 현명하다. 이제 멀고도 요원한 상금왕 환상을 찾아 무거운 백을 들고 필드를 방황할 필요가 없다.

박나미 프로골퍼·KLPGA정회원 올림픽 콜로세움 전속 전 국가대표

입력시간 2002/05/23 15:06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