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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의 때늦은 자탄 "모두가 내탓"

DJ의 때늦은 자탄 "모두가 내탓"

홍걸 구속·홍업 수사 등 아들문제로 시름의 나날

“고통스럽고 쓸쓸한 날들이 이어졌다. 나의 (대통령) 재임 중 가장 괴롭고 고독한 시간들이었다. 아들이 원망스럽다가는 아버지로서의 자책이 몰려오는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집무를 하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온갖 번민과 회한으로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5년전 차남 현철씨의 문제로 고심을 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당시(1997년 4월께)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아들의 죄는 곧 아버지의 죄

자식 문제에 관한한 우리나라 부모의 마음은 똑같다 비행을 저질러 부모의 얼굴에 먹칠한 아들이 야속하고 화가 하늘까지 치밀어 오르다가도 한 순간에 억장이 무너지고 한숨만 나온다. 아버지로서의 자책 때문이다. 자식을 잘못 가르친 죄는 면죄를 받을 수 없기에 아들의 잘못은 곧 아버지의 잘못이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김 전 대통령과 비슷한 처지에 빠진 김대중 대통령의 심정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여기에 아들 한명도 아니고 세 아들 중 막내(홍걸씨)는 구속됐고, 둘째(홍업씨) 역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데다 장남(홍일씨)은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게다가 부인(이희호 여사)의 이름까지 오르내리고 있다. 김 대통령의 속앓이는 ‘속이 시커멓게 탄다’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일 것이다.

김 대통령은 가장(家長)으로서는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었지만 국정수반으로서는 제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대통령은 홍걸씨가 검찰에 알선수재혐의로 구속된 5월 18일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법원의 영장 발부사실을 보고 받고 "흔들림 없이 국정에 전념하겠다"면서 내각과 청와대 비서실이 월드컵 등 국정 과제의 차질 없는 수행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직원들도 구속영장 발부가 예상됐던 때문인지 예상보다 차분한 자세를 지켰고 말을 무척 아꼈다. 박선숙 대변인은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모든 문제는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고 김 대통령은 흔들림 없이 국정에 전념해 나갈 것"이라고 짤막하게 논평했다.

박 대변인은 또 "최근 대통령 내외분의 동정과 관련된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으나 신중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은 채 관저에 머물렀으며 이희호 여사도 `차분하고 담담한 심경'으로 홍걸씨의 구속 소식을 접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한 고위관계자는 "김 대통령은 아들 문제에도 불구, 국정에 전념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희호여사 옥바라지 준비

홍걸씨를 각별히 아끼고 사랑했던 이 여사는 이날도 성경 읽기와 기도에 몰두하면서 홍걸씨 옥바라지 문제도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사는 4월 16일 TV를 통해 홍걸씨가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여사는 16일 저녁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가 주최하는 실업 가정을 위한 후원회 밤 행사에 참석해 후원금을 전달할 예정이었으나 한덕수 정책기획수석을 대신 보내기도 했다.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은 “청와대가 침체됐거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 아니냐”는 한 언론사 간부의 지적을 소개하면서 “밖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우리가 흔들림 없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김영삼 정권 당시 현철씨 구속이후 국정이 구심점을 잃고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던 악몽을 국민들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야권은 김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고 있고 여권은 이 같은 공세를 국정마비 기도로 규정하고 강력대응하고 있다.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는 5월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김 대통령 아들들 비리 의혹에 대해 “김 대통령이 즉시 조사 받아야 한다”면서 “의혹의 또 다른 본산인 아태 재단을 해체하고 국가에 헌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대표는 이날 “현 정권은 각종 권력형 비리를 대통령 두 아들을 수사하는 선에서 적당히 얼버무리려 하고 있다”며 “비리 몸통은 김 대통령 자신이며 김 대통령에 대한 조사 없이는 사태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청와대는 김홍업씨가 관리해왔다는 괴자금이 1997년 대선 잔여금이라는 의혹은 물론 아태 재단을 통해 돈세탁을 했는지를 밝혀야 한다”면서 “최규선씨가 그토록 많은 비리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김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과 비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김 대통령과 최씨 관계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서 대표는 또 국정조사와 특검제, TV 청문회 수용을 요구했다.


한나라 거센 공세, 민주 “악용말라”

직격탄은 김 대통령 하야론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장기표 푸른정치연합 대표는 5월 17일 특별성명을 내고 “김대중 대통령은 더 이상 국정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기에 대통령직에서 하야해야 한다”며 “총리권한 대행 체제에서 월드컵을 끝낸 후 빠른 시간내에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조기에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홍걸씨 구속에 대해 "안타깝지만 잘못이 있다면 법에 따라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도 한나라당이 이를 정략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경우 5월 14일 김 대통령의 아들문제가 권력부패이며 김 대통령에게 최종 책임이 있다는 언론과 국민들의 판단에 동의한다고 밝혀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노 후보는 이날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 질문에 이같이 답한 뒤 “그러나 그 문제에 관해 내가 나설 지는 별개의 문제이며 대통령은 사과와 함께 검찰수사의 장애물을 치웠으며 검찰수사도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대통령은 4월 26일 박선숙 대변인을 통한 간접사과를 시발로 5월 13일 부패방지위원회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요즈음 저의 자식이나 주변들의 문제로 국민에게 걱정을 끼친 것을 항상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기까지 약 3주 동안 모두 5차례 사과를 했으나 김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사과하지는 않았다. 대국민 직접사과는 현재 수사가 진행중인 홍업씨에 대한 사법 처리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검찰로 간 대통령의 아들들

검찰 조사를 받은 전ㆍ현직 대통령의 자녀는 5월 18일 구속된 김대중 대통령의 3남 김홍걸씨와 수사를 받고 있는 차남 홍업씨를 포함해 무려 일곱 명에 달한다.

5년 전 5월 15일에는 김현철씨가 대검 중수부에 소환됐다. 문민정부 시절 국정에도 깊숙이 개입해 '소통령'이라고 불린 그는 이틀 뒤 구속돼 증여세 포탈죄로 6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홍업씨가 구속될 경우 부친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구속된 아들은 모두 3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는 90년대 초 미국 수사당국으로부터 19만2,000달러를 밀반입한 사실이 적발돼 두 차례에 걸쳐 국내에서 조사를 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는 1995년 부친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출두,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 설립 자금 출처를 조사 받았다. 이듬해에는 재국씨를 포함한 전 전 대통령 삼형제가 12ㆍ12 및 5ㆍ18 사건 첫 공판에서 시위 도중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부친을 폭행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 지만씨는 4월 29일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다섯번째 구속돼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kckim@hk.co.kr

입력시간 2002/05/2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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