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개그 펀치] 준대도 못먹고 귤만 던지더라구요

나이에 비해 일찍 방송생활을 시작한 나는 대학 때 이미 어느 정도 작가로서의 이름을 내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학생이라는 신분과 나이는 어쩔 수가 없어서 정신적으로 순진하다고나 할까 하여튼 모든 일이 조심스럽고 몸을 사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 연기자들과의 능수능란한 농담도 그 당시는 꽤나 진땀을 흘릴 정도로 편치 않을 때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날 집에 있다가 한 여자 연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 '장 작가님, 상의드릴 게 있는데 의논 좀 하고싶어요, 마침 장 작가님 집 근처인데 잠깐 나오실래요?' 하는게 아닌가. 갑자기 겁이 덜컥 나고 등에 식은땀이 쭉 흐르면서 말문이 막혔다.

정말 순수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그래도 순진한 젊음을 간직하고 있을 때라 방송생활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들은 갖가지 소문들이 떠올려지고 '혹시나…' 하는 의심에 방송국에서 의논을 하자고 말하고는 부랴부랴 전화를 끊었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얘기를 했더니 녀석들 말이 걸작이었다.

"등신, 왜 안나가냐."

"진짜 상의할 게 있는 게 아니고…"

"눈치도 없기는…주겠다는데 왜 안받어?"

그때 실감했다. 일반 사람들이 여자 연예인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를 말이다. 사실 내가 아는 여자 연예인들은 대부분 건실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많은데 정작 그들을 가까이서 보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은 여자 연예인들은 배역 하나 따내기 위해 기꺼이, 언제라도 몸을 던지는 타입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남자 연예인 A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었다.

"환장하겠어. 사람들이 나더러 뭘 물어보는지 알아? 000 먹으려면 얼마 줘야 해요?, 걔는 아무하고나 잔다는데 진짜 그래요? 내가 걔들 매니저야? 면상을 갈겨버릴 수도 없고…. 먹긴 뭘 먹어, 식인종이야? 나도 아직 못 먹어봐서 모르겠다고 해버렸지 뭐."

항간에는 어떤 여자 연예인들 이름이 들먹거리며 룸살롱 출신이라느니, 자기가 아는 사람이 걔랑 하는데 얼마를 줬다느니 하는 소문이 떠돌기도 한다. 문제는 극소수의 몇몇이긴 하지만…누구는 백지수표를 받았다느니…

주로 에로 영화를 찍는 한 여배우한테 어느날 은밀한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꽤 점잖은 사람인데 한번 만났으면 한다는 전언이었다. 그러면서 그가 상당한 재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귀띔에 에로배우는 손해 볼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화끈하게 데이트하고 용돈도 두둑이 생기는, 임도 보고 뽕도 따는 일석이조의 건수 아니겠는가.

약속장소에 가서 만나보니 남자가 저질도 아니고 품위도 있고 돈도 있어보이는 게 꽤 마음에 들었다. 애초에 밥 먹고 영화 보는 유(類)의 데이트는 아니니까 괜히 눈치보고 내숭떨면서 시간낭비할 하등의 이유가 없으므로 두 사람은 곧장 호텔방으로 직행했다.

에로배우가 먼저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남자가 여자에게 침대 위로 잠깐 올라가보라고 하더란다. 아무래도 몸매를 감상하려는 눈치같아서 여자는 침대 위에 올라서서 갖가지 포즈를 취해주었다. 그때까지 넥타이도 풀지않던 남자는 그윽한 눈초리로 여자를 훑어보더니 아주 흡족해하며 룸서비스로 뭔가를 주문했다.

'분위기용 와인'이라도 주문하나 싶었는데 룸서비스가 가져온 것은 한 박스나 되는 귤이었다. 의아해 하는 여자를 향해 남자는 '똑바로 서있어' 하더니 다짜고짜 여자를 향해 귤을 던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아주 냉정한 얼굴로 알몸의 여자를 향해 한 박스의 귤을 인정사정 없이 던져댔다.

그녀의 몸은 물론이고 사방팔방에 귤이 터지고 난리였다. 끝내 한 박스의 귤을 다 던진 남자는 수표로 200만원을 탁 건네주며 아주 가뿐한 얼굴로 호텔방을 나가더란다.

꽤 많은 남자를 상대해봤다는 에로 배우는 '변태죠, 뭐 그날 귤을 다 주어먹었더니 얼굴이 다 노래졌어요' 라면서 키득대더니 소곤거렸다.

"그래도 귤이라 다행이지 뭐. 아휴, 수박이라도 던졌으면 어쩔 뻔 했어."

이런 얘기가 정말 아주 극소수여서 천만다행이다.

입력시간 2002/06/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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