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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巨匠] 뮤지컬계의 선구자 임영웅

"연극은 인간을 가장 올바르게 그려내는 예술"

고도(Godot)란 애초 없을 지도 모른다. 그는 사람도, 물체도, 신도 아니다. 동시에 전부다. 두 시간에 달하는 장광설의 연극을 보고 난 뒤라면 객석은 고도라는 존재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 기다림의 힘으로 연출가 임영웅(66)은 살아 왔다.

“나 스스로는 나를 어떻게 규정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요. 이 사이버 시대, 산 사람이 산 사람들의 코앞에서 이뤄내는 연극이란 인간을 가장 올바르게 그려내는 예술이라는 믿음에는 변함 없어요.”

그의 소극장 산울림에서 배우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배우들은 무대 양 옆 자투리 공간에서 후닥닥 옷을 바꿔 입고 나와 관객의 코앞에서 시치미 뚝 떼고 연기를 펼친다. 그는 반드시 극장 어느 구석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 본다.

올 한해 동안 그는 서울은 물론 지방과 해외의 무대까지 모두 5개의 무대를 만들어 내야 한다. 서울 바깥 지역은 모두 그의 극단 밖 사람들과의 작업이다. 그가 5월 23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막을 올린 극단 신시뮤지컬 컴퍼니의 뮤지컬 ‘갬블러’는 6월까지 일본 전국의 13개 도시에서 25회 공연중이다.

2002 한일 월드컵 개최를 기념해 한국의 대표적 연출가를 불렀다는 의미는 물론 그가 일본 연극계의 주목을 쭉 받아왔던 점을 비춰본다면 당연한 일이다.


뮤지컬계의 선구자적 입지 굳혀

그는 5월 24일 울산 문화예술회관에서 오랜 연극 동료 차범석이 쓴 뮤지컬 ‘처용’의 막을 올렸다. ‘명성황후’의 음악 감독 박칼린 등 국내 뮤지컬계의 1급 제작진을 동원한 가운데 만든 무대다.

1966년 한국 최초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연출한 이래 뮤지컬계에서 선구적 연출가로 입지를 굳혀 온 세월의 두께 덕분이다. 울산 공연은 서울에서만 불고 있는 뮤지컬 바람이 지방으로 확산될 수 있을 지를 알아보는 시험대였다.

60여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무대를 클래식 주자와 국악 주자가 합쳐진 20인조 악단이 반주한 대형 무대다. 국악과 양악의 공존 등 서울서도 보기 힘든 과감한 시도로 지방의 자부심을 부쩍 드높인 이 무대는 10월 울산 처용제때 재공연을 거쳐 연말께 서울 등 3개 도시에서 공연된다.

그가 앞장 선다는 사실은 곧 1급 배우가 함께 한다는 말과 동의어다. ‘처용’도 마찬가지다. 남성 뮤지컬 스타 남경주, 전방위 배우 강부자 등 스타들이 기꺼이 그의 지휘 아래 모였다. 강부자는 이미 1960년대 ‘꽃님이’(1967년)와 ‘대춘향전’(1968년)으로, 남경주는 ‘키스미 케이트(2000년)’와 ‘갬블러(2001년)’ 등 뮤지컬로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이다.

5월 22일 요코하마에서 ‘갬블러’를 올려 놓고 곧바로 울산으로 가 ‘처용’을 펼치고 30일 상경한 노 연출가의 얼굴은 조금 지쳐 있었다. “재일 교포 위문 공연이 아닌 한국 뮤지컬의 일본 순회 공연은 최초입니다. 일본 ‘민주음악협회’의 초청으로 개런티를 받은 공연이죠.” 작업에 열이 오르면 코 베어 가도 모를 공연판에서 중요한 점을 일깨워 주는 대선배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 공연계의 귀중한 자산이다.

특히 이번에는 아사히 신문에서 ‘치밀하고 박진감 넘친 무대’라며 호평까지 실어 그의 피로를 씻어 주었다. 리얼리즘, 부조리, 뮤지컬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의 연출력을 두고 최근 일본 언론은 ‘수비 범위가 넓은 연출가’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가창력 등 자본과 상관 없는 부분은 일본보다 월등해요. 무대 메커니즘에서 한 수 아래인 것은 역시 자본의 문제겠죠.” 그는 현재 올려지고 있는 일부 대형 뮤지컬이 마케팅 등 기업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무대를 통해 창출된 이윤이 연극에 재투자되지 못 한다는 지적이다.


뮤지컬 붐은 가벼움 좇는 사회 반영

그는 “21세기 한국의 뮤지컬 붐은 가벼움을 좇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말했다. “요즘은 입단해서 6개월 정도 있다가 인사도 않고 없어지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아요. 연극적 성취감이란 일단 뒷전이죠.”

그가 신입단원을 독려할 때 즐겨 쓰는 말이 있다. “3년은 투자해 보라”는 것이다. 만의 하나 3년 안에 데뷔는 못 하더라도 인생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 교훈은 건져갈 것이라는 안타까움 섞인 권고다.

그의 우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한여름 그에게 잡혀 꼼짝도 못 하고 연습하고 나면 팔자에 없는 땀띠가 반긴다는 말은 우리 연극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채윤일 심재찬 유경환 김영수 이성렬 등 현 연극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연출가들이 그렇게 배출됐다.

박정자 손숙 윤석화 등 한국 연극계 여배우를 대표하는 3인 역시 그의 연극적 열정 앞에서는 토를 달 수 없었다. 더욱이 그와 작업한 배우들은 큼직한 상도 거머쥐었다.


산울림표 연극, 흥행연출가 되기도

“아줌마들 끌어 모으자는 건 아니었어요.” 1986년 ‘위기의 여자’를 올렸을 때 일부 언론은 ‘여성주의 연극’이라며 맞장구 쳤고, 그 말은 여전히 그의 극장에 배회하고 있다. 여성주의 연극의 산실이라는 것이다. 손쉽게 감정이입을 허용하는 이른바 그의 여성주의 연극을 본떠 숱한 아류가 나왔다.

이 부분에서 그는 설명을 덧붙인다. 그것은 의욕을 안고 새 건물을 지어 출범했던 소극장 산울림이 개관 1주년에 이르러 적자에 허덕이자 그와 부인 오증자 서울여대 불문과 교수가 짜낸 현실 타개책이었다. 거기에는 오씨가 1975년 번역한 ‘위기의 여자’가 10년 새 10만부 팔렸다는 현실적 근거도 깔려 있었다.

덕분에 그는 뜻하지 않게 흥행 연출가도 돼 봤다. 7개월 동안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5만명의 관객이 들어 지금 봐서도 엄청난 기록이 수립됐다. 그는 문화를 주도하는 동인으로서의 여성에 주목한 첫 연출가가 되는 셈이다.

그의 안목은 ‘목소리’, ‘숲속의 방’, ‘영국인 애인’,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담배 피우는 여자’ 등 일련의 산울림표 연극을 잇달아 내놓았다. 관객은 장사진으로, 평론계는 상으로 답했다. 일부 언론은 여성주의 연극이라는 관작을 달아 주었다.

정계에 입문했다 구설수에 올라 이내 퇴진해야 했던 배우 손숙에게 새 힘을 준 것이 그의 출연 제의였다. ‘위기의 여자’를 모노 드라마로 각색한 2001년 무대 ‘그 여자의 작은 행복론’은 곤경에 빠진 손숙에 대한 배려였다. 그것은 극단 산울림 창단 멤버에 대한 의리이기도 했다.

“나를 두고 정통 리얼리즘 최후의 교두보라고도 하는데 ‘고도’를 보세요.”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이번에는 그의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1969년 한국일보사 소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그의 극장은 물론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1989년), 아일랜드 더블린 연극제(1990년) 등에서 초청 받았던 작품이다. ‘한국의 고도는 옳았다’는 현지 평의 정점에 바로 그가 있다. 샤무엘 베케트의 ‘고도’는 임영웅을 만나 육체를 얻은 것이다.


그를 기다리는 또 다른 ‘고도’

그의 올해 연출 무대는 모두 5개다. 8월이면 일본서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는 ‘갬블러’가 귀국 공연한다. 이어 하반기에는 ‘가시고기’(조창인 작), ‘사랑을 선택하는 두 가지 이유’(김현경 작) 등 창작 무대 두 편의 연출이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먼저 7월까지 산울림소극장 공연되고 있는 또 다른 ‘고도를 기다리며’에 그는 몰두하고 있다. 첫날부터 보조석 50개도 모자라 방석 20개까지 준비해야 하는 240명의 관객 앞에 그는 또 다시 분주하다. 자신의 작품을 보고 나가는 객석의 표정을 살피느라 그는 막 내린 뒤면 극장 문 앞으로 오늘도 분주히 달려간다.

한 해 평균 3편을 연출했던 예년보다 더 바빠진 올해이지만 그의 마음은 풍성하다. 파리 소르본느 제 3대학에서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베케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딴 아들 수현(38)이 하반기에 귀국, 무대에 힘을 부어주게 된다. 백상예술대상, 서울극평가그룹상, 동아연극상 등 자신이 석권해 왔던 연극상들보다 더 큰 힘이다.

장병욱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06/0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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