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종로서적, 그 문화적 상징의 소멸

6월 3일 석간 신문에서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한국은행이 올해 1ㆍ4분기의 민간소비 특징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서적소비가 지난해의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27% 증가했다는 기사였다. 시민단체와 방송·언론사의 지속적인 캠페인이 큰 힘을 발휘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특히 책 소개 프로그램으로 황금시간대에 편성된 KBS의 'TV, 책을 말하다'와 계몽성과 오락성의 결합을 내세운 MBC의 '느낌표(!)'가 보여준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이들 방송에 의해서 생겨난 부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 신화의 미몽에 빠져있던 한국사회에 다시금 책의 문화적 가치를 일깨워 준 측면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날인 6월 4일에는 당연히 한국과 폴란드 전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1907년에 설립되어 9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서점 종로서적이 최종부도처리 되었다는 것이다.

출판계의 새로운 르네상스라고 할 만큼 독서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날아든 소식이라 조금은 얼떨떨했다. 어찌된 일일까. 후발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에 밀렸던 것도 사실이지만, 경영과 소유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계속되면서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기호를 따라가지 못한 측면이 더 크다는 분석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좁은 계단과 5층으로만 운행되는 고객용 엘리베이터가 조금은 불편했다는 생각도 든다.

서점은 기업이다. 경영상의 문제가 있었다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새로운 사업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당연한 현실원칙이다. 이 간단한 사실을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을 가라앉히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종로서적이라는 기업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이유가 있다면 종로서적이라는 문화적 기호(記號)에 각인되어 있는 역사적인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어느 출판인의 지적처럼, 종로서적은 순수하게 서점으로 시작해서 대형화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거대자본을 바탕으로 서적시장에 뛰어든 다른 대형서점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출판자본을 논외로 한다면, 6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책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문화적 열정이야말로 종로서적이라는 대형서점을 가능하게 했던 보이지 않는 근거가 아니었을까.

종로서적은 단성사와 더불어 종로의 문화적 상징이었다. 종로라는 거리가 갖는 역사성은 결코 만만치 않다.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로는 서울의 한복판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표적 상가이다. 또한 개항 이후로 종로는 한국인의 마음 속에 위치한 상징적인 광장이기도 했다.

1898년 독립협회가 의회설립을 요구하며 관민공동회를 열었을 때 정부 대신들과 시민대표들이 탁자를 놓고 만남을 가진 곳이 다름 아닌 종로 대로였다. 3·1운동의 상징적인 출발지인 파고다 공원이 있는 곳이며, 해방 이후에는 민주화를 위한 외침이 격랑을 이루며 어김없이 흘러들던 곳이다.

종로가 경제의 요지이자 정치적인 공간인 동시에 문화적인 분위기를 간직한 곳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데에는 종로서적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종로서적은 종로가 젊은 세대들의 소비문화만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 아님을 알려주는 심리적 저항선과도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종로서적에는 책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기다림의 문화가 있었다. 약속시간을 전후해서 책들을 구경하며 사람을 기다리다가 맘에 드는 책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구입을 하거나 선물을 하곤 했다.

종로서적에서 책을 보고, 주변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카페에서 커피나 맥주 한 잔을 하는 흥취는 얼마나 친숙하면서도 매력적이었던가. 종로서적이 사라지면 세련되고 화려한 매장이 들어서서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옛 사랑의 추억처럼 종로서적과 관련된 대한 우리의 기억도 빛 바랜 사진처럼 낡아갈 것이다. 추억이란 소멸에 저항하면서 아름다움을 발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자본의 논리와 추억의 존재방식은 그렇게 만나고 또 그렇게 각자의 갈 길을 가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입력시간 2002/06/1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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