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 중국 최고의 스타 에어로빅 강사 조수진

만만디 대륙 사로잡은 요정

월드컵 공원을 왈가닥처럼 뛰어 다니는 스물 아홉 살 처녀. 까맣게 그을른 피부에 왕눈이처럼 큰 눈, 시끌 벅적한 목소리, 수시로 터지는 장난끼가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묶어놓는다.

13억 중국인들을 사로잡은 에어로빅의 요정 조수진이다. 유창한 중국말을 소나기처럼 퍼붓지만 그녀는 엄연한 대한민국의 딸이다.

“신촌에서 응원을 하느라 사람들이랑 밤늦게까지 소리지르며 놀다가 새벽에야 돌아왔어요. 정말 신났어요.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는걸 보고 같이 간 중국 친구들이 저를 참 부러워하더군요. 중국에선 이 같은 응원을 할 수 없어요.”그녀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중국 축구 국가 대표팀의 응원단장을 맡아 6월 초 한국에 들어왔다.

중국의 예선 탈락으로 응원단은 물론 자매처럼 붙어 다니던 시범단까지 모두 떠났지만, 그녀는 혼자 남아 달콤한 고국의 축제를 함께 하고 있다.


유학생으로 건너가 8년만에 스타로

중국 관영 중앙방송 CC-TV, 북경 TV 등에 출연한 스타 에어로빅 강사, 베이징 최고의 휘트니스센터 너바나의 총괄매니저, 중국 나이키 전속모델. 현재 베이징 한국국제학교 체육교사로도 활동중인 그녀는 이번 방문기간 중에도 내내 국내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름없는 유학생으로 중국에 건너간지 8년만의 모습이다. 1974년 인천에서 태어난 조씨는 학창시절 무용을 했다. 1986년 인천 중등부 무용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천성적으로 용감한 무대 체질이라 친구들 사이에서도 늘 인기가 높았다.

에어로빅을 접한 것도 중학교 때. 무용에선 느낄 수 없었던 폭발력이 끼 많은 소녀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중 3때 이미 에어로빅 강사로 뛰며 도무지 구김살이라곤 보이지않는 이 말괄량이 소녀에게 마음의 그늘이 숨어 있으리라곤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그래도 두 분을 원망하거나 미워해 본 적은 없어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그럴수록 더 밝게 살았어요. 하지만 고등학교 때 절친한 한 친구에게 처음으로 ‘나, 어머니랑 같이 살지 않는다’고 비밀을 털어놓자 그날부터 친구가 나를 멀리하는걸 보고 많이 상처를 받았어요. 아, 이런 얘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말아야 하는 구나, 그래야 나를 미워하지 않는구나, 그래서 그런 얘기를 그 다음부턴 절대 하지 않았지요. 지금도 다른 건 겁나는 게 없지만,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만큼은 여전히 약하고 두려워요.”

1994년 TV며 냉장고 등 집안의 집기마다 빨간 차압 딱지가 붙어 있던 날, TV에 나온 중국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중국 행을 결심했다.

챙긴 짐이라곤 가방 네 개와 400만원이 전부였다. 고졸 학력의 가난하고 어린 한국 여학생의 겁 없는 모험이었다. 행여 쉽게 돌아오고 싶어질까 봐 일부러 편도 티켓을 끊었다. 우선은 공부가 목적이었다. 학비며 생활비는 자신의 특기인 에어로빅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학에 입학, 이어서 어언문화대학교로 옮겨 중문학을 공부하는 동안 결심대로 현지의 헬스클럽 에어로빅 강사로 채용돼 빠듯하나마 학비며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거리에 파는 100원짜리 미니 만두 훈둔은 거의 주식이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 입술이 부르트도록 울곤 했다. 그만 포기하고 돌아가자는 생각도 수시로 괴롭혔다. 아무 기초실력 없이 건너간 그녀가 친구들도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현지인 중국어 실력을 따라잡은 것도 사실상 생활의 절박함이 큰 이유였다.

시장에서 물건 값을 깎기위해, 외국인 티가 나면 병원 치료비까지 더 많이 물게 되는 것을 피하려 필사적으로 중국인들의 발음과 제스쳐를 익혔다. 심지어 치료 중 통증으로 신음이 터져 나올때도 외국인임이 탄로날까 봐 이를 악물고 중국인처럼 얌전하게 견뎠다.


13억인구 매료시킨 조수진식 율동

그녀가 선보인 에어로빅은 시작부터 돌풍을 몰고 왔다. 경쾌하고 역동적인 동작과 따뜻하면서도 거침없는 입담은 만만디의 대륙을 강타한 조수진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당시 만해도 중국의 에어로빅은 일종의 운동처럼 동작이 느리고 무거웠다.

그 상황에서 난데없이 출현한 20대 한국인 여성이 중국 에어로빅의 전형을 파격적으로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고교 졸업 후 호주 등지를 견학하며 나름대로 자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동작과 교습방법을 독특하게 접목시킨 조수진식 에어로빅이었다.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면서 나날이 수강생들이 불어났고, 얼마 뒤엔 현지의 방송을 통해 13억 중국인들의 아침을 열어주는 인기강사로 급부상했다. 현재도 현지 최고의 대우를 받는 에어로빅계의 스타, 조씨. ‘조수진이 가르치는 교습소’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해당 클럽의 인기와 수익이 보장되는 보증수표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친구들에게 제 계획을 말했을 땐 다들 저더러 미쳤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제가 생각했던 것들이 다행히 만사 순조롭게 맞아떨어지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된 거예요. 그렇게 이름이 알려진 뒤 1999년 한국에 잠깐 들어왔는데 가까운 한 언니가 ‘(방송에 출연한 것에 대해) 쟤, PD랑 사귀는 거 아니냐’ ‘어떤 돈 많은 남자가 뒤에서 밀어준다더라’는 식으로 말한다고 알려 줬어요. 이젠 웬만큼 익숙해져서 그냥 흘려 듣지만, 처음엔 너무 화가 났어요. TV에 출연한 건 헬스클럽에 취직한지 고작 2주밖에 안 지났을 때인데, 상식적으로도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어요. 다들 자기 식대로 남들도 그렇게 보는거지요. 중국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예요. 언젠가 한국의 한 방송사에서 찾아 왔을 때도 ‘제게 제안하시려는 일이 정확히 어떤 거냐’고 묻자 그 대답은 우물쭈물한 채 ‘당신을 스타로 만들어주겠다’고 큰소리부터 치시더군요.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다, 이 나이에 무슨 스타나 되 보려고 일을 하는 줄 아시느냐, 나중에 분명하게 일에 대한 계획이 서시거든 그때 다시 오시라’고 화를 내며 돌려보냈어요. 한국에서 하던 식대로 중국에서도 통 할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예요. ”

위기를 만났다. 조수진 열풍이 고조되자 도처에서 이를 모방한 제2, 제3의 조수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애써 고민하며 개발한 최신 동작들은 물론, 심지어 그녀가 교습 중 건넨 농담까지 그대로 옮겨 가르치는 이들까지 곳곳에서 목격했다.

문제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먹혀 들더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곳은 중국 땅이었고, 자국에 대한 애국심까지 겹쳐 원조 여부와는 상관없이 중국인들은 한국인 조수진보다 중국인 강사에 더 환영을 표시했다.

이들 중 위협적일 만큼 강력하게 부상한 라이벌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이방인임을 조씨는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무료 시범단이었어요. 제 개인에서 나아가 에어로빅 시범단이라는 전문 조직으로 길을 찾은 거지요. 당장 시범단원에게 무료로 전수해준다는 것 자체가 당시 큰 화제가 됐어요. 제 교습비는 중국에서도 최고로 비싼데, 그 돈을 하나도 받지 않고 직접 가르쳐 단원으로 활동하게 한다니까 엄청나게 사람들이 몰려들더군요. 지금도 중국에서 우리 시범단 만큼 전문적이고 활발한 곳은 없어요.”그렇게 선발된 시범단 인원이 현재 약 40명. 이번 월드컵 응원때 동행했던 단원 7명도 그 중 일부다.

실력뿐 아니라 프로근성, 단원들간의 결속까지 중국 최고의 팀으로 인정 받는 이들이다. 전체를 이끌어가는 조씨의 시원하고 화끈한 통솔력이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자들이 제게 많이 접근하지 않냐구요? 대개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 성격이 괄괄하고 남자 같아서 오히려 남자보다는 여자랑 더 친해요. 아줌마 회원들 중 처음엔 저를 보고 남자가 많이 따르겠구나 생각했는데 함께 지내보니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좋아할 타입이란 걸 알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특히 돈이나 능력 등, 그런 상대랑 사귀면 여자에게 유리할 것 같은 남자에겐 저는 더 마음이 안 가요. 가진 걸 과시하려는 남자들을 보면 상처를 받든 말든 말도 더 거칠게 해버려요. ” 실제로 그녀에겐 의아할 큼 별 스캔들이 없다.

순정파에다 워낙 분명한 성격 때문이다. 대학시절 뭇 여학생들의 시선을 받던 한 유학파 킹카는 조씨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려다 직선적인 거절에 자존심만 망가진 채 돌아섰다. 한때 끈질긴 구애공세를 펴던 한 중국의 상류층 자제도 벽창호 같은 조씨의 냉담에 지쳐 결국 제 풀에 떠났다.


중국은 내게 꿈을 준 제2의 조국

최근 그녀는 ‘중국의 아침을 깨우는 여자’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펴냈다. 가난한 유학생으로 떠나 당당한 중국의 히로인으로 일어서기까지 지난 8년간의 숨은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그러나 조씨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책이 아니라 가슴속에 숨겨둔 이야기가 따로 있다. “옛날에 양귀자씨의 ‘모순’을 읽다가 꼭 제 얘기 같아서 한참을 울었던 적이 있어요. 이번 책을 낼 때도 가슴속에 있던 얘기를 다 털어놓자 주위에서 말렸어요. 다들 제 밝은 모습만 아는데 그런 얘기를 들려주면 오히려 혼란이 온다구요. 자라오는 동안, 제 또래 여성들은 겪지 않았을 전연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저는 너무나 많이 겪었어요. 아주 나중에, 한참 더 나이가 들면 그때 얘기할 수 있겠지요.”얼마간 한국에 더 머문 뒤 그녀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다.

오전엔 체육교사로, 오후엔 에어로빅 강사이자 시범단 대표로 쉴 틈 없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중국에 언제까지 살 것인지는 계획조차 세워본 일이 없다.

그만큼 그녀가 애착을 느끼는 곳이다. 중국은 그녀에게 꿈을 주고 그 꿈의 뿌리를 내리게 해 준 제2의 고국이다. 일본 등 더 조건 좋은 환경을 두고도 굳이 자리를 옮기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다.

“저는 연예인이 아니예요. 또 이 일은 제 직업이 아니예요. 직업이 아니라, 제 삶에서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이예요. 제가 하는 에어로빅도 가장 뛰어나다 아니다가 아니라 저 조수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이 제겐 중요하고 또 자랑스러워요.”

정영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2/06/2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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