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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충북 진천 태령산(胎靈山)

진천은 문밖의 텃논들이 현재도 충북의 3대 평야로 알려져 있다. 「농자천하지 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원론에 따라 옛 삼국시대로부터 전락적 요충지로 그비중이 컸던 곳이다.

진천고을에 남아 있는 여러 산성들만 해도 그러한 과거사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충남북의 경계를 이루는 만뢰(萬賴)산성을 비롯하여 도당(都堂) 산성(진청읍 벽암리), 걸미산성(진천읍 신정리), 문안(文案)산성(진천읍 문봉리), 태령(胎靈) 산성(진천읍 상계리), 대모(大母)산성(진천읍 성석리), 두타(頭陀) 산성(초평면 수구리), 파령(巴嶺)산성(문백면 옥성리), 낭천(낭泉)산성(문백면 평산리), 갈월(葛月)산성(문백면 갈월리)등 모두가 진천고을이 지정학적(地政虐的)인 경위를 가름하는 유적들인 것이다.

「만뢰산 빼어났다 솟은 묏부리/ 진천은 우리 고장 역사 어린 곳/ 충의와 학문의 오랜 전통이/ 우리들 혈관속에 배어있나니…(이은상 작사)」로 시작되는 진천군민의 노래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진천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따라 지리와 인문의 수요를 적절히 감당해온 고을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라의 국력을 신장한 김유신(金儒信)이나 원나라의 황실을 요리한 기황후(奇皇后)의 출생지임을 내세음만은 아니었다.

이영남(李英男)은 임진왜란을 통하여 가이없는 은혜를 베푼 장수였고, 헤에그 만주평화회의의 밀사 이상설(李相卨)은 망명의 일생을 오로지 독립운동에 바친 의사였으며, 대한제국의 외교관 신헌(申櫶)과 요동벌판을 누비던 광복군 신팔균(申八均)도 진천이 낳은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려의 충절 이종학(李鐘學), 가사문학의 조종인 정철(鄭澈), 서화의 명장 강세황(姜世晃) 무림(武林)의 거목이었던 이시발(李時髮)을 비롯하여 이숙당(李淑當), 이거이(李居異), 이정영(李淨英), 임수기(林秀基), 최석정(崔錫鼎), 신집(申鏶), 허적(許積), 채지홍(蔡之洪)등이 머물렀거나 오래도록 종신한 것이 진천고을의 인물을 육성하는데 큰공천을 했을 것이다.

특히, 진천읍 상계리(上械里)에는 길상산(吉詳山), 태령산(胎靈山) 또는 태장산(胎裝山)이라 부르는 곳에 김유신(金庾信)의 사당인 길상사(吉詳詞)가 있어 김유신의 흔적과 전설이 화석처럼 굳어져 있다.

김유신은 595년(신라 진평왕 17년) 진천이 만노군(萬勞郡)이었던 시절, 태수 김서현(金敍玄)과 만명(萬明)부인의 사이에서 잉태, 20개월만에 태어났다고 한다.

김서현은 원래 가야국의 사람으로 신라에 들어와 왕족의 딸인 만명과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신라 조정에서는 3국의 각축장인 변방 진천으로 김서현을 태수로 보내자 만명부인은 어느날 밤 연못가에 신발을 벗어 놓고 자살한 것처럼 꾸민 뒤, 홀로 이곳 진천에와 김서현과 만나 이 곳 지금의 장수터에서 살면서 김유신을 낳았다는 전설이다.

태수의 관아가 있었다는 지량이 마을 담안밭의 장조터, 그의 태를 묻었다하여 태장산, 그가 소년시절 말을 달렸다는 기마바위( ), 죽은 뒤 나라에서 사당을 짓고 제사를 올렸다는 군자터(또는 길상사터), 그가 태어났을 때 미역을 빨은 물이 아랫마을까지 흘러내렸다하여 멱수마을, 그가 백제군을 막았다는 서술원(西戌院)마을, 그가 공부를 하던 곳이라는 장수굴, 그가 화랑을 훈련시켰다는 화랑벌, 그가 기도를 하였다는 당고개, 그가 활솜씨를 닦았다는 쏠고개…

김유신을 제사하는 사우(詞宇)는 나라안에 무려 17개소나 된다. 역사여! 세월이여!

이홍환 현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2/07/1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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