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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세대 스타 김남일] 남일 오빠 사랑해요

인터넷 팬 동호회 봇물, 광고업계도 러브 콜 쇄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 선수들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특히 23명의 태극 전사들 중 수비형 미드필더인 김남일(25ㆍ전남 드래콘즈)이 이른바 ‘R세대’의 우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R세대’의 말로 인기 ‘짱’이다. 김남일은 god나 H.O.T. 등 국내 어떤 대중 스타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김남일이 등장하는 곳에는 소녀 팬과 20~30대 여성 팬들이 몰려드는 것은 물론이고, 대표팀 버스에는 ‘남일아, 나랑 결혼해 애 낳자’는 문구의 낙서가 써 있을 정도다.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수 백여개의 김남일 동호회가 개설돼 성황을 이루는 등 그야말로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스타 부재로 고민하던 전남 드래곤즈는 요즘 김남일 덕에 연일 매진 사례를 빚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광고 업계에서도 R세대의 최고 스타로 떠오른 김남일을 잡기 위해 법석을 치르고 있다.

현재 10여개의 업체가 각각 2억원 상당의 출연료를 제시하면 섭외에 나서고 있다.


거침없는 행동ㆍ외모에 R세대 열광

김남일의 인기가 이처럼 치솟는 것은 그의 성격이나 외모, 행동, 실력이 모두 R세대의 구미에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남일은 한마디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금강석이다.

그에게선 기존 대중 스타들에게서 보이는 유연함이나 노련함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반항아적이고 거침 없을 것 같은 그의 투박함이 R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경기에서나 일상 생활에서 김남일은 터프가이 그 자체다.

6월 10일 벌어진 미국과의 월드컵 조별 리그 2차전. 대표팀 이을용의 페널티킥이 실패하는 순간, 문전으로 쇄도하다 미국 선수들과 충돌한 김남일의 눈에선 광기가 흘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입에서 미국 선수들을 향해 육두 문자가 튀어 나왔고, 그것은 여과 없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중계됐다. 이후 네티즌들은 이 사건을 ‘김남일의 9:1 맞짱 사건’이라 명명하며 김남일의 투혼을 높이 평가했다.

김남일은 내성적인 성격이라 평소에도 말수가 적다. 하지만 가끔 한번씩 나오는 그의 말에는 가식이나 꾸밈이 없다. 4강 진출이 확정된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그는 “진짜 얘기해도 돼요”라고 물으며 대뜸 “나이트요”라고 대답했다.

7월 2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축하연에서도 김남일은 “나이트 가고 싶은 김남일 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 관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솔직 담백한 성격과 행동, 그것이 김남일을 R세대의 전형으로 만들어 준 가장 큰 요인이다.

경기장에서도 김남일은 R세대가 좋아할 만한 터프가이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2001년 8월 김남일이 히딩크 사단의 유럽 전지훈련 멤버로 전격 발탁됐을 당시 축구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부분이 ‘대체 요원용이겠지’ 또는 ‘테스트용이겠지’ 정도로 폄하했다.

사실 그때까지도 김남일은 국내 프로축구에서 ‘반칙에는 능하지만 기본기가 부족한 중상위급 정도의 선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4년 전 프랑스 월드컵 때 네덜란드 대표팀의 재현을 구상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의 다비즈’로 야생마 김남일을 점 찍고 있었다.

이미 베르캄프(황선홍), 코쿠(송종국), R 데부르(설기현)를 낙점한 히딩크는 근성과 자질을 갖춘 김남일을 잘 다듬어 중원의 맹장으로 키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히딩크의 기대에 부응해 김남일은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최고 스타 지네딘 지단을 꽁꽁 묶었으며, 월드컵대회에 들어서는 폴란드 공수의 핵 카우지니, 포르투갈의 피구, 이탈리아의 토티 등을 꽁꽁 묶는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다.

그동안 허술하고 우스꽝스러운 마법사 ‘가가멜’로 통하던 김남일은 월드컵을 치르면서 근성 있는 악바리로 변신,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반항아적 이미지와 순수함의 조화

여고 2학년이라는 강승아(17ㆍ가명)양은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거친 플레이, 거리낌 없는 남성다운 행동과 말에서 기존 연예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며 “반항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내면은 순수하고 따뜻할 것 같은 김남일이 너무 멋지다”고 말했다.

김남일의 암울했던 과거 또한 R세대들에겐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인천 앞바다 자그마한 섬 무의도에서 통통배를 모는 어부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김남일은 짧지만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왔다.

김남일은 인천 송월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회 달리기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축구부로 스카우트 됐다. 또래 아이들 보다 한참 작아 ‘땅콩’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그는 축구에 심취하면서 작은 체구에 못지않게 당찬 실력을 보였다.

축구시작 1년 만에 전국대회 득점왕에 오르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자식 하나 잘 길러보겠다는 부모님은 이런 재질을 보고 재산 목록 1호인 통통배를 처분하고 뭍으로 나와 김남일을 뒷바라지 했다. 아버지는 공사장 막일을 나갔고, 어머니는 인부들에게 밥을 해주는 함바집에서 일을 했다.

그러나 반항아적 기질을 갖고 있던 김남일은 부평고 1학년 때 선배들의 괴롭힘을 참지 못해 축구부 부원 5명과 함께 무단 가출하는 사고를 일으켰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으나 고집이 유독 강했던 김남일은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취직하며 무려 8개월 동안 가출 생활을 했다.

결국 아버지의 눈물 어린 호소로 팀에 복귀한 김남일은 그 후 낙천적인 성격 덕에 이런 아픈 과거를 훌훌 털어 버리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김남일은 이번에 받은 월드컵 포상금 2억6,000만원(세전 4억원) 전액을 그간 고생하신 부모님의 집 장만에 쓸 계획이다.

김남일이 유독 R세대 여성 팬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데는 그의 빼어난 외모도 한 몫을 톡톡히 한다. 182㎝, 75㎏의 김남일은 상ㆍ하체의 균형이 잘 잡혀 대표팀에서도 가장 몸매가 잘 빠진 선수로 뽑힌다.

여기에 순진해 보이는 속쌍꺼풀이 진 큰 눈과 오똑한 코, 그리고 다소 반항적인 헤어 스타일과 터프한 이미지는 R세대에게 크게 어필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실제로 김남일은 가벼운 스포티한 차림을 하면 20대의 반항아처럼 보이지만, 정장을 입으면 휜칠한 귀공자의 품위가 풍긴다.


계층간 화합과 이해 이끈 R세대

2002한ㆍ일 월드컵은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기성 세대와 신세대가 한데 어울려 어깨동무를 한 채 ‘대~한민국’을 연호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기성 세대는 위태롭고 불안하기만 하던 신세대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신세대도 기성 세대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떨쳐 버리게 됐다. 길거리 응원전의 주축이었던 소위 ‘붉은 악마(Red Devils) 세대’라고 하는 ‘ R세대’가 바로 이런 세대간 계층간의 화합과 이해를 이끌어 가고 있다.

R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젊은 세대들과 달리 그 형성 자체가 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적 동질감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그간 우리 청소년이나 젊은 세대를 특정 짓고 분류하는 잣대는 주로 대중 스타에 대한 우상화나 시대적 유행이나 조류가 대부분이었다.

1970년대의 낭만을 상징하는 ‘통기타 세대’, 1980년대 ‘디스코 세대’, god나 H.O.T. 같은 댄스 그룹에 열광하는 ‘힙합 세대’, 그리고 인터넷 세대를 칭하는 ‘N세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이런 연예계 스타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인기를 통한 부와 명성이다. 연예 기획사들은 치밀하게 기획된 스타 마케팅을 통해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들을 쉽게 유혹할 수 있었다.

따라서 기성 세대는 이처럼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이런 대중 스타에 몰입하는 청소년들을 탐탁치 않게 생각해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형성된 R세대는 다르다. 이들 R세대는 전혀 계산되지 않은, 순수하고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스타에 열광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세대들과 대비된다.

이들은 상업성으로 화려하게 포장된 대중 스타보다 국가를 대표해 그라운드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이 부서져라 싸운 태극 전사들의 값진 땀방울을 높이 산다. 꽃 미남으로 분장한 스타보다 하나의 큰 목표를 향해 묵묵히 매진해 가는 젊은이에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또한 기존의 어두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그들만의 환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넓고 개방된 공간에서 마음껏 외치고 열광한다. R세대는 열린 공간인 광장에서 떳떳하게 그들의 스타에게 환호하고 감동한다. 땀과 노력의 결실 속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R세대는 알고 있다.


광장의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스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기 그룹 god의 팬이었다는 여고 1년생 정다미(16)양. 월드컵이 시작된 이후 정양의 관심은 180도 변했다. 그간 정양의 방안을 장식했던 god의 사진은 대부분 사라지고 그 자리에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대형 브로마이드가 걸려져 있다.

정양은 매일 한 축구 대표 선수를 소개하는 인터넷 카페에 매일 들어가 글을 올려 놓거나 좋은 그림을 다운 받는 게 주요 일과 중의 하나다.

“god는 노래하는 가수에 불과 하잖아요. 하지만 축구 대표 선수들은 나라를 대표해서 뛴 국민적 영웅이잖아요. 어디 비교가 되나요”라는 정양의 말은 변화한 R세대의 의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전에는 god 밖에 몰랐어요. 그 오빠들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달아요. TV에 축구 대표 선수들의 이름만 나와도 가슴이 설레 입니다. 사력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 그리고 온 국민이 하나가 돼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 가수 공연장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슴이 뭉클해 몇 일 동안 아무 일도 못했습니다. 예전에 반대하던 부모님도 함께 응원하며 저와 똑같이 선수들의 팬이 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당당해 졌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반 친구들도 모두 마찬가지에요.”

요즘 축구 대표팀이 있는 곳은 순식간에 장터가 돼 버린다. 선수 사인을 받거나 얼굴이라도 보려는 팬들의 성화가 기승을 부린다. 여기에는 10대 청소년들과 20~30대 직장인은 물론, 40~50대 중ㆍ장년 부인들까지 섞여 있다.

기성 세대들까지 인정하고 지지해 주는 덕에 요즘 R세대들은 더욱 열정적이고 집요하게, 하지만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스타를 쫓아 다닌다.

한신대 김종엽 교수(사회학과)는 “월드컵을 치르면서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대중 스타에 대한 인식이 과거 젊은 연예인 일변도에서 스포츠 선수와 감독에 이르기까지 외연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며 “R세대 청소년들은 외형적으로는 모던하고 반항적이지만 내적으로는 부드럽고 따뜻한 성격을 가진, 능력 있는 남성을 선호한다.

김남일은 이런 특징을 모두 갖춘 선수”라고 말했다.

송영웅 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2/07/1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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