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큰 손' SM 제국 몰락

대주주 이수만씨 횡령 등 비리혐의 입건, 정·연 유착 의혹도

“SM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김경욱(34)씨에 대해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대주주 이수만(50)씨를 입건했습니다.”

7월 25일 서울지검의 한 고위간부의 입에서 뜻밖의 사실이 튀어나오자 기자들 사이에서는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SM, GM기획, 도레미 미디어, 싸이더스 등 4대 대형 연예 기획사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을 신호탄으로 연예계 비리에 대한 본격수사가 시작된지 보름여만에 검찰이 드디어 거함 SM을 침몰시킨 것이다.


댄스그룹 대박으로 폭발적 성장

SM은 수사 시작 당시부터 그 상징성으로 인해 가장 큰 주목을 받아왔다. 연예계 일각에서는 검찰의 수사성패가 SM을 제대로 손댈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는 지적까지 나왔을 정도다. 실제로 SM이 우리나라 연예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1989년 SM기획으로 출발했던 SM은 설립자인 이수만씨가 95년 SM엔터테인먼트로 회사이름을 바꾼 직후 내놓은 H.O.T., S.E.S. 등 10대 댄스그룹들이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부터 성공가도를 달리게 됐다.

SM의 성공은 유사업체의 양산을 불러왔고 결국 가요계의 판도가 기획사와 댄스그룹 중심으로 재편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업계 최초의 코스닥 등록, 최초의 일본지사 설립 등의 영광도 SM의 몫이었다.

그러나 영광만큼이나 뒷말도 적지 않았다. TV를 10대 위주의 립싱크 가수들의 놀이터로 만들었다는 비난과 어린 가수들에 대한 노예계약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코스닥 등록사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칠 정도로 이씨 개인의 전횡이 심했던 부분도 자주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에 드러난 혐의도 SM이 ‘이수만 제국’의 동의어임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대표이사 김경욱씨에 대한 구속영장에 따르면 이씨는 김씨와 공모해 회사자금 11억5,000만원을 빼돌린 뒤 이를 99년8월 있었던 유상증자 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계장부상에는 증자 대금이 정상적으로 들어온 것처럼 거짓 기재한 뒤 실제로는 회사 공금을 이용해 이씨 개인 명의로 5,000주의 주식을 구입해 거액의 시세차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SM이 2000년 4월 코스닥 등록이후 최고 주당 6만5,000원까지 주가가 급등한 점으로 미뤄보면 이씨의 시세차익은 수백억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혐의만 놓고 봐도 이씨에게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이 적용될 수 있을 상태다.


금품 주식로비등 추가혐의 드러날 듯

그러나 이씨의 혐의가 이 정도에서 끝나리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씨가 ‘바지사장’에 불과한 만큼 이씨 본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경우 혐의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이미 검찰은 이씨가 사무실에 대형 금고를 설치해놓고 기밀서류를 보관해왔으며 검찰수사 직후 김씨를 시켜 서류를 빼내도록 하는 등 증거은닉을 시도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도 “연예기획사의 현대화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은 여전히 대주주 몇 명에게 집중돼 있다”며 “실무진들은 자금흐름이나 비밀장부의 존재 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씨 개인에 대한 조사에서 추가 횡령이나 증자과정의 비리, 방송 관계자들에 대한 금품 주식로비 등 범죄혐의가 추가로 밝혀질 공산이 큰 셈이다.

실제로 방송 관계자들에 대한 이씨의 금품 및 주식로비 의혹은 수사초기부터 불거졌다. 검찰이 입수한 SM 주주명부에 방송기관 고위 관계자와 전직 PD, 방송작가, 유명 MC와 개그우먼 등의 이름이 포함돼 있었다.

여기에 이씨가 이번에 구속된 음악전문 케이블방송 m.net 본부장(상무이사) 김종진(43)씨 등 몇몇 방송 관계자와 ‘호형호제’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금품로비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김씨가 지난해 한류열풍에 공로가 있다는 이유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배경에도 이씨의 강력한 천거가 있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을 정도다.


이씨 정ㆍ관ㆍ재계 인맥으로 불똥 튈수도

또한 이씨가 모교인 서울대 출신들을 중심으로 정·관·재계에까지 상당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는 설도 있어 자칫 수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한때 이씨가 민주당의 한류문화정책기획단원으로 활약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연 유착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문제는 현재 해외체류중인 이씨가 순순히 귀국할 것인지의 여부다. 6월 말 월드컵 결승전에 초청받아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던 이씨는 현재 미국에 체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M관계자는 “이씨는 매년 6월에서 8월 미국 현지에서의 신인 발굴 오디션, 해외 작곡가의 곡 섭외 등을 위해 출장을 갔으며 이번에도 업무 관계로 출국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아직 검찰수사에 대해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과연 이씨가 자진 귀국해 자신의 ‘바벨탑’을 허물고 새 출발을 시도할 것인지, 아니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 등 유명 해외 도피자들의 명단에 그 이름을 올릴 것인지 여부는 8월 중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박진석 기자

입력시간 2002/08/02 17:19


박진석 jseo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