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상 총리 인준 부결의 의미와 과제

인사청문회 강화해야, 대상도 확대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 총리는 국회의 인준을 끝내 받지 못했다. 장상 총리인준 부결은 외형상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결정권을 가진 형상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민주당의 일부 의원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인준의 모양새를 위해 과반수를 조금 넘는 표로 통과시키기 위해 자유투표를 했고, 지도부는 찬성 투표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현 정국에서 한나라당이 찬성표결로 대통령의 인사에 신임을 보내기는 매우 어려우며, 반면 민주당은 일부 개혁파 의원들이 이미 반대의사를 공론화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에 젊은 의원들이 동조한 것으로 보여진다.


손으로 해를 가리려 했던 장상 서리

7월 11일 개각에서 장상 총리서리가 임명되었을 당시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준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 예상은 빗나갔다. 여성단체들은 장상 총리서리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보냈고, 다른 시민단체들은 대체로 부적격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렇다면 그는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가 있는 인물일까? 그에 관한 기본 정보가 드러났을 때 그는 현금예금이 상당히 많은 것이 특이했고, 그 정도의 사회 계층이면 갖고 있을법한 부동산 자산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지만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큰 아들의 미국국적 취득으로 불거진 시민단체의 반대는 의례적으로 있을법한 일이고, 그들의 도덕적 기준이 다른 집단에 비해 다소 높기 때문이다. 국민적 정서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지만 총리를 인준하는 국회의원 자신들의 내면적 기준에는 괜찮을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는 어쩌면 언론을 대면하는 방법이나 인사청문회장에서의 미숙함 때문에 인준에 실패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총리로 지명되었을 때 큰아들 미국 국적취득이나 부동산 투기관련 해명, 그리고 인사청문회장에서 위장전입이 불거졌을 때 노령의 시어머니 탓을 하고, 학력 허위기재 논란이 있을 때 비서 탓을 하고, 본인의 미국 영주권 취득에 대해서는 가난을 탓했다.

그는 철저히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상황 탓을 함으로써 손으로 해를 가리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이러한 답변 태도는 여론의 불신을 유발했고, 그의 국가관과 도덕성을 의심하게 했다.


민주당의 부패논란은 자충수

그리고 이러한 비판적 여론에 민주당은 일관되게 이회창 후보와 대비(對比)했다. 이것은 현 정국의 화두를 늘 ‘누가 더 더러우냐’, 즉 더 부패하냐 하는 논란으로 정국을 이끌어온 민주당의 상황판단이 미숙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같은 대응방식은 부패정국에서 민주당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현직 대통령의 두 아들이 부패혐의로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있는 상황은 다른 무엇으로도 덮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6.13 지방선거가 이러한 민심을 반영했고, 8.8선거에서도 뒤바뀌어지기 어렵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은 남을 탓하거나 비판하기 이전에 절대적으로 자기반성과 희생이 필요하다. 이러한 주장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내부의 개혁인사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내부인사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을 설득한다는 것은 호도(糊塗)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장상 총리서리가 청문회장에서 보다 노련했더라면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과거의 잘못을 깨끗하게 반성하고,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대한 방향을 적절히 제시했다면 결과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약간의 도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다수당인 야당은 임기 7개월의 최초의 여성 총리를 부결시키기 어려웠고 지도부 몇십 표의 찬성으로도 인준이 가능했으며, 민주당 개혁파도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 게 여론을 악화시켰고,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진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DJ인사정책의 난맥상 입증

이것은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절묘한 수로 임기말 정국을 돌파하려고 했던 대통령의 인사 실패와도 연결된다. 대통령은 임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개각을 철저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집권초 공동정부의 내각 구성이나 고위공직자의 임명과정에서도 이 같은 논란은 계속됐다.

장관 임명이 물론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대통령의 인사권행사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만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선거정국 때 장관을 교체해 출마시키거나 낙선한 출마자를 고위공직에 재임명하고,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물을 무리하게 기용함으로써 인사권 행사가 매우 자의적이고, 여론을 도외시한 인사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7.11 개각에서도 이러한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사청문회는 고위 공직자의 임용 과정상 나타나는 여러 문제들을 걸러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즉 인사기준의 부재, 짧은 임기와 잦은 개각, 선정과정의 문제 등을 입법부 차원에서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써 기능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국무총리,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 재판관, 감사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 등에 한정된 인사청문회 대상을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4대 권력기관장 및 각 부처 장관까지 확대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짧은 인사청문회 준비기간을 늘림으로써 충분한 심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장 활발하게 인사청문회를 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인준기간이 장기화하는 추세이고, 그래야만 실질적인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 첫째 덕목은 도덕성

이번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우리 나라 고위공직자의 도덕성과 신뢰성 기준을 보다 엄격히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러한 기준이 선출직 공무원에게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인사청문회는 국정수행능력과 정책관 등에 대한 종합적인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지만 이 같은 검증은 도덕성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도덕성과 신뢰성이 먼저 검증되고 난 이후에 국정수행능력과 정책관이 검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에 스스로 사퇴하곤 한다.

권해수 한성대 교수, 경실련 정부개혁위원장

입력시간 2002/08/0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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