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

여름에 강의를 들었던 한 학생이 책을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목소리를 들었다며 안부 메일을 보내왔다. 강의가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서 선생과 만났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마샬 맥루한(M Mcluhan)의 ‘미디어의 이해’에 대한 설명을 듣고 관심이 생겨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봤는데 생각보다는 어렵더라는 내용이었다. 선생이 혹시 ‘뻥친 거 아니냐’는 장난기 섞인 투정이 행간 곳곳에 배어 있기도 했다.

방송에서도 결코 쉽게 잘 읽히는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는데, 맥루한 특유의 직관적이고 잠언적인 문체가 무척이나 생경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청취자의 한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책을 찾아봤다는 사실의 확인만으로도 작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샬 맥루한은 캐나다 출신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이다. 처음에는 대학의 공학부에 입학했지만 문학에 대한 관심이 생겨 르네상스 시기의 영문학을 전공했다. 1940년대부터 관심의 범위를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도발적인 이론들을 전개해 나가기 시작한다.

맥루한에 대한 평가는 학자나 학파에 따라 극단적이다. 미디어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 사람으로 평가되는가 하면, 난삽한 문체 때문에 도무지 커뮤니케이션(소통)이 안 되는 커뮤니케이션 이론가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국내에는 ‘미디어의 이해’를 비롯해서 ‘구텐베르크의 은하계’ ‘미디어는 마사지’다 등이 소개되어 있다.

맥루한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미디어(media)라는 용어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미디어 하면 매스 미디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매스 미디어는 미디어의 하위범주에 불과하다.

맥루한의 미디어 개념은 매스 미디어에 국한되지 않고, 언어·문자·화폐·자전거·숫자·도로·광고 등과 같이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나 기술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맥루한에 의하면,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 인간의 신체와 감각을 확장하는 모든 도구와 기술이 미디어이다.

예를 들면 자전거는 다리의 확장이고, 청바지는 피부의 확장이고, 콘택트 렌즈는 시각의 확장이며, 인터넷(전자회로)은 중추신경의 확장이다.

미디어의 이해에서 가장 기본적인 생각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내용이 중요할 따름이며 미디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맥루한은 미디어가 그 자체로 하나의 근원적인 메시지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유용한 정보를 만나는 일도 의미가 있지만,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와 우리의 몸이 만날 때 생기는 신체적·감각적 변화야말로 미디어가 전달하는 근본적인 의미라는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를 만날 때 우리의 몸은 부지불식간에 근원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미디어는 우리의 몸에 어떠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그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데, ‘미디어는 마사지다’라는 명제로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메시지(message)에서 마사지(massage)로 철자를 바꾸는 언어유희 속에서 맥루한의 통찰이 보석처럼 빛난다.

미디어는 마사지라는 말은 미디어가 일상적인 의식이 아니라 몸에 직접 작용해서 무의식을 형성한다는 의미이다. 미디어가 그 자체로서 이미 하나의 근원적인 메시지이고 인간의 몸에 작용해서 새로운 무의식을 형성하기 때문에, 미디어는 인간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변화시킨다.

‘미디어의 이해’를 집필했던 1964년에 맥루한의 주요한 관심은 전기(電氣) 매체의 발달이 가져올 역사적인 변화에 있다. 전기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중추신경 체계를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세계는 하나의 촌락(지구촌)의 이미지로 다가오게 되며, 문자문화에 억압되어 있던 구전문화의 전통이 문화의 차원에서 되살아나고, 취향에 따른 재부족화(再部族化:retribalization)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월드컵 거리 응원을 떠올려 보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전광판이라는 첨단의 미디어 테크놀로지,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언어적 질감, 고대의 전사(戰士)처럼 보디 페인팅을 하고 부족의 상징(태극기)을 높이 쳐들었던 붉은 악마들의 모습 등등.

인터넷 내부에서 인터넷을 반성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맥루한의 책은 낡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전기 매체의 시대를 바깥에서 사유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다. 메일 보낸 학생의 귀여운 투정에 대한 최소한의 답변이라도 되었는지 모르겠다.

입력시간 2002/08/2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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