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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巨匠] 서세옥

"나는 사람이 아닌 정신을 그린 것"

이야기에 열기가 올라가자 그는 갑자기 기자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 눈물이 쑥 빠질 정도의 아픔에 “아!”라는 비명이 절로 새 나왔다. 서세옥은 “그것조차 당신의 진실이 아니다”라고 말하고는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렇다면 진실은 어디 있는가.

산정(山丁) 서세옥(73)이 사는 성북동 자택은 도로에서 걸어 올라가 10여분 거리에 있다. 커다란 나무 대문을 따고 들어간 마당은 바위와 소나무 등이 어울려 하나의 소자연이다. 그의 집은 자연과 인공이 서로 녹아 들어 있다.

손님을 맞아 먼저 데려가는 응접실이 있는 곳이 무송재(撫松齋)이다. 소나무를 어루 만지는 집이라는 뜻이다. 섬돌 위 고무신들이 낯선 객에게 먼저 말을 걸어 오는 듯 하다.


동서고금 망라한 1만여권의 책에 압도

그는 기자를 끌고 자신의 서재 겸 작업실 ‘석과재(碩果齋)’로 갔다. 햇빛이 살짝 비치는 반지하 방은 차라리 거대한 창고의 모습을 하고 있다. 1만여권에 달하는 동서고금의 도서가 이뤄내는 책의 기운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1만여권을 헤아리는 소장 도서는 해외에서 출판된 것들이다. 여기에는 중국 허베이(河北) 인민 출판사의 ‘이백(李白) 시선집’이 있는가 하면 영국에서 최근 발간된 ‘팝 아트 2001’도 있다. 거장에게 장르의 경계란 덧없는 편가르기일 뿐이다.

햇빛이 스며드는 벽 한면에는 난을 배경으로 조그마한 원통 조각이 빽빽히 도열해 윤기를 발한다. 중요 일과 중 하나인 전각(篆刻)이다. 그는 수산석과 청전석 등 중국산 돌로 도장을 판다. 그는 “옥(玉)은 쌍스러워 품위 있는 사람은 돌(石)로만 한다”며 힘들게 돌을 고집하는 이유를 비쳤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조각끌을 들고 글자를 새긴다.

그에게는 안경을 바싹 당긴 채 조각끌로 글자를 새겨 나가는 일과 큰 붓을 들고 일필휘지해 나가는 작업이 동격이다. 그는 “나에게 글씨, 그림, 전각은 같은 세계”라고 말했다. 옛 선비들이 추구했던 전인적 세계관이 그를 만나 실현된 것이다.

그는 한시의 대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인생, 자연, 예술 등에 대해 지금껏 지어 온 한시 수백수는 지금 작가의 손으로 정리되고 있다. 3년전 출간될 계획이었으나 원고 정리가 미뤄지다 보니 2003년 상반기 중까지는 붓으로 씌어진 그대로 영인 출판될 계획이다.

그는 무엇보다 인간을 가장 많이 또 줄기차게 그려 온 한국 화가로 기억된다. 1978년 종이에 수묵으로 그린 ‘춤추는 사람들’은 사람 인(人)자 만을 무수하게 배치해 인간 군상을 표현한 작품으로 앙리 마티스의 걸작 ‘춤’과 비교할 정도로 탁월한 조형성을 인정 받았던 작품이다.


극도의 생략으로 빛나는 단순미

그러나 얼른 보기에 똑 같아 보이는 그 인간들은 모두 다르다. 그는 “50년 넘게 인간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려 오지만 아침 저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그것도 가장 단순한 화구인 필묵으로만 그린다. 색채 쓰기를 금기시하는 수묵의 전통에서 길어 올린 극도의 생략과 단순미는 그것 자체로 매력이었다.

그는 “몇 천년을 그려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업을 두고 평단은 ‘동양의 정신을 상징하는 먹의 효용과 기능을 극대화해 낸 작가“라며 “먹의 운용이 다다를 수 있는 극한점을 보여준 화가”로 평한다.

그는 “나는 사람만을 그린 게 아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봤을 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껏 읽은 무수한 동서고금의 책들은 모두 지은이들이 입고 버린 헌 옷들이다.” 그는 그것들이 전부 껍데기, 위선, 가짜라고 말했다.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부처도 성자도 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극도로 단순화된 화면을 통해서 그는 형상이 아니라 정신을 그린다.

그는 “나의 그림은 인간이 얽어 놓은 그물을 상징할 수도 있다”며 자신의 그림을 열린 가슴으로 봐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화가 스스로 이걸 그렸다고 말하는 순간 그림의 생명력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지금껏 1만권이 넘는 책을 읽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지은이들이 입고 버린 헌 옷”이라고 말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우선이다.

그는 언제나 젊은 사람들에 둘러 싸여 살아 왔다. 1954년 이래 서울대 미대 교수로 후학들을 키워 온 그에게는 ‘서울대 출신 화가들의 대부’라는 별칭이 자연스레 붙었다. 그는 “대학 생활 50년에 키워 낸 제자가 수천명”이라며 “정초 때면 하루 수백명씩 몰려 오는 세배 손님 치르기가 만만찮다”며 웃었다.

그는 “지금까지 그려 온 그림들은 모든 것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나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 무수한 인간들을 그려 온 것은 이미 이뤄진 모든 것들을 다 비워 버리고 그 순간 나의 참모습을 만나기 위해서 였다”고 말했다. 오늘도 그는 작업실에서 여전히 자신과의 조우를 꿈꾸고 있다. 먹과 붓만으로.


미술가에게 말과 글은 불필요

그림을 왜 그리느냐고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 온다.“밥 먹고 할 일 없으니 그리는 거죠. 그림이란 게 별 거 없어요. 재미 있으니 하는 거요.” 약간의 설명을 요구했다. “미술하는 사람에게 말이나 글은 필요 없어요. 그래서 좋은 거지.”

평단은 그를 두고 ‘사실주의적 동양화에서 출발해 가장 완벽하게 절제된 현대한국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노대가’라고 표현한다. ‘우리 미술이 반세기에 걸쳐 배출한 최고의 화가’ 또는 ‘한국화가 현대 조형으로서의 골격을 갖추는 데 교본의 역할을 하는 화업의 주인공’이라는 평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시ㆍ서ㆍ화가 한 점으로 응축되는 경지다.

그가 최근 “최소한의 본질만을 남기고 일체의 형상을 배제하는 그림 그리기를 추구해왔지만 더 압축하고 줄여서 보다 서체적(書體的)으로 나아가야 된다”고 밝힌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이다. 그는 자신의 화력을 가리켜 “허위를 벗어 던지고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압축했다.

동양적 미학의 절정을 향해 정진하고 있는 서세옥과는 달리 아들 서도호(41)는 비디오와 설치 미술의 중진이다. 현재 미국의 하버드 대학을 중심으로 구미 지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9월에 시애틀에서 대규모 설치전을 벌일 계획이다.

그의 마당에는 웬만큼 정원 치장을 한 그 어떤 집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 하나가 있다. 소나무와 돌 틈 사이에 피어 있는 커다란 연꽃 한 송이다. 예술에 대해서는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펼쳐 오던 그는 이 대목에 이르자 금새 얼굴이 환해진다.

그는 “마른 땅에서 연꽃을 피우는 기술은 나 뿐”이라며 “흰 꽃과 노란 꽃 등 수 보통은 볼 수 없는 종자까지 개발해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고 자랑한다. 스스로에게 ‘연꽃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붙인 것은 그래서다.

그의 집 아래에서는 각양각색의 문물들이 여전히 사람들을 혹하고 있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입력시간 2002/08/3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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