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즐겁다] 원주 서만이강

휘도는 물굽이마다 유년의 추억이…

서강은 강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이 남김없이 파괴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고마운 존재다. 이곳에 가면 강에서 뛰놀던 유년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서강에는 지금도 족대 하나로 천렵을 즐기는 아이들이 있고, 깎아지른 뼝대(바위 절벽을 일컫는 강원도 사투리) 아래로는 하늘빛을 빼닮은 파란 물줄기가 흘러간다.

청염한 선비처럼 꼿꼿한 기상을 품은 소나무들이 어울려 하늘을 우러러보고, 굽이치며 흘러가는 강물이 펼쳐진 곳엔 바람이 머무는 정자가 있다.

신림에서 영월로 가는 길을 따라 가면 황둔에 닿는다. 황둔에서 샛길로 빠져들면 얼마 가지 않아 서가의 풀른 물줄기와 만난다. 이곳의 지명이 서만이강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정겨워지는 이름만큼 이름에 얽힌 뜻도 아름답다.

이곳의 물줄기는 심한 곡류 사행천이다. 마치 농악 패거리가 열두 발 상모를 돌릴 때 만들어지는 긴 띠의 아름다운 곡선처럼 물줄기가 산을 껴안고 돌아나간다. 물줄기가 360도 휘감아 도는 강 안에 갇힌 땅은 삼면이 강으로 싸여 섬이 된다.

그런 풍경이 몇 개가 겹쳐지면 강 안에 섬이 있고, 섬 안에 강이 있게 된다. 서만이강은 '섬안의 강'이란 뜻이다.

섬안교를 건너면 길은 구절양장으로 휘어지는 강물과 나란히 달린다. 강을 따라서 나무 그늘에 앉아 탁족을 즐기거나, 족대를 들고 천렵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가 짙푸른 녹음에 부딪쳐 메아리로 들려온다.

그 길에 끝에 서만이강 최고의 풍치를 자랑하는 요선정이 있다. 백덕산 법흥사에서 내려온 물과 서만이강 두 강물이 만나 막 굽이를 돌려는 찰나 벼랑 끝에 신선이 놀고 갔다는 요선정이 있다.

요선정까지는 조그만 암자인 사자산 미륵암에서 몇 걸음이면 충분하다. 솔숲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보변 시야가 휜히 트이는 벼랑에 서게 된다. 발 아래로는 두 물줄기가 만나 힘을 얻은 서만이 강의 그림 같은 풍경에 얼려 있다.

굽이지고 휘어진 소나무 몇 그루 막아선 곳에는 빛 바랜 편액이 여럿 걸린 요선정이 있다. 조선조 숙종도 이곳을 찾아 경치에 탄복하여 어제시를 남기고 갔다.

요선정과 마주보는 집채만한 바위에는 몸에 비해 얼굴이 유난히 도드라진 마애불이 그윽한 눈빛으로 서만이강을 내려보고 있다.

마애불을 에돌아 바위턱에 올라서면 '요선정'이라는 정자 이름을 실감하고 만다. 이쯤에서 살펴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요선정이 있는 마을의 이름이 무릉리이고, 백덕산 법흥천에서 달려온 이웃한 마을이 도원리다.

두 마을의 이름을 합치면 무릉도원이 된다. 신선이 노닐던 곳, 바로 무릉도원인 것이다. 유별나게 허풍을 떤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요선정에 올라본이라면 그 정도의 호사는 충분히 부릴만한 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요선정에서도 서만이강에 물을 보태는 법흥계곡을 따라 다시 오십 리를 들어가면 사자산 법흥사에 닿는다. 법흥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로 신라말에는 구산선문에 하나로 크게 번창했다.

법흥사가 간직한 참다운 풍경은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의 솔숲에 있다. 붉은 몸통의 소나무가 대나무처럼 곧게 뻗어 올라간 끝에 솔가지가 챙 넓은 관처럼 얹혀 있어 품격이 흐른다. 그 소나무들이 호위병처럼 늘어서서 이룬 숲 그늘이 청량함이라니.

풋풋한 흙길을 밟으며 솔숲에서 번져 나오는 신선한 공기를 맘껏 들이키다보면 이내 약수가 반긴다. 맛난 물로 목을 축이고, 산자락을 한 굽이 돌아나가면 적멸보궁이다.

저 번잡한 속세의 일들은 마당으 감싼 솔숲에 막혀 이제 범접을 할 수 없다. 적멸보궁 뒤로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과 자장율사가 수도했다는 토굴이 자리자보, 그 뒤로는 백덕산의 우람하 바위가 병풍처럼 솟아 있다.

어디선가 고즈넉하게 뻐꾸기가 울고, 바람도 이내 잦아드는 적멸보궁의 적막감에 빠져들면 이곳은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차원의 낯선 공간이 된다.


☞ 길라잡이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이용, 제천 방향으로 다리다 신림IC로 나온다. 88번 군도를 따라 신림터널을 10km 가면 황둔이다. 이곳에서 좌회전해서 3km 가면 서만이강과 만난다. 삼안교를 건너 8km 가면 법흥계곡과 서만이강이 만나는 곳에 요선정이 있고, 법흥계곡을 따라 18km 쯤 가면 법흥사가 있다. 법흥사에서 적멸보궁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다.


☞ 먹을 거리 평창과 영월은 송어의 고장이다. 우리날 송어양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한다. 송어는 찬물을 좋아하며 맑은 물에서만 살아 양식하기가 까다오운 어종이다. 황둔에서 1km 거리인 솔치송어회(033-764-7080)는 송어를 직접 양식한다. 얼음팩을 깔고 그 위에 싱싱한 송어회를 올려준다. 1kg 15,000원


☞ 숙박 섬안교 주변에 잔디밭이 예쁜 민박집이 여럿 있다. 초록이 물씬한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하거나 아이들과 맘껏 뛰놀 수 있다. 또 바비큐 시설도 갖추고 있어 푸짐한 상차림을 즐겨도 된다. 섬안교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텐트를 칠 수 있는 야영장도 있다. 서마나농원(033-764-1139), 섬안관광농원(033-374-9425).


입력시간 2002/09/12 10:5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