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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계의 황제' 이주일 타계

8월 27일 한국의 대표적인 희극인 이주일(62ㆍ본명 鄭周逸)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국민을 웃기고 울려온 ‘코미디계의 황제’였다.

폐암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해 10월말.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금연홍보대사를 맡아 전국적인 금연 열풍을 몰고 왔다.

특히 축구광이던 그는 지난 2002 한ㆍ일월드컵 때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경기장을 찾아 한국팀의 주요 경기를 관전했다. 그는 “투병 중인 내가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 국민들도 더욱 큰 힘을 내지 않겠어요”라며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식에도 참석할 것”이라고 되뇌이곤 했다.

투병 말기에도 삶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끝내 깊어진 병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암 투병 10개월 만이었다.


파란만장한 삶, 자고 나니 벼락스타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다. 1940년 10월 24일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난 이씨는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북한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일제 때 면서기와 어업조합서기를 지낸 내력 때문에 늘 고통을 받았다. 견디다 못해 아버지를 따라 월남했다.

그가 자신의 숨겨진 끼를 발견한 것은 1960년대 초 육군 문선대에서 사회자로 명성을 날리면서부터다. 이후 1965년 ‘샛별악극단’ 사회자로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부인 제화자씨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진 것도 군대 시절의 일이다. 제씨의 오빠가 그의 부대에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 인연이 됐다. 한 눈에 반한 이씨의 적극적인 구애로 상병 시절 결혼식을 올리고 부대 근처에서 신접 살림을 시작했다.

이씨가 무명배우로 20년간 설움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제씨는 불평한 마디 없이 남편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다.

이씨는 아내와 딸을 춘천 부모님 집에 맡긴 채 유랑극단을 따라 전국을 떠돌았다. 배삼룡 서영춘을 흉내내는 장기 덕에 가는 곳마다 인기 만점이었지만, 못 생긴 얼굴 탓에 설움도 많이 받았다. 방송 출연은 퇴짜맞기 일쑤였고, 간첩으로 오해 받아 모진 매를 맞기도 했다.

가수 하춘화와의 인연 또한 그의 코미디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1977년 이리역 폭발 사고 때는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은 채 기절한 하씨를 구해낸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남다른 친분을 쌓아왔다.

마흔 살 되던 해인 1980년 TBC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에 출연, 그의 운명은 완전히 바뀐다. 그가 첫 방송에서 의사 역을 맡아 환자 대신 실수로 자신의 눈을 까보이며 “운명하셨습니다”라는 대사를 말하면서 벼락 스타가 됐다.

이후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와 같은 숱한 유행어를 만들어냈고, 팝송 ‘수지큐’ 노래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며 뒤뚱뒤뚱 걷는 오리궁둥이춤은 장안의 화제가 됐다.

그는 암울했던 군사 정권의 시대에 온 국민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국민스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80년 서슬퍼런 국보위에 의해 ‘저질 연예인’으로 찍혀, 방송출연이 금지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는 해금되자마자 톱 코미디언의 명성을 회복한다. 하지만 남부러울 것 없었던 그에게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이 찾아왔다. 1991년 교통사고로 7대 독자인 아들이 사망한 것이다. 미국 유학 중 잠시 한국에 들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1992년 제 14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 아들을 먼저 보낸 아버지로서의 방황을 접고자 한다. 그러나 이내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 같은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껴야 했다. 그는 “4년 동안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간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정계를 떠났다.

SBS ‘이주일의 투나잇쇼’로 코미디계로 복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1999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이주일, 울고 웃긴 30년’이라는 공연을 펼쳤다. 그의 코미디 인생 30년을 총정리한 무대였다. 그날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이렇게 절규했다.

“나는 울고 있는데 여러분은 왜 웃으십니까.” 평생동안 세상 사람들을 웃음을 선사했던 그는 결국 그들을 울린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대중에 가슴에 진정한 광대의 모습만 남겨놓았다.


세상에 웃음을 남기고 떠나다

이씨는 8월 29일 오전 9시 경기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치러진 연예예술인장 영결식을 통해 마지막 길을 떠났다. 영결식장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구봉서 배삼룡 전유성 하춘화 등 각계인사 일반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개그맨 김학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영결식은 약 1시간 동안 이덕화 장례위원장의 개식사와 묵념, 송해와 김미화의 조사, 고인의 생전 모습 VTR 방영, 회고록 증정, 최진희의 조가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코미디언 송해씨는 조사에서 “당신을 통해 우리는 웃음이라는 것을 배웠다”며 “단 한사람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무대를 떠나지 않겠다던 당신이 이렇게 떠날 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VTR을 통해 “남을 웃겨야 하는 것이 나의 운명인가요”라는 고인의 생전 목소리가 담긴 비디오가 상영되자 영결식장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한국일보 장명수 당시 사장(현 이사)은 이씨의 회고록을 유족들에게 바쳐 자리를 빛냈다.

영결식을 마친 뒤 운구행렬은 고인이 생전에 살던 경기 성남 분당구 율동의 자택에 도착, 마을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간단한 노제를 지냈다. 이씨의 유해는 이어 성남 영생관리소에서 화장된 뒤 고향인 강원도 경춘공원으로 이동, 교통사고로 먼저 간 아들과 어머니가 안치된 가족묘지에 안장됐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두 딸인 미숙ㆍ현숙씨가 있다.


회고록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

한국일보사는 타계한 코미디의 황제 고 이주일 씨가 생전에 파란만장한 삶의 역정을 술회한 회고록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를 단행본으로 펴냈다. 폐암으로 투병중이던 고인이 올 3월부터 7월까지 독자들의 열렬한 성원 속에 한국일보에 연재한 ‘이주일의 나의 이력서’를 묶은 것이다.

이 책에서 고인은 고등어 궤짝 속에 숨어서 남쪽으로 피난한 비화를 비롯한 성장과정의 갖가지 사연과 유랑극단 배우에서 대스타로 입신하기까지의 우여곡절, 정치인으로서 맛본 보람과 환멸, 인생의 절정에서 돌연 폐암 진단을 받은 좌절을 딛고 억센 의지로 투병하는 심정 등을 진솔하게 들려준다.

또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전두환 전 대통령, 안병균 전 나산그룹 회장 등 정ㆍ재계 인사들과의 인연을 소상하게 밝혔다.

이 책은 대중과 더불어 웃고 울며 한 시대를 풍미한 뛰어난 예인(藝人)의 인간적 면모와 함께 그와 함께 지나온 세월과 사회상을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입력시간 2002/09/1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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