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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충북 중원 수안보

“아버님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어머님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우리 가문 갑자기 뒤집혀져서/ 죽고 사는 문제가 이 지경이 되었네요/ 목숨만은 겨우겨우 보지했지만/ 이 몸은 슬프게도 무너졌어요/ 자식낳아 부모님 기뻐하시며/ 잡아주고 끌어주고 애써 길렀는데/ 부모 은혜 갚으리라 생각인들 했어요/ 이 세상 사람들게 바라는 바는/ 다시는 자식 낳았다 기뻐 말게나.”

신유사옥으로 천주교인이었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경상도 장기현(오늘날 영일군 호미곶)으로 귀양가던 중 중원군 한강의 하담나루에서 이 글을 남기고 문경 새재를 넘기 위해 상모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고 한다. 상모는 오늘날 수안보온천이 자리한 행정구역이다.

이 곳은 원래 옛 연풍군의 고사리면 지역이었으나 일제 때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구려말로 연울현이었던 땅이름을 따 한자식 땅이름인 상모(上芼)로 바꾼 것이다.

그 뒤 세월이 흘러 1963년 1월 1일부로 중원군에 편입, 오늘에 이른다.

이 곳에서 온천이 발견된 것은 지금의 중심지인 ‘물안보’ 또는 ‘물탕거리’라 불리는 논밭으로 있었던 200여 년 전이었다. 어느 해 겨울 불치의 병으로 만신창이가 된 거지 하나가 이 곳에 쌓아둔 짚으로 울타리를 치고 겨울을 나다가 우연히 더운물이 솟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 더운물을 마시며 몸도 씻고 했는데, 그러는 동안 저절로 상처가 아물었다. 그로부터 온천의 존재와 효험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렇다 할 시설도 없이 아는 사람들끼리 우물을 파서 쓰다가 1885년에서야 허술하나마 널판지로 만든 칸막이 형식으로 목욕실을 꾸며서 사용했다.

그 뒤 근대식 목욕탕은 1931년에 비로소 건축되었다. 국토개발이 본격적이던 1963년 10월부터 광천(鑛泉)을 195m의 깊이에서 섭씨 42도의 온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1964년 중원군에서는 이전부터 있던 광천에서 15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광천을 발견, 군비로 지하 85m까지 파서 온천수를 공급하고 있다.

수안보 온천의 특성은 섭씨 53도의 온도에 염소이온과 염소불소가 각각 11 PPM, 황산 7.5 PPM, 칼리 2.0 PPM, 나트륨 60 PPM으로 부인병, 위장병, 신경통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잇다.

백두대간의 소백산 줄기를 사이에 두고 영남사람들이 서울로 오가며 가끔 스쳐 지나가던 아늑한 산간 마을에 현대식 시설이 들어오자 신혼여행지로 이름을 얻더니, 효도관광이 흔해진 근래에는 주로 초노(初老)의 갑년객(甲年客ㆍ60대)들이 단체로 혹은 가족동반으로 이곳을 즐겨 찾고 있고 기업체 연수생들의 모임장소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

땅이름처럼 온통 ‘물탕거리’를 이루고 있으니 ‘물안보(水安堡)’라는 땅이름 탓인가 보다.

입력시간 2002/09/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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