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파레토의 법칙

19세기말 만들어진 ‘파레토의 법칙’은 요즘 유행하는 ‘80-20 법칙’과 같은 말이다. 즉, 상위 20% 사람들이 전체 부(富)의 80%를 가지고 있다거나, 상위 20% 고객이 매출의 80%를 창출한다든가 하는 의미로 쓰이지만, 80과 20은 숫자 자체를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파레토의 법칙은 전체 성과의 대부분(80)이 몇 가지 소수의 요소(20)에 의존한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직무상 성과를 결정짓는 요인들은 많겠지만, 결국은 한두 가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연구년을 미국에서 마치고 돌아오니 그 사이 국무총리 지명자가 두 명이나 국회인사청문회에서 딱지를 맞았다. 깊은 내용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 지명을 한 쪽이 중요한 몇 가지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을 내세운 것 같다. 판단을 하는 쪽 역시 너무 완벽한 사람을 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중국에서 온 학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 여자들은 가진 것이 없고 못생겨도 시집가는 것을 걱정하는 경우가 없다. 몇 가지 중요한 조건을 갖추면, “이 여자는 이러이러한 것이 좋으므로 됐다”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란다.

우리 나라는? 열가지 중에 여덟 가지를 갖추어도 두 가지 부족한 것 때문에 안 된다고 한단다. 진실 여부를 떠나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얘기다.

프로즌 요거트(frozen yogurt)라고 있다. 요구르트를 얼려서 아이스크림 같이 만든 것인데,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보다 건강에 좋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고 해서 값도 더 비싸다. 다이어트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무(無)지방, 무콜레스테롤, 무칼로리 프로즌 요거트도 있다.

그런데 이건 가만히 생각해 보면 ‘프로즌 nothing’이나 마찬가지이다. 이것저것 다 뺐으니 돈 주고 사먹기 좀 아깝다. 뒤집어 보면 열 가지 다 갖춘 여자 찾다가 멀쩡한 총각 홀아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현재의 복잡한 정치상황을 고려할 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줄 안다. 그러나 상황이 복잡할수록 몇 가지 단순한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때가 많다. 파레토의 법칙을 머리에 담고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국무총리에게 원하는 가장 중요한 자격요건이 무엇일까? 국정수행능력과 도덕성이라는 식으로 두루뭉실하게 표현해서는 너무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그물을 빠져나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몇 가지 결정적인 자질과 자격에 대해 일단 합의를 하고 찬반 논쟁은 그 몇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

월스트리의 큰손 워렌 버펫은 사람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세 가지 요소로 정직성, 지능, 에너지를 든다. 그리고는 그 중에서도 정직성을 으뜸으로 꼽는다. 첫 번째가 없을 경우, 나머지 두가지는 오히려 독약이 된다는 것이 버펫의 지론이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차라리 멍청하고 게으른 게 더 낫다면서.

개인적으로는 한 가지 포함시켰으면 하는 기준이 있다. 거의 현실성 없는 바람이지만, 대통령에게 바른말 할 수 있는 용기다. 19세기 미국에 피터 카트라이트라는 순회목사가 있었다. 어느 날 설교 직전에 누가 말하기를 청중 중에 당시 대통령이던 앤드루 잭슨이 있으니 말을 조심하라고 했다.

목사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회중에 대통령이 있으니 말을 조심하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자신의 죄를 회계하지 않으면 앤드루 잭슨은 지옥에 갈 것이다.’” 예배가 끝난 후 잭슨 대통령이 다가와 말하기를 “목사님, 목사님 같은 사람 1개 연대만 있으면 전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이 여의치 않으면 지명하는 쪽에서는 제갈량이 약 2,000년 전에 제안한 것을 한번 시도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

“튼튼한 기둥을 세우려면 곧은 나무가 필요하다. 현명한 나라의 일군으로는 강직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곧은 나무를 구하려면 멀리 있는 숲으로 가야 하는 것처럼 강직한 사람들은 보잘 것 없는 동네에서 나오는 수가 많다. 그러므로, 현명하고 강직한 자들을 구하려는 통치자는 눈에 띄지 않는 구석진 곳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다가 국무총리도 외국에서 영입해 오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김언수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입력시간 2002/09/1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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