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 농산물 원산지 식별 전문가, 장맹수

한때 그의 별명은 ‘독사’였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유통지도과 장맹수(47ㆍ농업사무관)씨는 독보적인 원산지 감별 실력에다, 한번 불법현장을 적발하면 뇌물이든 청탁이든 손톱도 들어가지 않는 철두철미한 성격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우리 농산물 지킴이 노릇 9년, 수입 농산물 개방 이후 무방비로 열려있던 국내 농축산물 시장에 이름표를 달고 질서를 잡아놓았다.

“아직도 허위표시 사례는 적지 않지만, 어쨌든 도입 초창기에는 62%에 불과하던 원산지 표시율이 이제는 96%까지 달해 무엇보다 흐뭇합니다.”

공무원들 중에서도 3D 부서중 하나로 다들 기피하는 분야. 그는 올해로 9년째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업무는 백화점이나 시장의 도,소매상 국내에서 농산물이 거래되는 어디든 원산지 표시 여부를 점검하고 단속하는 일이다. 직접 식별법을 연구개발하기도 할 뿐 아니라, 전국 약 600명에 이르는 같은 분야 단속 공무원들의 총지휘도 맡고 있다.


척 보면 국산ㆍ수입산 한눈에 식별

즉석에서 판별 가능한 품목수만 약 200종. 쌀, 마늘, 고추 등 웬만한 농축산물은 한번 보기만 해도 국산인지 수입산인지 가려낸다. 직접 지침서를 만들어 낸 것도 있다.

초창기 68개 품목에서 출발해 현재 163개 품목까지 확대되어 실린 이 책은 각 품목마다 국산, 수입산의 특징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사진과 설명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있다. 수년째 관련 공무원들은 물론 소비자들에게도 농축산물의 바이블처럼 활용되고 있는 책이다. 이 공로로 그는 1997년 행정자치부 중앙제안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씨가 이 분야에 종사하게 된 것은 1994년부터다.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한 장씨는 졸업후 목포 엽연초생산조합에서 5년간 근무한 뒤 1980년 7급 공채 농업직 공무원으로 농림부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후 벼, 보리, 콩 등의 작물수매검사를 담당한 것만 약 13년, 1993년 현재의 근무처로 옮겨 종자관련 업무를 맡고 있던 중 이듬해에 농축산물 원산지 표시제가 전격 시행되면서 전담부서의 구성원으로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됐다.

첫 해는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다. 국가도 처음 나선 일,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맡게 된 원산지 표시 식별과 단속업무는 막막하기만 했다.

단속을 나가 이따금 수입산의 의심이 가는 농산물을 발견하고도 상인이 “당신 눈이 잘못 됐다. 증거를 대보라!”며 도리어 큰 소리를 치면 당장 정확한 근거를 댈 수 없어 속만 끓이기 일쑤였다. 정확한 특징을 잡기위해 수시로 실물과 관련 자료들을 들여다보며 공부했고, 한약재의 경우 서울 경동시장을 50번이 넘게 드나들며 약재상들에게 배운 것을 비롯해 대구 약령시장과 금산 약재시장 등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그때 제일 무서웠던게 방송 기자들이었어요. 저도 아직 뭐가 뭔지 헷갈리는데, 걸핏하면 오렌지나 참깨 같은 것을 들고 찾아와 국산인지 수입산인지 가려달라고 요구할 때는 식은 땀이 나더라구요.

‘며칠뒤에 결과를 알려드리겠다’고 우선 돌려보낸 뒤, 기자가 돌아가고 나면 그때부터 며칠동안 정신없이 쫓아다니며 조사를 해서 겨우 답을 알려주고는 했지요. 지금 같으면 실물 자체만 보고도 곧바로 알 수 있지만, 그때는 당장 그럴만한 지식이 없으니 그 농산물을 누구에게서 사고 팔았는지 그 경로를 계속 역추적해가는 방식으로 원산지 여부를 확인하고는 했어요.

최종적으로 생산농가가 튀어나오면 국산이고, 수입업자가 나오면 수입산이라는 게 증명되는 셈이니까요. 어떨 때는 지방의 산골까지 찾아가는 일도 많았고, 무진 고생했어요.”

너무나 힘에 부쳐 생각해낸 것이 직접 표본 자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시중에 나와있는 68종의 농산물을 연구해 자료로 내놓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주산지의 작물을 구하느라 주말도 없이 전국 곳곳의 시장을 누볐고, 어디에서든 새로운 종자만 눈에 띄면 무조건 주머니를 털어 사 들고 돌아와 샅샅이 분석하고 자료로 정리했다.

특징을 보다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전문 사진작가에게 사정하다시피 도움을 받아 촬영, 콩 사진만해도 한알마다 위치를 잡아 일일이 본드로 붙이는 등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몇시간씩 땀을 흘렸다. 이 책이 만들어지면서 단속업무에 비로소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현장 단속 때 겪은 고초는 ‘무용담’에 가깝다. 특히 원산지 표시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전무하던 초창기에는 상인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은 일상사, 욕설세례나 싸움 등으로 매일매일이 전투였다.

“첫 해에 을지로 4가에 있는 한 시장에 단속을 나갔다가 덴마크산 삼겹살을 팔면서 원산지를 밝히지 않은 업소를 적발했습니다. 그래서 원산지 미표시 사례로 현장의 사진을 찍고는 위반사실에 대한 확인서를 받으려고 하는데, 주인이 아주 험악한 표정으로 갑자기 제 앞에서 위협적으로 칼을 갈기 시작하더라구요.

정말 살벌한 분위기였습니다. 오죽하면 그때 저랑 한 직원이 같이 갔는데, 한 사람은 확인서 때문에 주인 옆에 서 있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내내 가게 밖에 서 있었어요. 만약 칼로 찌르면 당장 파출소로 달려가 신고하려구요.”


날로 교묘해지는 속임수와의 전쟁

업무의 특성에 따라 1998년부터 ‘특별사법경찰관’이라는 이름으로 수사권을 부여받으면서 이같은 고충은 한결 덜었다. 그간 유명백화점의 허위표시 사례를 수차례 적발한 것을 비롯해 그는 대형 부정유통현장을 추적, 원천 봉쇄시킨 굵직한 경력도 많다.

그 중에서도 지난해 약 9톤 물량의 중국산 당귀를 국산으로 속여 팔려던 유통현장을 잡아낸 일은 장씨의 집요함과 섬세함이 돋보인 사건이었다. 이것은 원래 금산에서 접수된 한 제보로부터 출발해 처음에는 현지 관할 단속팀에 의해 조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다 중간단계에서 자신이 직접 출하한 국산당귀라 주장하는 한 사람의 허위진술에 속아 자칫하면 그대로 묻힐뻔한 것을 서울로 올려보낸 시료를 본 장씨가 수입산 당귀임을 확신, 직접 재조사를 벌이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여러 지역과 상인들을 찾아 다니는 고된 숨바꼭질후 마침내 이미 달아났던 최종 용의자를 찾아내는데까지 성공했지만, 이미 물증은 어디론가 옮겨놓은 뒤였다. 당사자는 계속 혐의를 부인하는 가운데 포기하지 않고 현장을 뒤지던 장씨가 우연히 운송도중 흘린 것으로 보이는 중국산 당귀 한줌을 한켠에서 찾아내면서 상황은 급진전됐다.

운송을 맡았을 인근 용달업체 운전기사까지 끈질기게 찾아낸 장씨, 이어서 중국산 당귀를 운반해줬다는 남양주의 한 화물보관소까지 이르러 150대의 컨테이너를 하나하나 뒤지기 시작했다.

그 중 당귀냄새가 진동하는 한 컨테이너에서 예상대로 이미 국산 표시로 재포장한 싯가 7,000여만원 상당의 중국산 당귀를 찾아내면서 서울 금산 논산 상주 평창 남양주 등을 잇는 일대 ‘추적 드라마’의 대단원의 막이 내려지게 되었다.

“수입산을 국산으로 속여 팔면 수익이 두 배 이상 오르다 보니 돈에 대한 유혹 때문에 양심을 속이는 업자들이 줄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관세청으로부터 실시간으로 수입산 농산물 통관 내역 자료를 넘겨받는 등, 다각적인 감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단속 인력상 한계가 있는데다 위반수법도 갈수록 고도화, 지능화 되고 있어 뭣보다 소비자들 스스로 감시자가 되고 조심하는 것이 피해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원산지를 속이는 수법이 얼마나 교묘해졌는지 생강을 예로 들어 보면 이런 식입니다. 처음에는 원형 그대로 내놓고 수입산을 국산으로 속여 팔았지만, 단속이 심해지자 그 다음에는 수입생강에 흙을 묻혀서 내놓았습니다.

국산생강에는 흙이 묻어있는 특징을 흉내낸거죠. 이것도 들통이 나자 다음에는 껍질을 깐 상태로 팔다가 요즘은 아예 찧은 상태로 팝니다. 물론 저희들이 보면 당장 냄새를 맡거나 맛만 봐도 수입산인걸 알아내지만 일반 소비자들로서는 사실 이쯤 되면 구별하기가 어렵거든요. 이 때문에 농산물은 가능한 한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농산물만 쫓아 다니는 사이, 자신에게 병이 생긴 줄도 몰랐다. 자꾸만 등이 아파 병원을 찾았더니 지나친 스트레스로 척추신경 속에 혹이 생겼다는, 흔치 않은 진단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장씨는 척추신경 일부를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은 뒤 아직도 상체가 편치 않은 상태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 9년간 토, 일요일도 없이 살아온 가장, 오히려 무모하리만큼 대단한 일욕심으로 이따금 가족들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작년 7월16일의 기억은 그에게 잊히지도 않는다.

엄청난 폭우로 전국 곳곳에 물난리 소식이 찾아들던 이날, 중국산 당귀 부정유통현장을 찾겠다며 억수처럼 퍼붓는 빗길도 아랑곳없이 기어이 차를 몰고 평창으로 향했다. 며칠만에 용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장씨의 아내는 걱정 반, 원망 반으로 “당신 미쳤다, 그러다 죽기라도 하면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냐”며 소리쳤다.


농민의 입장에서 싸울땐 싸워야죠

최근 마늘파동이 터진 후로는 더욱 격무중이다. 마늘재배 농민들의 타격을 최소화하기위한 대안으로 마늘 원산지 표시 단속의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한편에는 그를 화나게 하는 일까지 겹쳐 있다. 해가 바뀌도록 지리하게 이어지고 있는 한 모 분유회사와의 법정싸움 때문이다.

“자사의 한 이유식 제품에 다량의 수입곡물을 쓰고서도 제품 포장재 성분표시란에는 달랑 국산재료에 대한 부분만 적어넣어 얼추 보면 마치 국산곡물로만 만든 것처럼 소비자들이 착각하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들도 잘못을 인정한데다, 이미 두차례 소송을 거쳐 결국 표시 부적정 판결을 받고 과태료 500만원의 처분까지 내려졌는데도, 그보다 훨씬 엄청난 변호사 비용까지 써가며 다시 이의를 제기해 지금도 계류중입니다.

그 사이 이미 문제의 문구를 수정한 신제품까지 내놓고도, 이를테면 어떻게 해서든 여론에 알려지기 전 재고까지 다 팔아치운 뒤 승복할 양으로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장 서서 기업양심을 지켜야 할 대기업이 이래도 되는지 정말 한심합니다.”

직업근성은 어쩔 수 없다. 여행이나 출장길에 잠시 내린 휴게소에서도 농산물 판매점만 봤다 하면 습관처럼 발길이 향한다. 예금하러 은행에 갔다가도 매장내의 농산물 판매대만 보면 어느새 자동으로 눈이 쏠린 채 원산지를 확인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식성도 순 토종식이다. 식당에 수입산 재료로 된 반찬이 올라오면 전혀 손을 대지 못한다. 식별법 개발 초창기 100번도 넘게 직접 까보았던 도라지는 아무리 갖은 양념에 무쳐 내놓아도 척 보면 안다.

우리 농산물을 지켜온 그를 만난 기념으로 이쯤에서 마무리 퀴즈 하나. 농산물 중 가짜 국산 적발사례 1위를 달리는 깐마늘의 경우, 뿌리부분의 면적이 넓고 끝부분이 뭉툭하며 전체적으로 ‘쭉쭉빵빵’한 마늘은 국산일까, 중국산일까? 답은, 중국산이다.

입력시간 2002/09/1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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