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뉴스포탈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서울경제
KoreaTimes
주간한국  
www.hankooki.com  


 
주간한국 홈
구독신청
독자 한마디
편집실에서

 


   벤처 밸리 24시
   비만클리닉
   김동식문화읽기
   사이언스카페
   인터넷 세상
   한의학
   땅이름과 역사

맛이 있는 집 그림펀치 라디오 세상 스타 데이트 신나는 세계여행

화려한 만남 ‘문학까페명동’

소중한 기억들과의 의미있는 재회, 그리고 복원

장외(場外)와 권내(圈內)의 꾼들이 모였다. 왜곡된 현대사에서 이들은 각각 따로 무대를 달리 해왔다. 한쪽은 민중과 민주를, 다른 한쪽은 인기와 유행을 각각 외치던 별개의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두 진영은 서로에게 손 내밀어 한판의 멋진 무대를 만들어 내고 있다.

9월 6일 명동의 복합상가 꼭대기 옥상의 밀리오레 이벤트홀.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현기영)가 주최하는 ‘문학 까페 명동’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멋과 유행의 진원지 명동이 다시 문화의 향기를 껴안았다. 잊혀졌던 역사의 복원이었다.


삶의 맛을 느끼는 시간이 됐으면…

첫날 행사는 시인 신경림과 가수 한영애를 주빈으로 해 젊은 소설가 김별아가 사회자로 나서 치러졌다. 저녁 7시에 시작해 8시 35분까지 토크 쇼 형식으로 펼쳐졌다.

“이렇게 대중앞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이야기 하기란 저로서는 처음입니다. 이 기회를 통해 시가 대중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신경림 시인이 말문을 열었다.

가수 안치환의 ‘외국인 노동자’가 공연 시작전까지 울려 퍼졌던 이 행사는 한국내 외국인 노동자 33만명을 위한 자리다. 한영애는 “시와 음악의 만남은 오래된 주제”라며 “오늘은 사실 신경림 선생님의 말을 들으러 왔다”고 말해 이날의 의의를 새겼다.

첫곡으로 한영애가 ‘여울목’을 부르자 노 시인은 만면에 한껏 미소를 띠고 경청했다. 노래가 끝나자 시인은 자신의 시 ‘특급 열차’를 낭송했다.

신작 시집 ‘뿔’에 수록된 작품이다. 낭송후 시인은 “바쁘게만 살아 오다 보니 삶의 맛을 느낄 겨를이 없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1960~70년대 명동은 음악 다방, 통기타, 문학의 밤, 청바지 등으로 문화의 상징이었다. 지금의 명동은 밀물듯 밀려 오는 자본에 쫓겨 대규모 쇼핑몰로 상징되는 소비의 천국으로 변하고 말았다. 참석자들은 명동이 상징하는 눈부신 소비의 행진으로 멋과 낭만이 사라져 가나며 아쉬워 했다. 이날 무대는 역사의 흐름에 쫓겨 사라져 버린 소중한 기억들을 되살려 내는 자리였다.

전혜린이 즐겨 찾던 음악 다방 ‘돌체’, 최암의 모친이 경영하던 술집 ‘은성’ 등지에 얽힌 추억들이었다. 신경림 시인은 돈 없는 시인 천상병이 나타나면 배우들이 한 상 차려주던 이야기, 자신과 박재삼 시인이 함께 나타나 안주 없이 잔을 기울이는 것을 보고 주머니를 털던 극단 신협 배우 등에 대해 이야기 했다.

‘친일문학론’의 저자 임종국의 혈기는 유별났다. “젊을 때는 고왔던 그 얼굴이 왜 험한 줄 아세요?” 명동의 한 다방에 이어령, 유종호 같은 당시 1급 문인들이 모여 잡담 나누는 장면을 본 그가 “문인이 왜 글은 안 쓰고 허송세월 하느냐”며 유리창을 얼굴로 들이 받았던 사건도 이제는 추억담이 된다.

1993년 데뷔했던 소설가 김별아는 “제 입문 당시도 선배들은 술이 들어갔다 하면 싸웠다”며 요즘과 분명 달랐다고 말했다. 신경림 시인은 “고은이 요즘 시인들은 술을 안 마신다고 했는데 옳은 지적”이라며 “술은 문학을 풍성하게 해 주는 매체”라고 말했다.


문화의 거리로 거듭난 명동

한영애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 1때 명동의 음악감상실 ‘내쉬빌’에 가수 김민기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교복 차림으로 구경갔던 그 역시 작은 추억 하나를 보탰다. 청소년 선도반들이 시내를 뒤지고 다니던 때였다. “주인이 저의 보호자인 척 했던 턱에 단속을 피할 수 있었죠.”

옛 이야기들이 두런두런 펼쳐진 이날밤의 명동은 더 이상 소비의 천국이 아니었다. 신경림 시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낭송한 근작시 ‘별’은 도시의 번잡한 소음을 잠재우기 족했다.

“이 세상 오기 전 저 세상 끝에서/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을 지 모른다/ 저 세상 가서도 나는/ 헤매고 다닐 지도 모른다.” 이어 시인은 “1970년대의 산업화는 우리가 세계에 노동력을 팔았던 댓가”라며 “그와 같은 이유로 낯선 땅에서 고생하는 제 3세계의 노동자들을 도우는 것이 우리의 도리”라고 말했다.

이어 네팔 노동자의 딱한 현실이 생생히 수록된 수기 ‘외국인 노동자도 사람인데’가 낭독됐다. 보름 동안 유효한 관광 비자가 만료됐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 한 그는 월급도 받지 못 했지만 도로 사장한테 몽둥이 찜질을 당했다는 등 딱한 이야기가 분위기를 일신했다.

시인은 “눈물 겹다”며 말을 시작했다. 1970년대 당시 생활고에 허덕댔던 그는 “나도 서독에 광부로 가려다 건강이 따르지 않아 주저 앉았던 일이 있다”며 “이곳의 외국 노동자들은 사실 현지서는 엘리트”라고 말했다.

공연 막바지, 객석은 미동도 않고 경청했다. “상처 위의 소금 같은 노래를 짓겠다”는 한영애의 다짐에 시인은 “‘한국이 슬프다’는 말을 남기고 죽은 중국 노동자 김학성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는 대화라 해 놓고도 정작 대중과 대화를 나누는 일에는 소홀했던 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시낭송과 노래 공연이 한데 어우러진 이날 무대는 중간 휴식 부분에 20여분 동안 펼쳐진 춤패 불림의 2인무 ‘만남’으로 복합 장르 공연장이 됐다. 각종 시위 현장에서 격렬한 몸짓을 펼쳐 보이던 이 무용 집단은 클래식 발레를 연상케 하는 우아한 몸짓으로 색다른 감흥을 선사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아픔 함께한 무대

못 보던 풍경도 나왔다. 한영애가 강렬한 드럼 비트에 전자 기타의 전주가 깔리는 전형적인 록 넘버 ‘푸른 칵테일의 향기’를 부를 때였다.

그가 갑자기 노래를 멈췄다. 그는 “관객들이 왜 박수를 안 치는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가사까지 잊어 버렸다”고 말했다.

이른바 운동권의 행사에 익숙해 있던 관객들에겐 민문작 행사에 난데 없는 록 음악이 생경했던 것이고, 한영애에게는 자신의 록에 박수도 치지 않는 객석이 낯설었다. 그러나 다시 노래를 부르자 모든 관객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날의 대미는 김별아의 제의로 이뤄졌던 ‘봄날은 간다’ 합창이었다.

공연 후 한영애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의료 현실 소식을 접하고 평소 가슴이 아팠다”며 “모처럼의 통쾌한 콘서트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인 김정환씨와 공연기획자 주홍미씨가 기획ㆍ연출한 이번 연속 공연의 수익금은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복지 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이날 모인 200여명의 관객들은 신경림, 정희승 등 문인들의 모임인 ‘무명산악회’ 회원 등 공연 하루 전인 9월 5일까지 예약을 마친 사람들이다. 자본과 세계화의 반성 없는 속도에 저항할 앞으로의 공연 일정은 다음과 같다.

 ▦9월 13일=천양희(시인)-강산에-나희덕(시인)
 ▦27일=김소월ㆍ정지용 등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및 산문 낭송회
 ▦10월 4일=현기영(소설가)-노래를 찾는 사람들-천운영(소설가)
 ▦11일=박완서(소설가)-전인권ㆍ들국화-하성란(소설가) 
 ▦18일=김주영(소설가)-장사익(백지연(평론가)
 ▦25일=강은교(시인)-정태춘-신수정(평론가) 
 ▦11월 1일=박범신(소설가)-크라잉 넛-김수아(평론가) 
 ▦8일=김지하(시인)-조용필-정복여(시인)
 ▦15일=황석영(소설가)-권진원-최성실(평론가)
 ▦22일=고은(시인)-이은미-김선우(시인)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09/16 11:28



 

◀ 이전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