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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평론] 슬픈 진보여!

16대 대통령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도 선거 구도는 안개 속에 쌓여 있다. 유력한 3인의 후보가 팽팽하게 맞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3자 대결구도는 매우 불안정하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당내의 반대파들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무소속 정몽준 의원은 정당을 만드는 한편 다른 정당에서 자신을 모셔 가지 않을까 은근히 따져보고 있다.

여기에 일부 언론의 편파·불공정·왜곡 보도가 선거판을 더욱 어지럽히고 있는 상황이다.

3자 구도의 변수 가운데 하나가 진보정당의 후보이다. 언론이 무시하는 바람에 유권자의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지만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가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도 있다. 민주노동당은 원내 의석은 없지만 6ㆍ13 지방선거를 계기로 자민련을 뛰어넘는 제3당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방선거에서 ‘반DJ 정서’가 ‘부패타도’라는 구호를 앞세운 한나라당에게 쏠리는 것을 막지 못해 패배했지만 울산시장 선거에서는 줄곧 앞서왔었다. 만일 이 선거에서 이겼다면 정계 지각변동이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

권영길 후보는 97년 대선에 이어 두 번째 출마이다. 당시 ‘국민승리 21’의 후보였던 권영길 후보는 30만표를 얻어 총유효투표 1.2%의 득표율을 보였다. 그러나 출마선언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권 후보 지지율이 대체로 4~8% 사이로 나타나고 있다.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는 기존의 보수정당을 거부하는 독립적 성향이 강한 지지자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또는 정몽준 의원 지지표에서 옮겨온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지지를 보이는 표이다.

최근의 몇 차례 선거를 보게 되면 1,2위의 차이가 10% 이내였다. 97년 대선에서는 39만표 차이였다. 득표율 차이가 1.6% 밖에 안 되는 박빙의 승부였다. 4~8%의 수치가 대선에서 그대로 표로 연결된다면 민주노동당은 대선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의 정당체제는 분단구조를 빌미로 한 진보 없는 보수 정당 체제이다. 경직된 이념체제 아래서 진보와 개혁, 새로운 사회세력의 정치참여는 거부되어 왔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나머지 한국정당은 한결같이 정책이나 이념, 노선이 아니라 특정한 지역에 압도적인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카리스마적 1인 보스를 중심으로 모인 무원칙한 인맥집단의 성격이 강하다. 정책대결이 실종된 지역대결구도 아래서 움직이는 전근대적·후진적 정당인 것이다.

최근의 정계개편 방향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국정치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또 한국정당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정치개혁은 시급한 과제이다. 정치개혁은 정당개혁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신당을 창당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의 새판짜기를 하는 것 자체가 크게 비판을 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당개혁 없이 간판만 바꿔 달거나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이나 명분 없는 합종연횡은 오히려 정치불신만 더욱 키울 것이다. 바람직한 신당논의의 방향은 눈앞의 선거를 겨냥한 제 정파의 이합집산(이른바 ‘반창연대’, 또는 ‘창 포위 지역연합’)이 아니라 개혁과제를 중심으로 한 정책정당(개혁적 통합신당)이어야 한다.

따라서 현 정치에 짜증이 나는 유권자들은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과 권영길 후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성격은 권영길 후보를 선출하는 날 발표한 공약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약은 크게 평등사회, 서민복지, 평화구축, 통일준비, 신과학시대로 요약된다.

공약의 핵심은 빈부격차를 비롯해서 남녀·지역·학벌·세대 등 모든 영역의 차별을 철폐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정당과 차별성을 보이는 공약으로는 10억 원 이상 자산 보유자 부유세 신설, 남ㆍ북ㆍ미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철수, 군축, 군복무기간 단축(18개월), 예비군제 폐지, 유럽식 대학평준화, 주택·의료·교육에 대한 국가의 무상공급제, 대통령 4년 중임제 변경과 결선투표제의 도입 등이 눈에 띤다.

그런데 선거관리위원회가 대통령 선거 기탁금을 20억원으로 올리고, 원내교섭단체가 아닌 정당에게는 TV 토론의 기회를 박탈하고, 공영제의 혜택도 받지 못하게 하려 하고 있다. 이런 불공정한 처사가 진보정당의 싹을 잘라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입력시간 2002/10/0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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