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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토종선생님’ 반재원

[인간탐구] ‘토종선생님’ 반재원

"토종은 우리의 보물입니다"

“아이들에게 일을 맡겨봤더니 다 뺑소니 쳐버려요.”

반재원(54ㆍ서울 창덕여중 교사)씨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농사를 짓는다. 갈수록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토종 식물들을 키운다.

올 봄 창덕여중으로 전근오자마자 맨 먼저 살핀 것도 빈 텃밭이었다. 운동장 한 켠 조그만 화단에 약 20종의 희귀 토종식물을 줄지어 앉혀놓았다. 더 잊혀지기 전에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열매로 스님들의 염주를 만드는 천초 몇포기, 이파리의 끈적이는 진액이 풀 효과를 내는 접착풀의 원조 딱풀도 몇포기, 다 자라봐야 사람의 새끼손가락 크기도 안되지만 매운 맛이 무서운 토종고추 몇포기, 지구 최고의 천연 진통제로 불리는 다릅, 그리고 아주까리, 호깨나무, 잔대, 토종오이 등 이제는 이름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우리의 전래 자생식물들이다.

경북 청도에 있는 반씨의 ‘돌씨농장’에 가면 신기한 것들이 더 많다. 도를 통하고 장수한다는 도통이나무에서부터 모감주나무, 오가피, 노나무, 세신, 석창포 등 약 50종의 토종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최소한 멸종만은 면하게 하려고 반씨가 번식종자용으로 조금씩 거두는 것들이다.

“계속 씨를 받아 심지 않으면 그대로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천연기념물을 보호하는 기분으로 가꾸고 있습니다.”


고향서는 아직도 ‘이해못할 사람’으로 낙인

이 일을 시작한지 올해로 15년째다. 토종을 구하느라 반씨는 전국 구석구석을 찾아 다녀야 했다. 가장 애를 먹인 것은 토종고추. 단 두 알을 얻는데 이래저래 30만원이나 들었다.

누군가의 귀띔으로 멀리 전북 무주 진안까지 재배자를 찾아갔지만 씨를 나눠주기는커녕 오히려 “간첩으로 경찰서에 신고하겠다”며 문전박대를 했다. 헛걸음에다 교통비 등만 날린 채 돌아온 뒤 다행히 다른 사람의 손에서 씨를 얻었다.

가짜 토종에 속아 돈과 땀을 날린 일도 많다. 상인의 말만 믿고 거금을 털어 사들여 키웠다가 나중에 알고 보면 가짜인 경우도 있었다. 시골에 계신 노부모님은 “그만한 정성을 학교에 쏟았으면 진작에 교감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혀를 차시곤 했다.

이제는 누구보다 열렬한 후원자가 된 아내와 아이들 또한 초창기에는 퇴근후나 주말에도 내내 화분만 끌어안고 있는 그에게 “그 10분의 1만이라도 애정을 가족에게 쏟아보라”며 불만을 터뜨린 때?있었다. 지금도 그는 고향에서 ‘이해 못 할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있다.

반씨의 고향은 경북 청도다. 어렸을 때부터 동ㆍ식물을 좋아해 중학교 때도 농고에 진학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나와 교사가 되기를 바랬던 부모님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고교 때 동양철학과나 한의대에 진학하려던 꿈도 꺾였다. 평생 교직에 봉직한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친 채 결국 가족의 권유대로 1973년 대구 영남대 공대를 졸업한 뒤 곧 서울 중랑중학교에서 교사로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교사가 되고도 동양철학과 한의학에 대한 미련은 도무지 통제불가능이었다. 틈틈이 한약학원을 다녔고, 양방의사가 한의학을 가르치는 학회도 드나들었다. 침술을 익힌 것도 그 무렵이다.

“처음에는 동양철학, 그중에서도 훈민정음에 담긴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았어요. 28글자 안에 동양의 천문학과 음양오행, 태극사상 등이 반영돼 있는, 알면 알수록 심오한 문자체계가 바로 훈민정음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을 아무리 연구해 사람들에게 얘기해도 실생활과 별 상관이 없는 얘기이다 보니 사람들의 반응이 별로 없더라구요. 결국 저도 조금씩 지치게 되면서 일단 훈민정음 연구는 잠시 접어둔 채 원래부터 좋아하던 동식물 키우기를 시작한 거예요.”

처음으로 그의 새 식구가 된 것은 토종 오리와 토종 흰오골계 몇마리. 그러나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운지 얼마 안 가 곧 손을 들고 말았다. 대단한 대식가에다 지독한 배설물 냄새를 풍기던 오리는 좁은 새장에 갇힌 스트레스로 쉽게 병이 들거나 죽어버렸다.

털은 희고 살은 까만 토종 흰오골계는 구하기 힘든 토종이었다. 그런데 명색이 닭이다 보니 밤만 되면 10분 간격도 멀다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통에 밤잠을 설친 주민들로부터 항의가 쏟아졌다. 어떻게 하든 울음을 막아보려 반씨는 밤만 되면 오골계를 종이가방에 넣어 방안의 벽에 걸어뒀다가 그마저 소용없어진 며칠뒤에는 목욕탕으로 옮겨보기도 했다.

그러자 목욕탕의 배관을 따라 소리가 퍼지는 바람에 반씨의 집과 수직으로 연결된 1층부터 14층까지 주민들로부터 단체로 항의가 몰려들었다. 겨울 어느 날, 병에 걸린 오리를 바깥 화단에 격리시켰다가 다음날 밤새 죽었으리라는 생각에 땅에 묻어주러 나갔다가 여전히 숨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저히 못할 짓이다 싶어 그 길로 일을 정리해버렸다.

토종식물을 기르는 일로 바꿨지만 어려움은 여전했다. 토종을 찾아내는 일도 난관이었지만, 어렵게 구해온 것을 힘들게 키우는 도중에도 병충해 등으로 죽기 일쑤였다. 하루하루가 늘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1987년 인산 김일훈 선생의 저서 ‘신약’을 접하면서 반씨의 연구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골다공증에 뛰어난 효능을 가진 것으로 요즘 널리 알려져 있는 홍화씨는 반씨가 국내에서 거의 선두로 대중화시킨 토종 작물이었다.


탁월한 효능 지닌 토종약재들

“돈을 벌려고 시작한 일도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거의 유일하게 수익을 내 본 게 그때 홍화씨를 재배한 것이었어요. 많을 때는 2,000평까지 늘려 지은 적도 있지요. 홍화씨의 약효는 저도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눈길에 미끄러져 갈빗대가 부러졌는데 홍화씨를 먹고 바로 나았거든요.

재미있는 것은, 뼈가 부러졌을 때 홍화씨를 복용해보면 뼈의 어디가 부러졌는지 저절로 표시가 납니다. 다친 부위중에서도 유독 집중적으로 따끈따끈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나타나거든요. 그만큼 홍화씨의 약효가 큰 거지요.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 토종 대부분이 이렇게 탁월한 효능을 각각 갖고 있어요.”

15년간 거의 매주 주말마다 고향을 오가며 농장을 돌본 반씨. 40대 무렵에는 일요일 밤10시까지 불을 켜놓고 일을 한 뒤 새벽기차를 타고 다음날 출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약 5년전에는 토종학회, 씨약초연구원 등도 만들었다. 회원들에게 자신이 연구한 토종약초의 효능이나 재배법 등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현장답사도 함께한다. 서울 보암동에는 토종 실습장까지 마련돼 있다.

작년부터는 벼농사도 새롭게 도전했다. 지난 주말에도 그 추수를 하고 오느라 녹초가 다 됐다. 약 1,200평에 걸쳐 짓는 이 농사는 순전히 고향의 연로한 어르신들을 위해 시작한 ‘시범경작’이다. 농사방법도 기존의 농법과 전연 다른 토종 '태평농법'을 이용한다.

땅도 갈지 않고 그냥 볍씨를 뿌린 뒤 짚으로 덮어주는 정도로 벼가 제 스스로 자라도록 내버려두는, 원시적이지만 자연의 과학이 담긴 농사다.

그간 ‘돌씨약초 이야기’라는 토종관련 저서를 발표한 외에도, 반씨는 25년째 한글 연구를 계속해오면서 ‘훈민정음 기원론’, ‘한글과 천문’ 등 세권의 한글 관련 저서도 냈다. 천성적으로 부지런한 성미에 많은 모임과 활동을 활발하게 주도, 현재 사단법인 한배달 회장을 비롯해 돌씨학회, 훈민정음연구소 등의 대표를 맡고 있다. 3년전부터는 토종오이와 느릅나무 씨도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그간 1,000명 가까이 나눠주었다.

학교에서는 어떨까? 친구들까지도 곧잘 국어교사로 오해한다는 반씨는 공업, 기술을 가르치는 교사다. 막중하고도 조심스러운 것이 제자 농사. 교직생활 약 30년째를 맞는 반씨는 의아하게도 이제야 비로소 선생님이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어렸을때부터 저는 절대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어요.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하셨는데 자식인 저희들을 다 큰 대학생되서도 늘 초등학생처럼 취급하시는게 너무 싫었거든요.

하지만 나중에 저와 동생, 제수씨 등 한 집안에 교사가 6명이나 되더라구요. 전에 어떤 교감 선생님이 ‘선생님이 뭔지 조금 알만할 때가 되면 퇴직하라고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이 이해가 가요. 저도 이제야 제 자신이 조금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이제는 아이들이 뭔가 잘못을 해도 아이들이 귀여워서 차마 야단을 칠 수가 없게 되는 그런 것들이 생기더라구요.”

성우 ‘반다일’씨를 아시는지? 반씨의 이색경력 몇 가지가 있다. 대학시절부터 반다일이라는 예명으로 연극계에서 활동한 그는 1973년 동아방송에서 주최한 전국 학생방송콩쿨에서 개인연기상을 수상해 연기자의 길까지 보증받은 유망주였다.

그러나 장남을 ‘딴따라’로 만들 수 없다는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포기, 그 아쉬움으로 교직생활 초창기에는 직접 극단을 창단해 연극무대를 누비기도 했다. 1998년까지 방송 성우로도 오랜 기간 활동했다. 백화점, 식품 등의 CF나 외국영화에서 한동안 낯익은 목소리였다.


토종약재는 최고의 자산

“예전에는 술을 참 많이 마셨습니다. 아마도 이제껏 인생의 외곽으로 돌 수 밖에 없었던 스트레스가 알게 모르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동안 갈등도 많았습니다. 열심히 연구한 성과도 정식 학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재야에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학교대로 다른 일만 잔뜩 벌이는 사람으로 비치다 보니 그 안에서도 겉돌게 되고…옛날에는 제가 알게 된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려고 열심히 떠들기도 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그것도 곧 그만뒀습니다.

그런다고 되는 일이 아니구나, 그냥 조용히 내 자신의 연구나 더 충실히 하자구요. 지금도 저는 사명감이라든가 애국심 같은 것과는 별 상관이 없고, 그냥 제가 좋아서 이 일을 하는 것 뿐입니다. 저야 화분에 토종고추가 열리는 것만 봐도 이유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지만, 사실 다른 분들 눈에는 왜 돈을 벌 것도 아니면서 이러는지 이해가 안 갈 만도 하겠지요.”

대화중에도 수시로 울려대는 반씨의 핸드폰. 그에게 토종약초에 대해 물어보는 문의전화들이었다.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길, 이제 교단 한켠에서 토종을 지키는 일은 그가 인생에 내거는 마지막 카드다.

“세계적인 만년필 몽블랑에는 우리 한국산 옻진이 안 들어가면 그 제품이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토종 앉은뱅이 밀을 가져가 개량종을 만든 농학자 보록박사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습니다. 앞으로 분업화될 세계 경제 속에서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은 우리의 토종약초 뿐입니다. 토종은 우리나라의 보물입니다.”

입력시간 2002/10/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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