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속항진 '핵 잠수함' 절치부심 '코리안 특급'

이처럼 얄굿을 수 있을까. 박찬호(29·텍사스 레인저스)는 울었고 김병현(23·애리조나 다이아본드백스)은 웃었다.

8년간 몸담아온 내셔널리그의 LA 다저스를 떠나 올 시즌 아메리칸리그의 텍사스 레인저스로 유니폼을 바꿔입은 박찬호는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반면 메이저리거 3년차 김병현은 개인 최다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지난 해 월드시리즈의 악몽에서 완전히 탈출했다. 명암이 엇갈린 한국인 메이저리그 스타의 한해를 결산한다.


최고 피칭, 최고의 해 김병현

올 시즌 개막 전 애리조나 투산에서 열린 애리조나의 스프링캠프, 심리학자들과 야구 전문가들은 김병현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월드시리즈 4, 5차전에서 2경기 연속 동점 홈런을 맞고 마운드에 주저않자 분루를 삼켰던 김병현의 올 시즌 재기 여부는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23살의 루키 김병현이 과연 그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극복할 수 있느냐는 지대한 관심사였다.

그러나 김병현은 올 시즌 최고의 핑칭으로 이런 우려를 씻어버렸다. 4월3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 첫 등판, 탈삼진 2개, 무실점으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더니 7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는 153km의 광속구를 선보이며 시즌 첫 세이브를 따냈다.

5세이브 무패행진으로 4월을 시작한 김병현은 전반기 쾌조의 행진을 이어갔다.

물론 세이브가 단 2차례 있었을 뿐 3승(1패)22세이브, 평균자책 2,34로 전반기를 끝냈다. 전반기가 끝나자 한시즌 개인 최다 세이브기록은 물론 내셔널리그 최연소 50세이브 기록 등이 김병현의 손을 넘어왔고 자신의 목표였던 올 스타전 출장의 영광도 누리게 됐다.

올스타전에서 안타 2개를 맞고 3실점을 하는 등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김병현은 후반기 시작과 함께 올스타전의 부진을 털어냈다. 후반기 첫주 지구 라이벌 다저스와의 3연전에서 3세이브를 올려 데뷔 후 처음으로 내셔널리그 후반기 첫 주의 선수로 선정된 김병현은 8월에는 31세이브째를 올려 그렉올슨이 갖고 있던 팀내 한 시즌 최대 세이브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시즌 최종 성적은 8승3패34세이브.

랜디 존슨-커트 실링의 최강의 원투펀치를 보유란 애리조나는 김병현의 부활 덕택에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월드시리즈 2연패 전망이 밝기만 했다.

그러나 올해 김병현과 포스트 시즌의 연은 닿지 않았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 1, 2차전에서 존슨-실링의 원투펀치가 무너지더니 운명을 건3차전 김병현은 드디어 마운드에 섰다.

하지만 김병현은 1이닝동안 2안타 3볼넷으로 2실점하며 팀의 포스트 시즌 탈락을 지켜봐야 했다.

비록 포스트 시즌에서는 부진했지만 올 시즌 김병현의 호투는 인상적이었다. 봅 브랜리 감독과 여러 차례 갈등을 겪고서도 호성적을 올린 것이다. 실제로 김병현은 4월 중순 브렌리 감독이 좌타자에 약하다는 이유로 6경기나 등판시키지 않자 "팀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고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고 7월 하순에도 세이브 상황에서 자신을 등판시키지 않자 브렌리 감독에게 휴식을 요청하는 등 여러차례 위기의 순간을 넘겼다.


연봉조정 자격, 스토브리그 뜨거운 감자

올 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인 김병현은 풀타임으로 메이저리거 3년이 지나 연봉조정자격을 얻었다. 올 시즌 스토브리그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이다.

그 동안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20만달러)을 받았던 김병현의 몸값 대박이 예고된 셈이다. 김병현은 3년간 팀의 주축 마무리로 활약한 자신의 위상에 어울리는 대우를 기대하고 있다. 김병현의 기준은 자신에 앞서 애리조나의 마무리로 뛰었던 팀 동료 마크 맨타이, 맨타이의 평균연봉 540만달러는 못되더라도 김병현은 내심 400만달러 이사으이 연봉을 기대하고 있다.

내년 시즌 연봉 총액 1,000만달러 삭감 등 긴축 재정을 선언한 애리조나가 김병현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현지 언론은 김병현이 선발로 나가건 마무리로 나가건 내년 최소 200만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김병현이 시즌이 끝나고 내년부터 선발로 나서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김병현은 3년간 70세이브를 기록하며 마무리 투수로의 확고한 위상을 세웠지만 내년 시즌을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선발투수로 성공할 기회로 여기고 있다.

물론 김병현의 선발 성공 가능성은 불확실하다. 좌타자가 풍부한 메이저리그에서 잠수함 투수가 5이닝 이상 버틸 수 있을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리조나 구단 역시 올 시즌 16승을 올린 제구력의 마술사 그렉 매덕스의 영입설을 흘리는 등 김병현의 선발 전환 가능성은 아직 불투명하다.

한국형 핵잠수함으로 4년간 미국 야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김병현으로서는 내년 시즌이 자신의 진가를 새롭게 증명할 한 해가 될 전망이다.


박찬호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5년간 6,500만 달러의 초고액 연봉으로 올 시즌 텍사스의 유니폼을 갈아입은 박찬호의 올 시즌은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는' 시즌이었다. 9승8패 평균자책 5.75. 5년간 이어오던 두자리 승수 달성에도 실패했다.

박찬호는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우지 못했다. 3월28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했던 박찬호는 갑자기 오금에 통증을 느끼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팀 에이스라는 중압감에 4월2일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개막전 출장을 강행했지만 5이닝 동안 9피안타 6실점으로 난타당하며 패전투수가 돼 악몽의 출발을 했다.

개막전 이후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진출 후 처음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이후 41일 동안이나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박찬호는 5월31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 복귀, 5대1의 승리를 이끌며 아메키칸 리그 첫승을 거뒀지만 전반기는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평균자책은 10점대로 치솟기도 했고 6월24일 4승째를 거둔 후에는 39일동안이나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기도 했다. 타자들을 압도하던 150km대 중반의 강속구는 사라지고 위력없는 커브로 맞춰잡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박찬호는 8월 다시 15일짜리 부상자 리스트에 오르는 등 좀처럼 구위를 회복하지 못했지만 8월24일 뉴욕양키스전을 시작으로 후반기 5연승을 달려 겨우 구겨진 체면을 세웠다.

승승장구로 달려온 박찬호에게 올 시즌은 그야말로 최악의 한 해였다. 시즌 중반에는 트레이드 설이 불거지기도 했었고 ESPN 등 미국 언론들은 박찬호를 최악의 투수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후반기 연승으로 다소 자신감을 찾기는 했지만 내년 시즌이야말로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인생을 좌우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다저스 시절과 같이 건재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느 팀에 가도 에이스로 대접받을 수 있겠지만 올 해와 같이 부진한 투구를 계속할 경우, 몸값만 많이 받는 '먹튀'로 낙인 찍힐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 텍사스 감독으로 부임한 벅 쇼월터 감독은 박찬호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던 감독이고 댈러스 현지 여론도 박찬호에게 호의적이지 않아 내년에는 실력으로 자신의 진가를 과시해야 할 상황이다.

10월 10일 귀국 후 "내년 시즌을 기대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칩거에 들어간 박찬호. 과연 '코리안 특급'의 위용을 되찾을 수 있을까.

입력시간 2002/10/3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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