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왜? '막판'에 조흥은행을 팔려 하는가

민영화 서두르는 시점·배경 놓고 논란 가열

“정권에는 임기가 있어도 경제에는 임기가 없다. 은행 민영화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헐값 매각 시비가 야기되지 않도록 가능한 좋은 조건으로 팔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전윤철 재정경제부 장관) ”

정부의 금융 구조조정 폭풍이 연말 대선을 앞두고 거세게 불고 있다.

과거 정권 말기엔 찾아 볼 수 없던 금융 구조조정 바람은 최근 서울은행에 이어 대한생명 매각과 115개 부실 신용협동조합의 무더기 퇴출이란 칼 바람이 돼 숨돌릴 틈 없이 몰아쳤고 이젠 조흥은행 민영화마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에 따라 정권 임기를 3개월도 채 남겨놓지 않은 ‘갈참’정부가 조흥은행의 새 주인 찾기를 서두르는 시점과 배경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금융권 일부에서는 유력 인수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특정 국내외 컨소시엄과 정부의 사전 밀약설을 제기하는가 하면 조흥은행 노조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민영화 스케줄을 비난하며 11월20일 매각 반대를 위한 전면파업에 돌입키로 하는 등 정부(주인)와 은행(매각 대상)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매각입찰 막바지 실시작업

조흥은행 민영화를 위한 정부 보유 지분(80.04%) 매각 입찰에는 신한금융지주회사와 미국계 투자회사인 워버그핀커스 컨소시엄 등 4개 투자자가 이미 선정돼 현재 실사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정부는 일단 조흥은행의 매각이 그동안 추진해온 은행 민영화 시책의 연장 선상에서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의 과정에서 “정부 소유은행의 민영화를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약속한 만큼 국가 신인도와 은행구조조정 마무리 차원에서 조흥은행 지분매각을 연내 마무리 짓겠다는 ‘개혁완결’ 의지를 앞세우고 있다.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11월9일 한 라디오 대담프로에 출연, “은행 민영화는 경영권을 넘기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경영권 인수 의사를 가진 원매자가 등장한 이상 지분 일부만을 넘기는 블록세일은 ‘민영화’가 아닌 ‘민유화’로 지금이 조흥은행의 새 주인을 찾아줄 수 있는 적기”라고 피력했다.

변 국장은 최근 정부가 조흥은행의 민영화 계획으로 제시해온 전체지분 중 일부인 10~20%만을 파는 ‘블록세일(경영권을 배제한 지분 부분매각)’ 방식에서 완전 탈피, ‘원 샷’에 조흥은행을 통째로 매각할 것을 첫 공식 발표한 것이어서 그 파장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의 11월 ‘동투(冬鬪)’를 예고하고 있다


“투명성 결여, 특혜시비에 휩싸일 것”

“독립문이 세워진 1897년 최초의 민족은행 한성은행(조흥은행 전신)이 105년 역사에 최대 시련기를 맞았다. 일제 하 민족을 위해 ‘깡다구’ 있게 생존했던 은행정신을 계승, 사전 합병설이 난무하는 일본계 은행에게 악바리 근성의 매운 맛을 보여주자!(ID: 갈매기)”

“은행 합병의 배후에는 간판 업자가 있다. S은행을 보라. 간판 무지하게 바꿔 달았다.(ID: 장길산)” “IMF위기 당시 공적자금을 투입 받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자구노력 끝에 독자생존 은행으로 인정을 받았다. 부실 가능한 위험 여신에 대한 충당금을 전액 적립하고 체질강화를 통해 내년엔 대규모의 당기순이익과 주가상승이 기대된다. 이 시점에 손발이 묶인 채 우리보다 규모가 적은 모 은행에 잡혀 먹힌다는 것은 할복할 노릇 아닌가!(ID:원통해)”

최근 조흥은행 사내 온라인 망 인트라넷 게시판에는 경영권 매각 추진과 관련, 직원들의 분노와 반발을 담은 내용의 글들이 하루에도 평균 수백 건씩 올라오는 등 총파업을 향한 강경대응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다.

정부의 ‘독자생존 보장’과 ‘단계적인 지분 매각’ 방침만 믿어왔던 조흥은행 임직원들은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조흥은행 직원들이 이같이 반발하는 데는 우선 정부의 은행 민영화 계획과 배치되는 정책의 일관성 결여에 따른 강한 불신이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2000년 7월 금융기관 들의 총파업 직후 노ㆍ사ㆍ정 협의회는 조흥은행의 ‘독자 생존’을 약속했다. 또 재경부는 올해 초인 1월25일 조흥은행의 지분매각을 위한 우선조건으로 시장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게 지분 매각시기와 물량을 최대한 분산하고 향후 3,4년 내 완료를 목표로 단계적으로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방침은 9월 초 서울은행 매각작업이 본격화되면서 뜬금 없이 조흥은행 경영권 매각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정부는 조흥은행 경영진과의 사전 조율 없이 민영화 방식을 일부 지분(10~20%) 매각에서 51%이상 경영권 매각으로 고무줄 늘리듯 입장을 선회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조흥은행 매각 방침이 급선회한 배경을 둘러싸고 최근 뒷거래설이 무성한 것은 그만큼 절차상에 일관ㆍ투명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라며 “정권임기 전에 무리하게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나머지 특혜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헐값 시비, 정부입장은 확고

특히 이번 조흥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매각시기와 가격 부분이다. 증권과 은행 등 금융업계는 공적자금 2조7,000억원이 투입된 조흥은행을 매각하면서 과연 제값을 받을 수 있는가에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최근 조흥은행 주가는 액면가 5,000원 이하인 4,460원(11월8일 종가) 수준으로 올 봄 금융주가 강세를 보인 4월에는 8,000원 대를 육박했었다. 정부는 당시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이유로 지분 매각을 미루었다. 하지만 당시보다 주가가 거의 절반 수준인 현재 이를 굳이 팔려고 서두르는 저의에 의혹의 시선이 몰리고 있다.

정부는 “현 주가보다 높은 값을 내겠다는 원매자가 나타나 매각을 서두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가가 바닥인 시점에 이보다 조금 더 올려 받는다 해도 헐값에 팔아치우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 대해 헐값 매각은 공적 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다는 것과 직결되는 셈이다.

조흥은행엔 외환위기 이후 모두 2조7,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만약 현시점에서 매각될 경우 투입된 그 절반에 가까운 공적자금의 회수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정부의 입장은 확고한 것 같다. 공적자금의 회수도 중요하지만 이미 국민ㆍ주택은행이 합병 1년을 맞았고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이 합병 주총을 완료한데 이어 조흥은행 정부보유지분 매각으로 DJ정권의 은행 구조조정을 완결하겠다는 듯한 의욕적인 분위기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유서 깊은 영국 베어링 은행도 결국 다른 나라의 금융기관에 경영권을 넘겨야 하는 것이 경제의 논리다”며 “노조가 나서서 독자생존 운운하며 총파업까지 거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전략사업 무산 잇따라

정부의 갑작스런 매각 결정은 ‘독자생존’을 전제로 펼쳐온 조흥은행의 각종 전략 사업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카드사업 부문 매각과 방카슈랑스 조인트 벤처 설립 등 각종 전략사업이 좌초될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전체 지분 중 20% 이상 매각될 경우 지난해 정부가 조흥은행과 우리금융 주식을 근거로 발행했던 5억 달러의 오페라본드(선택적 교환사 채)를 조기 상환해야 하는 입장이다.

또 10월 말 GE캐피탈과 카드사업부문 매각 조건을 확정 짓고 국내 유수 생명보험회사와의 방카슈랑스 합작법인 설립 계획도 이미 무산됐다.

11월부터는 은행과 보험 카드 투신 등을 아우르는 조흥 지주회사 설립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었지만 ‘올 스톱’된 상태다. 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은행장에게 조차 한마디 귀띔 없이 경영권까지 넘기려는 일괄매각작업을 일방적으로 진행한 것은 비상식적인 처사가 아니냐”고 비난했다.


주목 받는 신한 라 회장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 얘기해줄 뉴스가 없다. 역사 깊은 대 선배 은행인 조흥은행은 항상 매력 있는 은행으로 생각해 왔다.”

최근 언론의 최대 관심사는 매각 대상 은행인 조흥은행 홍석주 행장 보다 신한금융지주회사의 라응찬(65)회장.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는 주변 시선에 그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라 회장은 조흥은행 인수 추진 건에 대해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다. 조흥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후 평상시와 같이 집무실에서 일상 업무를 챙기고 있는 라 회장은 대외 접촉을 극히 제한하고 있다.

그를 아는 금융계 관계자는 “그의 스타일은 마냥 조심스러운 것만은 아니다”며 “신한은행 사람들은 그의 경영스타일이 서두르지는 않지만 기회가 오면 몸을 던지는 강한 추진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흥은행 인수전 참여도 그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은행권의 이합집산 동향을 살피다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과거 신한은행장 시절에도 라 회장은 소신과 결단력 있는 행장이었다는 게 은행 안팎의 평가다. 그는 행장시절 정치권이나 정부 관료들의 대출청탁을 자르고 한보 등 부실채권을 과감히 회수했다. 덕분에 주주들로부터 절대적 신뢰를 받아 국내 은행장으로선 처음으로 3연임을 하는 기록을 세웠다. 라 회장은 지주회사 회장으로 취임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은행이 합병으로 규모를 갖추고 지주회사 체제가 자리를 잡으면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금융계에서는 신한의 조흥은행 인수 추진은 라 회장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갈참 정부’의 마지막 과업이 될 조흥은행의 일괄매각이 과연 논란 없이 투명하게 이뤄질 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 조흥은행 인수 후보자 군

  • ◇신한금융지주 컨소시엄(자산규모 77조원)

    -프랑스 BNP파리바(912조원)와 미국계 투자펀드 워버그핀커스(188억 달러 펀드 운용) 참여 -워버그 핀커스는 LG카드의 외국인 최대주주(18.9%)


    ◇일본 신세이(新生)은행 (8조엔)

    -1999년 파산한 일본 장기신용은행을 미국 리플우드홀딩스펀드가 사들여 새로 출범한 은행.

    -공격적 영업으로 유명


    ◇미국 서버러스펀드 (57억 달러)

    -댄 퀘일 전 미국 부통령이 고문으로 활동

    -2000년 10월 조흥은행 부실채권 1조4,000억원 어치 매입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2002/11/15 11:45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