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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당신들 가슴속에 있소"

'아줌마'가 본 2002 대한민국 정치

“나, 이번엔 OOO 뽑을 거야.”

“왜?”

“기왕에 땡~하면 나올 건데 우리도 좀 잘 생기고 세련된 얼굴 좀 보고 살자! 하하”라고 말하는 친구에다, “얘야, 이번엔 OOO 뽑아라!” 하는 어르신들, 거기다가 음주운전으로 면허증 취소된 후배 녀석의 “어쨌거나 정권이 바뀌는 쪽으로~! 알았지? 그래야 나, 사면 받을 수 있어!”까지, 이번 대선에 누구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인지에 대한 주변의 견해는 가지각색이다.

내 생각 같아서야, ‘한국에서 여자로 살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후보 쪽으로 기울어지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여성표가 수적으로 중요해지자, 휘황찬란한 여성정책들이 마치 짜놓은 듯이 일렬종대로 각 당사 앞마당마다 펼쳐져 있어 도무지 어느 게 진짠지 헷갈리고 그게 그거 같아 선뜻 손을 내밀기가 어렵다. 내 지인들 역시 말은 저렇게 해도 누구를 뽑을지 쉽게 결정 못하는 눈치다.


적나라한 사이버 검증작업

그런데 웹 서핑을 하다 아주 재미있는 사이트 하나를 발견했다. 올려진 글들을 언뜻 보면 세상을 떠도는 온갖 이야기들을 묻고 답함으로써 공유하는 사이트로 처음엔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게 없어 보였다. 그러다 어느 무료한 날, 컴퓨터 앞에 앉아 여기저기 돌아본 후엔 사정이 좀 달라졌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지식은 사이트 이용자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예컨대(아, 나 역시 만들어가고 있는 중~) 여기 하나의 직육면체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이 직육면체를 ‘마주 대하는 3쌍의 면은 평행이고 합동이며’로 시작해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의를 내린다.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애초에 없다.

그러나 만들어 가는 지식은 조금 다르다.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보는 각기 다른 정육면체에 대한 정의가 가능해진다. 혹자의 눈에 직육면체는 어쩔 수 없이 ‘날카로운 뾰족 산’이고, 또 어떤 이의 위치에선‘지루하기 짝이 없는 평면’일 뿐이며 또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의 눈엔 ‘벼랑 끝의 절벽’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개개의 경험들을 모아 재구성해보면 평면과 모서리, 뾰족한 꼭지를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다. 적어도 백과사전이 말하는 직육면체와는 다르게 형태와 부피감을 갖고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만들어 가는 지식’의 핵은 그 끝이 항상 열려있어서 누구라도 자신이 본 것을 들고나올 수 있는 여지가 늘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군림하는 지식에 익숙한 나로서는 퍽 매혹적인 공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만들어 가는 지식광장에도 대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당연히 대선에 관한 질문들을 쏟아내고, 사이트 규칙대로 각자 자기 위치에서 보는 대선과 후보들에 대한 생각들을 올려놓았다. 이용자들은 특정 후보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비리가 드러난 OOO후보가 유력한 당선자라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또 현재 나와 있는 후보들 중, 절대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은 누구이며 그 이유가 뭔지를 물었다.

또 대통령을 뽑는 기준이 무엇인지, 도대체 누굴 뽑아야 되는 건지, 그리고 왜 우리나라엔 여성 대통령이 안 나오는지 등의 질문들을 던졌다.

이에 대한 답변들도 줄줄이 꿰어져 나와 있는데 내용인 즉, 현재 후보등록을 마친 후보자들 모두가 절대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한 가지 이상씩은 다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중 몇은 차기 대통령 감으로 한번 이상씩은 다 지명을 받았다.

또 적어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면 대선 훨씬 이전부터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며, 패거리 싸움에서 비껴 서서 정말 나라를 염려하고 사랑하며 나라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특정 계층이나 지역과 무관하게 뚜렷한 정치적 노선을 피력할 수 있어야함은 물론이고, 세종대왕처럼 기꺼이 낮은 곳에 임하려는 자질 또한 갖추어야 한다고 사이트 이용자들은 답했다.


묻고 대답하며 바람직한 대통령상 구축

한편 여자 대통령이 나올 수 없는 이유로는 성차별적인 편견을 가장 큰 이유로 들고, 그 다음으로 정치판이 너무 타락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요컨대‘정치판이 워낙 권모술수와 완력이 난무하는 곳이라 여간 억센 여자가 아니고는 주변에서 다들 말리기 때문’이라는 웃지 못 할 이유를 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이용자는 ‘혹시 이런 걸 이렇게 솔직하게 올렸다가 괜히 감옥살이하게 되는 건 아닌지…’하는 우려를 표명해 우리 의식의 한 단편을 아프게 드러내 주기도 했다.

이 사이트 이용자들은 여론조사 결과와 별도로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대통령의 상을 만들어가고 또 누가 가장 적임자인지를 찾아가고 있다. 어떤 답변도 이용자들을 가두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까닭은 사이트의 창 맨 아래쪽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문구에서 찾을 수 있다.

“본 사이트의 게시물은 이용자간의 지식 공유를 위해 이용자가 게시한 것으로 게시물의 정확도에 대해 OOO(회사이름)이 보증하지 않습니다.”

유쾌하다. 누군가로부터 보증 받지 않아도 되니까 맘껏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본 사이트의 게시물들이 유수의 여론조사기관들이 보증한다는 조사의 답변보다 성의가 없을까? 오히려 로그인하고 타이핑까지 해야 하는 쪽이 ‘순간의 판단’을 더 성의 있게 드러내지 않을까.


여론조사의 허구성 지적

후보들은 대선 광장에다 자신들의 메시지를 쏘아 올리고 어떤 응답이 돌아올지 한 길 사람 속을 알 수 없어 막판까지 애를 태운다. 이를 돕는다고 각종 여론조사가 나서서‘민심 읽기'를 수치화해서 보기 좋게 내놓는다. 그런데 그 여론이란 것이 결국은 ‘지금 이 순간의 판단’일뿐이다.

따라서 내일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모른다. 특정 정치인의 인기도가 조사할 때마다 달라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상대의 메시지를 받고 반응하는 것을 예측하는 장치로 등장한 여론조사가 거꾸로 하나의 선택기준이 되어 후보와 유권자 모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높게 나온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게 된다거나, 군소 후보에게 동정표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선거 때만 되면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 그림자 여론이 극성이고 유권자들은 근거가 희박한 그림자 여론에 적잖게 휘둘린다. 그러니 말할 수 있는 입 가진 자들이여, 아무 말 하지 말자! 정책과 사상 혹은 그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 따위의 사실(fact)들 이외에는 제발 말하지 말자!

대선을 한 달 앞 둔 지금, 대선에 후보를 낸 각 당에서는 부동표를 다지고 유동표를 긁어 모으기 위해 ‘민심 읽기’에 총력을 기울이며, 한 발 더 나아가‘민심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떠다니는 민심은 없다. 민심은 바로 겸허한 후보들의 가슴과 따스한 정책 속에 있다. 발밑을 보라!

글: 양은주 정치평론가 wayfar@hanmail.net

입력시간 2002/11/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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