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추락하는 金正日

20여년간 평양을 심층분석하며 아시아 타임스에 ‘평양워치’를 쓰고 있는 트아드리안 포스터-카터(영국 리드대학 한국현대사 연구소 선임연구원)는 11월 5일자 ‘대포냐 버터냐’라는 칼럼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큰 실망을 느꼈다고 썼다.

그는 9월 17일~27일 사이에 고이즈미 총리와 김 위원장의 만남, 남ㆍ북 철도연결 등을 지켜보며 “김 위원장은 변했다. 그는 꼬리를 세우고 흔들기 시작했다. 나 같은 냉소주의자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보인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김 위원장이 유일사상을 내세우며 이끄는 북한이 자위를 내세워 핵을 제조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에 “북한은 여전히 눈을 속이고 구역질 날 정도로 인민을 충성과 단결이라는 거대극장에 몰아 세우는 나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북한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켈리 미 국무부 차관에게 “핵보다 더한 무기도 있다”는 발언은 지금까지 그가 느꼈던 김 위원장의 발언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분명 이번 발언을 적어준 사람은 김 위원장에게 브리핑한 사람의 솜씨가 아니었다. 조금 역설적이지만 추종자가 없는 독재자만이 홀로 정책을 정한다.

그럼 김 위원장의 배후는 누굴가. 포스터-카터는 군부 인사들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군부만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여러 차례 협상에 나선 외교관들은 군부의 비토(veto)권을 말하곤 했다.

그 반증으로 정부를 대변하는 민주조선은 “미국이 만약 불가침 조약과 핵 불사용을 확실히 한다면 북한은 미국의 우려를 해소시킬 용의가 있다”고 썼다.

그러나 당을 대표하는 노동신문은 “제국주의자와 반동분자들과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 여우를 치기에는 몽둥이가 최고며 제국주의자와는 무력으로 싸워야 한다. 미국은 군사력이 약한 나라를 멸시하고, 강도적 요구를 받아 들이도록 한다. 동맹국도 필요없다. 자립갱생이면 충분하다. 정치적, 사상적, 군사기술면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온 나라를 요새화 하자”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군이 당 기관지를 통해 할 수 있다는 것은 신의주 개발과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서두른 김 위원장이 결국 북한의 절대 권력자, 무소불위의 지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낸 것이라고 포스터-카터는 설명했다.

이를 실증 하듯 11월 2일에서 5일까지 평양을 방문했던 부시 전대통령 당시 주한미국대사였던 도널드 그레그(‘코리아 소사이어티’대표)는 초청자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으로부터 “상황이 변했다. 지난 10월 3일자 편지로 약속했던 정보함 푸에블로호 함정의 미국 송환은 취소됐다”는 말을 들었다.

지난 봄에 그레그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평양의 고위층은 1968년 11월 23일 원산앞바다 공해에서 북의 고속정과 미그기 공격으로 원산항에 끌려온 정보수집함 프에블로호를 미국과의 친선과 관계개선 상징으로 돌려 주겠다고 했었다.

그레그와 함께 평양에 간 전 워싱턴 포스트의 동북아 특파원이었던 돈 오버도버(‘두개의 한국’의 저자)는 평양에서 긴장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군장성들에게서는 적의를 느꼈다.

미국의 북한 문제 전문가들에게는 실용적인 군사전문가로 알려진 리찬복 과장의 모습에서 오버도버는 놀랐다. 리 과장은 북한의 판문점 군사대표를 오래 역임했다.

“노예처럼 무릎을 꿇기보다 우리는 싸우겠다”고 새긴 7줄 짜리 리본을 정장에 단 그는 쏘아보듯 오버도버에 말했다. “부시가 우리를 ‘악의 한 축’이라 발언한 것은 활처럼 예고 없이 체제전복을 위한 기습공격을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

그는 김정일 정권을 ‘우리나라’와 동일시했다. 리 과장은 98년 10월 판문점 군사정전위에서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맺고 곧 이어 북한과 한국이 협정을 맺자고 새 평화협정을 제기했다.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지도 않았다.

오버도버는 리 과장 같은 실용주의자가 강경파로 바뀐 이유를 규명하지 못한 채 평양을 떠났다.

여러 증상으로 보아 김 위원장이 군부의 압력이나 부족한 식견 때문에 최근 국제적 이미지가 실추된 것은 사실이다.

베스트셀러 ‘경도와 태도’의 작가이며 뉴욕타임스에 국제문제에 대해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토마스 프리드먼은 서울에 와 “북한의 잇따른 미친 짓에 괴로운 표정을 서울사람들”에 대해 쓰고 있다.

그는 북한은 ‘미친 아주머니’같으며 “실직한 가장이 집에 다이너마이트를 가득히 쌓아 놓고” 이웃이 쌀과 연료를 주지 않으면 폭파시키겠다”고 외쳐대는 ‘이웃’이라고 표현했다. 이 마을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경찰인 미국이 이웃인 한국, 중국, 일본에 “도와주지 말라”고 하지만 이웃들은 “우리는 할 수 없이 이 친구와 같이 지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미친 짓’도 이제는 식상한 것이 되어 김 위원장의 발 밑을 파고있을지 모른다고 그는 결론내렸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11/29 11:10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