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담과 애드립으로 MC평정

개그맨 2세대 전성시대, 개성있는 진행으로 시청자 사로잡아

프로그램 진행자(MC: Master of Ceremonies)의 세대 교체 바람이 거세다. 김용만 김국진 박수홍 신동엽 등 1990년대 초반 대학생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한 개그맨 2세대들의 각종 텔레비전 프로그램 MC 독식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대신 1980년대 방송사 특채나 코미디언 시험 또는 개그맨 콘테스트를 통해 전유성의 뒤를 이어 왕성하게 활동했던 개그맨 1세대들의 MC 퇴조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프로그램의 성격, 인기 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무대 위의 연출자인 MC는 불특정 다수인 시청자들에게 자신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최일선의 방송인이자 방송의 실체로서 인지되는 사람이다.

1990년대 이전 가요 프로그램을 제외한 대다수 TV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바른 언어 실력으로 무장한 아나운서의 전유물이었지만 쇼, 오락프로그램의 인기와 범람으로 연예인 출신의 MC가 급증하게 됐으며 최근에는 연예인 MC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개그맨들의 MC 진출은 단연 눈에 띈다.

개그맨의 MC계로의 진출 현상은 일본 프로그램 형식을 모방한 5~7명의 떼거리 MC로 나서는 버라이어티쇼의 도입, 교양과 오락프로그램의 퓨전화 등으로 교양과 품격을 지닌 아나운서 출신의 MC 보다는 시청자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재담과 재치, 유머가 있는 개그맨이 필요에 의해 나타났다.

또한 전통 코미디 프로그램의 사양화는 개그맨의 활동 무대를 협소하게 만들어 개그맨들이 생존의 돌파구를 프로그램의 MC에서 찾은 것도 원인 중의 하나다.


수다잔치에서 감각적 스탠딩 개그로

서세원, 주병진, 이경규, 이홍렬, 임하룡, 최양락, 이봉원 등 1980년대부터 활동하던 개그맨 1세대들은 이러한 방송 환경 변화의 바람에 편승해 코미디 프로그램 출연보다는 MC로 활동하는 공간이 훨씬 넓어졌다.

이들은 각종 프로그램의 MC로 나서 전형적인 상투성을 보이는 아나운서나 전문 MC와 달리 오랫동안 갈고 닦은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과감한 즉흥대사(애드립)를 구사하며 안방에서 벌어지는 수다잔치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시청자 잡기에 성공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까지 진행을 맡아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들중 일부는 저질대사와 은어의 잦은 사용, 비문법적인 언어 구사 등막?프로그램의 저질화를 초래한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프로그램을 연예인의 사담화장으로 변질시킨 것도 개그맨 MC의 득세 때문이라는 지적도 이들 1세대 개그맨들에게 쏟아지는 비판이기도 하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과 일부 개그맨의 겹치기 출연으로 인한 시청자의 식상함, 교양 프로그램의 오락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1990년대 들어 연예계에 입문한 개그맨 2세대로 MC의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 것이다.

개그맨 2세대라는 김용만 김국진 박수홍 남희석 신동엽 정선희 등은 애드립뿐만 아니라 신세대적 감각으로 무장해 오락 프로그램의 주 시청자 층인 10~20대의 감성을 자극해 시청률을 높이고 있다. 또한 이전 세대와 달리 인터넷 등을 활용한 소재 개발 등을 통해 유행을 한발 앞서는 트렌드를 창출하고 있다.

개그맨 2세대들은 에피소드 중심으로 전개되는 전통적인 콩트 코미디나 치고 받고 넘어지는 슬랩스틱 코미디에서 연기위주의 코미디를 한 것이 아니라 서서 말로 웃기는 스탠딩 개그를 주로 해 시시각각 변하는 분위기에 맞는 대사구사나 즉흥대사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데다 방청객 등을 사로잡는 장악력이 높아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로 인해 요즘 개그맨 2세대들의 활약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용만의 경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섹션TV 연예통신’ ‘느낌표’ 그리고 KBS ‘김용만 박수홍의 특별한 선물’ 등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며 박수홍은 MBC ‘타임머신’ ‘일요일 일요일 밤에’, KBS ‘주주클럽’ ‘김용만 박수홍의 특별한 선물’의 MC를 하고 있다.

또한 신동엽은 KBS ‘해피투게더’, SBS ‘신동엽 김원희의 헤이 헤이’ ‘TV 동물농장’ ‘신동엽 남희석의 맨 투 맨’의 진행자로 나서고 있으며 여성 개그맨 2세대로 선두 주자인 정선희의 경우 MBC ‘맛있는 TV’, KBS ‘기적체험 구사일생’ ‘두뇌쇼! 진실감정단’ 등의 MC로 활동하고 있다.

골프에 전념하느라 방송 활동을 일시 중단했던 김국진은 이번 가을 개편을 계기로 MBC ‘꿈꾸는 TV 33.3’의 MC로 복귀했으며 케이블TV에서 그 동안 진행해왔던 골프 프로그램 ‘골프 파워쇼’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잠시 휴식기를 가졌던 남희석 역시 이번 가을 개편에서 KBS ‘남희석 장나라의 러브 스토리’와 SBS ‘신동엽 남희석의 맨투 맨’의 진행자로 나서 특유의 진행솜씨? 뽐내고 있다. 이밖에 유재석 이휘재 김수용 송은이 등도 많은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신동엽ㆍ유재석 등 맹활약

이들 개그맨 2세대들은 한 주일에 적게는 2 개 많게는 4개의 프로그램을 겹치기로 출연하고 있다. 개그맨 2세대들의 진행 스타일 역시 나름대로 매우 개성이 강하다.

신동엽은 과장된 행동과 언사 그리고 시청자의 흡입력이 뛰어나고, 남희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본에 없는 즉흥대사의 달인으로 예상치 못한 웃음을 자아낸다.

김용만은 시청자들이 별 부담 없이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도록 편안하게 진행하지만 진행 도중 툭툭 던지는 재치 있는 입담은 보는 이에게 유쾌함을 선사한다. 또한 세련됨보다는 어눌함이 트레이드마크인 김국진은 친근한 이미지로 진행하고 있으며 박수홍은 어수룩한 분위기에서 드러내는 순발력이 탁월하다.

물론 2세대 개그맨의 득세 가운데에서도 이홍렬과 이경규 이경실 김미화 등 개그맨 1세대들의 활약 역시 전성기에 못지않다.

노련미까지 갖춘 이들 중 진행자로서 바른 언어구사, 시청자의 허를 찌르는 즉흥대사, 편안한 웃음을 유도하는 자연스러운 진행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홍렬은 KBS ‘스타 집현전’, SBS ‘깜짝 스토리랜드’ ‘러브 투나잇’의 MC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경규는 MBC ‘전파견문록’ ‘느낌표’ ‘야한 밤에’ 등을 진행을 하고 있다.

제 1세대 개그우먼으로 꼽히는 이경실과 김미화 역시 다양한 프로그램의 메인 진행자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개그맨의 MC 독식현상은 프로그램의 성격과 방송환경에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왔다.

교양 프로그램의 오락화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이고 방송 초창기부터 MC의 본령을 유지한 아나운서들의 체질과 이미지 변신이다. 연예인 등에게 밀려 프로그램에서 설 자리를 잃은 아나운서들이 기존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연예인보다 튀는 행동과 대사 등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프로그램에 재미를 가져오는 긍정적인 기능도 있지만 개그맨 MC의 독식현상은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가장 큰 것은 여전히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고 있는 저질언어나 은어, 비어, 외래어의 남발과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아 시청자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질적 완성도를 하향 평준화시켰다.

또한 한 개그맨이 서네 개의 프로그램을 겹치기로 진행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식상함을 느낀다는 시청자도 꽤 많다.


틀 깬 순기능, 독식 부작용도

이밖에 연기하는 개그맨의 감소로 인해 코미디의 사양화가 두드러진 것도 큰 문제다. 많은 시간과 노력 연습이 요구되는 코미디나 개그 프로그램, 시트콤 등에 출연하는 것보다 적은 시간투자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MC를 선호하는 개그맨들이 많아져 코미디 프로그램이 명맥을 잇지 못하고 있다. 수년동안 개그 연기를 하지 않는 개그맨들이 부지기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고인이 된 이주일은 “요즘 개그맨들 중에 재주가 좀 있다고 잘난 척 하는 친구들이 꽤 많은데 코미디는 할수록 어렵다. 우리나라 코미디언중에 몇백명을 모아놓고 20분이상 웃길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5명도 안될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해도 시원치 않을텐데 젊은 친구들이 방송출연과 돈벌이에만 신경 쓰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개탄했다.

코미디계의 대부 구봉서는 “노래하는 것보다 웃기는 일에만 열중하는 가수나 코미디언이면서 연기는 하지 않고 진행에만 열중하는 개그맨은 본말이 전도된 연예인으로 이것만큼 웃기는 일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물론 김국진 처럼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시트콤이나 코미디 프로그램에 끊임없이 출연해 개그맨으로서 본분을 지키려는 연예인도 있다. 하지만 진행에만 전념하는 개그맨들은 이제 그들로 인해 야기된 방송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코미디의 부활에도 책임을 질 의무가 있다는 것을 절감해야 할 것이다.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입력시간 2002/12/0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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