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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의 경제서평] 한국정치·경제의 현주소는?

[이상호의 경제서평] 한국정치·경제의 현주소는?

■ 큰 손과 좀도둑의 정치경제학
(최윤재 지음/ 나무와 숲 펴냄)

'큰 손'하면 우선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뭔가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 1982년에 터진 장영자ㆍ 이철희 사건이 말해주듯 특별한 정치ㆍ경제적 배경을 이용해 떳떳치 못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음습한 지하세계가 연상된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큰 손'은 그렇지 않다. 정반대의 의미를 갖기까지 한다. 그것은 지도층, 지배 구조를 뜻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제의 큰 손은 시장 지배력 또는 독점력을 갖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정치의 큰 손은 권력 또는 강제력을 갖는 정치 세력을 각각 가리킨다. 그렇다면 '작은 손'은? 사회에 많은 피해를 주면서 자신의 작은 몫을 기꺼이 추구하는 집단이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좀도둑'이다.

이 책의 주제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잘 되기 위해서는 큰 손이 큰 손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큰 손답다는 것은 주인 의식을 가지고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을 말한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그 밖의 체제들과 다른 점은 자생력, 즉 저절로 굴러가는 힘에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마다 알아서 하되 그 결과를 다 합한 것이 모두에게 보탬이 되도록 꾸며져 있는 사회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잘 해내는 나라다. 그런데 저마다 알아서 하도록 하는 힘은 주인 의식에서 나온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개방과 경쟁을 시켜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이 효과를 거두려면 그 이상이 필요하다. 제도적 조직적 뒷받침을 해줘야 하는데, 제도와 조직은 개방이나 경쟁과는 정반대다. 이것이 이 책이 말하는 큰 손 이야기다.

나라의 위쪽에서 정치와 경제를 주무르는 큰 손들이 튼튼해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튼튼해지는데, 이 큰 손들에게 정말 아쉬운 것은 역설적으로 개방이 아니라 진입 장벽이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나 주인을 받들 줄 모르는 사람은 함부로 손대지 못하도록 큰 손에는 빈틈없는 진입 장벽이 마련돼 있어야 하며, 그 안에서는 주인을 받드는 것 말고는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엄격한 규제와 감시, 그리고 많은 장치들이 필요하다.

이 책은 현재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나라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알아보고, 우리나라의 경우를 되돌아 본 후 우리나라의 큰 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살펴본다.

역사는 냇물처럼 콸콸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끈적끈적한 꿀처럼, 또는 늘 제자리로 보이는 빙하처럼 아주 조금씩 만 앞으로 나아가는, 그러나 그나마 조금씩 이라도 나가려면 방향을 잡고 온 힘을 다해 밀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대 전제다. 또 논리 전개에 있어서는 고전 경제학이 아니라 제도의 꼼꼼한 설계를 강조하는 현대 제도경제학에 따랐다.

역사적으로 보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독점과 폭력 속에서 자라났다. 그 독점과 폭력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큰 도둑, 큰 손이다. 사회를 완전히 장악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큰 도둑은 그 사회의 안전과 번영을 지키게 된다. 사회가 잘 살아야 자신도 그만큼 잘 살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자기 것이니까 소중히 다루고 키워간다. 스스로 앞장 서 자신의 돈 주머니를 털어 치안, 소방, 도로 건설과 같은 공공재를 대기도 한다. 이러한 큰 손들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완성해 나갔다. 주인 의식인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해방 전은 사또 마음대로, 이승만 정부는 수도꼭지 마음대로, 박정희 정부는 미우나 고우나 큰 손, 전두환 정부는 큰 손 흉내를 내기는 냈는데, 노태우 정부 이후는 민주화를 하기는 했는데 등으로 분석했다. "우리나라가 왜 푸석푸석하게 됐는지 역사에 비추어 생각해 보기 위한 것이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의 근본 문제는 위쪽이 겉보기보다는 대단히 허술하다는데 있으며, 때로는 아래쪽을 강화하는 것보다 위쪽을 강화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특히 개혁과 관련해서는 정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큰 손은 정당 행정관료 대통령 금융자본 기업 등인데, 후발자의 이점을 가지고 선진국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바탕에 깔린 주의의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정치 경제는 왜 허약한가'라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책으로 만들면서 236개 각주와 147가지 참고 문헌을 생략했다. 더 많은 독자들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몇몇 중요한 것들은 남겨두었으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입력시간 2002/12/0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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