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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플레이가 의심받는 풍토

가능성 연 민주주의 싹, "죽기살기 선거전에 밝힐라" 조마조마

감동의 한 주가 지나고 드디어 제 16대 대통령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주말 민주당과 통합21의 후보단일화는 그 볼품 없던 시작과 달리 경이로운 장면을 연출하면서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발표 직전까지 양당 후보 주변의 관계자들조차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을 정도의 철통보안이 유지된 상태에서 11월 24일 밤 12시 민주당과 통합21의 후보단일화를 결정짓는 역사적인 발표가 있었다.

예정된 시각의 신속ㆍ정확한 발표로 승자와 패자가 엇갈리고 곧이어 군더더기 없는 패자의 승복과정이 야심한 밤TV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끝까지 선전해주고 축하메시지를 보낸 정몽준 후보에게 감사 드린다는 승자의 말이 있었다. 어쩌면 승자로서 그 말은 쉬울 수 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은 바로 그 직후에 일어났다.

“노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간결한 패자의 한 마디였다. 그리고 또? 그 뒤에 뭔가 더 나와야 할 것 같은데 그걸로 그만이었다.

결과가 발표된 직후 이어진 두 후보의 인터뷰와 각 당의 표정들이 TV화면을 채우고 지나가는 불과 몇 분 동안 줌마는 어느 당의 누가 단일 후보로 확정되었는가 하는 사실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런 일이 없었음을 확인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딴 짓하는데 뭐 있다!) 한 술 더 떠 그 순간, 일찍이 우리 정치사에서 경험하지 못한 ‘페어플레이’의 가능성까지 점치면서 말이다.

잠시 후 좀 정신을 수습한 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장면을 목격하고 감동을 받았을지, 또 저렇게 폼 나게 단일화를 이룬 사람들의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이 될 것인지에 대한 흥분과 기대감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기 어려웠다.

별반 변별성 없는 후보들이 몇 중, 몇 강 구도로 얽히고설키던 저간의 대선에 비해 이번 선거에서는 선택하기에 한결 편한(?) 2강 구도의 큰 그림이 그려질 테고 결과적으로 두 후보가 벌일 박빙의 접전이 이번 선거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되리라는 예상도 가능했다.


달라진 세상이 계속 될까?

바로 이튿날 아침, 세상은 좀 달라져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었다.

역시 도처에 ‘아름다운 패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이번엔 정말 한번 해볼만하지 않아요?’라며 달라진 세상의 아침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이번 후보단일화를 여느 선거 때나 보는 이합집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 역시 곳곳에 박혀있었다.

줌마 역시 처음엔 후자에 속해 있다가 뜻하지 않은 상황 전개에 아주 심각한 혼란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줌마 뿐 아니라 좀은 달라진 세상의 아침을 기꺼워하는 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 모두 내심으로는 이 새로운 상황에 대해 얼떨떨하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더 두고 봐야지 알 수 있다는 신뢰에 대한 불쾌한 내성의 꿈틀거림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우리 모두의 지병이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났다. 그러니까 이틀째 되던 날 아침, 또 다른 가능성을 시사하는 뉴스가 신문의 1면 톱을 장식했다.

‘정몽준 대표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요구로 인해 노-정 공조체제에 첫 난항’

우리의 불쾌한 내성은 이제 뚜렷한 형체를 드러내기 위한 세포분열 단계에 돌입했다. 하나의 강한 꿈틀거림에서 시작해 패배주의와 피해의식을 낳기 위해 의심하고 불안해 하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너무 쉽게 간다 했어!’라며 자조하거나 ‘애초부터 문제가 있었고’결국 ‘나눠 먹기’수순을 밟는다고 비난하는 목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패배’에 침을 뱉었다. 다시 원상 복귀인가. 기껏 3일 천하로 우리의 희망과 기대가 다시 창고 속으로 처박혀야 하나.

그런 가운데 27일부터 대선 후보들은 이 새로운 세기에 자신들이 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지를 담은 출사표를 내놓았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선거운동도 시작이 될 거란다. 그러면 지금까지 한 건 뭔가 하는 의문은 잠시 젖혀두고, 앞으로 보게 될 선거운동은 또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지에 관심을 집중해보자.

그리고 후보단일화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서 확인했듯이 극적인 감동과 자조 섞인 불안과 회의가 극명하게 교차하는 우리들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또 다시 피 튀기는 상대 흠집내기

우리는 지금 또 다시 서로 헐뜯고 피로 칠갑을 하는 선거전을 봐야 하는가.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을 예견할 수밖에 없다고 자신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불신과 미숙의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하는 맹세의 대부분은 어제 밤의 밀담으로 짜 맞춰진 퍼즐놀이와 다를 게 없는, 따라서 다른 그림에는 절대 사용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우리“?너무 익숙하다.

또 권력을 가진 사람이 국민과의 약속 따위를 지키지 못한들 그게 무슨 큰 죄가 되겠느냐는 말은 우리가 이 사회를 유지하고 관통하는데 반드시 있어야 할 하나의 상식(?)이 되어왔다.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골목의 여느 꼬맹이들의 놀음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정당 간의 감정적인 비난과 쌈질에는 이제 이골이 나있다.

우리는 어떤 후보에게도 감동받지 못하고, 어떤 후보도 국민을 감동시키는 일에 주목하지 않는다. 더 이상 손해보고 싶지 않아서, 더는 다치거나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우리는 하나, 둘 정치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있는 중인 건 아닐까.

줌마 생애에 처음으로 본 놀라운 합의 과정을 겨우 3일 만에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정치현실이란 이름 속에 매몰시켜버려야 하는가. 현재까지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공조체제에 큰 이변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번 대선 최대의 쟁점이 되리라던 ‘분권형 대통령제’를 단일후보 노무현이 수용함으로써 가닥을 잡아나가고 있다. ^한편 본격적이고 적나라한 선거전이 유혈사태도 불사하리란 예상을 뒤엎지 못하고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상대편 후보 깎아 내리고 흠집을 내고, 나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우기고, 따라서 나를 제외한 모두는 사이비고… 벌써부터 귀가 윙윙거린다.

며칠 전, <주간한국>의 한 독자로부터 메일이 날아왔다.

내용인 즉, 해방 이후 실행하기 시작한 우리의 민주주의의 나이로 미루어 아직은 그렇게 성숙되고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강산이 변하는 세월이 두어 번 더 지나간 후엔 확실히 달라지지 않겠느냐, 적어도 그때쯤이면 밀담의 존재근거 따위는 희미해지고 약속은 더 이상 깨기 위한 어떤 것이 아닐 수 있을 것이니, 우리가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독자의 말처럼 이제 막 새로운 가능성을 연 우리 민주주의의 싹을 지켜보다 뜬금 없이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인공 태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친구에게 한 말이 떠오른다. “나, 지금 떨고 있니?”

양은주 정치평론가 wayfar@hanmail.net

입력시간 2002/12/0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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