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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돌아온 '여고시절'의 이수미

‘여고시절’, ‘사랑의 의지’,‘내 곁에 있어주’로 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이수미가 20년 만에 새 음반을 들고 돌아왔다. 대단했던 인기만큼이나 온갖 사고들로 점철된 비련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녀의 재기는 기적과도 같다.

이수미는 “30년 전에 발표한 내 노래 ‘여고시절’이 지금도 불려지다니. 믿어지지 않아요”라며 흥분한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전남 영암의 시골소녀 이수미는 목포여고 시절 언니 옷을 빌려 입고 몰래 가발을 쓰고 목포 KBS노래자랑에 나가 5주 연속 우승을 하면서 대중가수로 입문했다. 이후 오아시스 손진석 사장에게 픽업돼 상경하면서 본격적인 가수로 나섰다.

이때가 1970년. 데뷔시절 그녀는 김하정의 ‘사랑’, 김상국의 ‘불나비’등 당시 유행하던 팝 재즈계열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1971년 첫 음반취입은 남국인의 ‘때늦은 후회지만’, ‘배 떠나가네’ 같은 트로트 곡이었다.


70년대 최고 여가수

1972년 초 발표한 ‘여고시절’은 정훈희, 김태희 등과 함께 70년대 최고의 여가수로 떠오르게 했던 그녀의 대표 곡. 그녀는 신인가수상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MBC 10대 가수와 TBC 7대 가수에 선정되는 진 기록을 남겼다.

사실 ‘여고시절’은 오아시스 전속가수 모두가 불러본 노래였지만 가장 마지막으로 부른 이수미가 주인이 된 사연을 가지고 있다. 탄력 있고 구성진 목소리에다 청순하고 귀여운 용모까지 갖춘 그녀는 특히 젊은 남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호사다마라 할까. 달콤했던 인기는 혹독한 대가를 요구했다. 1973년 여름, 당시 언론 지면을 뜨겁게 달구었던 ‘대천 해수욕장 면도칼 자해사건’이 터졌다. 일약 스타덤에 올라있던 이수미에 관한 이 사건은 당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법정문제로 확대되었지만 끔찍한 사건을 기억하기 싫었던 그녀가 ‘스스로 자해를 한 것’으로 합의 종결되었다. 하지만 ‘자해가 아닌 모 방송국의 유명DJ가 저지른 짓’이라는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이 사건으로 이수미는 여자이기를 포기해야 했다. 1년 후인 1973년 말, 그녀는 ‘조용히 살고 싶어’라는 곡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1975년 김영광 작곡 박건호 작사의 ‘내 곁에 있어주’는 명예회복은 물론 TBC 최고 여자가수상과 MBC 10대가수상을 받고 MBC최고 인기 곡에 선정되는 등 부활의 생명력을 안겨주었던 공전의 히트곡이었다.

하지만 ‘내 곁에 있어주’란 가사를 성적으로 빗대 저급하게 변조한 노래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73년 대천사건을 기억하는 짓궂은 남성들이 빚어낸 장난이었지만 이수미 본인은 견디기 힘든 수치심과 정신적인 고통으로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이후 그녀는 절대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억울하게 걸려든 대마초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1980년, 활동 규제가 풀릴 때까지 그녀는 세상을 저주했다. 이 시기는 마음의 문을 닫고 외부와 스스로를 차단했던 은둔의 세월이었다. “마약과 술, 담배로 망가졌다”는 헛소문과는 달리 그녀는 기도원에서 신앙생활로 고통을 견뎠다. 하지만 미어지는 좌절감은 모든 기를 막아왔다. 늘 뒷골이 아팠다.

하지만 자포자기 심정으로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했더니 목소리에 이상이 왔다. 고음이 약해지고 탄력이 사라진 목소리에 울고만 싶었다.

명콤비인 김영광의 곡 ‘죄가 되나요’란 타이틀곡으로 재도전을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군부정권의 ‘정화 대상 연예인’에 올랐다. 터무니없는 족쇄가 다시 채워지자 그녀는 실어증에 걸릴 만큼 정신까지 황폐화되었다. 1985년 김영광과 함께 ‘슬픈 행복’‘좋은 일이 없을까요’등으로 마지막 재기의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이 후 그녀는 사망설까지 나돌며 대중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잠적 중에도 그녀는 노래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1990년 마음의 문을 열고 혼자 노래방에 가서 노래연습을 시작했다. 또한 6개월 동안 창을 배우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이후 10년간 그녀는 남모르게 피나는 훈련을 했다.

1997년, 제2의 인생이 다가왔다. 주인공은 의료기 사업을 하는 지금의 남편 배제동씨. 후배 임애균씨의 소개로 만난 배씨는 그녀의 ‘수호천사’였다. 97년 11월 20일 외롭게 홀로 살아오던 그녀는 결혼과 함께 두 딸을 얻었다. 고아원에 봉사갔다가 우연히 만나 입양한 정은씨와 배씨의 딸 정아 양이다.

그녀는 비로소 꿈에도 그리던 단란한 가정을 꾸몄다. 누구보다 더 혹독한 인생의 시련을 겪어온 그녀는 뒤늦게 인생의 참 맛에 푹 빠져 있는 듯 행복해 보였다. 그녀는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 더욱 단란합니다. 불행을 겪어봐서인지 지금의 행복이 너무도 소중해요”라며 눈시울을 적신다.


정신적 황폐 치유해준 가족

엄마와 딸이 서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큰딸은 세 살 때 낳아준 부모에게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자라야 했던 상처를 갖고 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난 것은 정은씨가 중학교 3학년 때. 그리고 만난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엄마’란 소리를 들었다.

이수미는 “지금도 그 순간을 숨이 막혀온다”고 말했다. 작은딸 역시 친 엄마가 가출을 했기 때문에 충분한 사랑을 못 받고 자라났다. 이수미는 “지금은 아이들이 잘 웃고 많이 밝아졌어요”라며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평범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최근 SBS 시트콤 ‘여고시절’에서 자신의 노래가 타이틀곡으로 나오고 신세대들도 흥얼거리며 부르는 것을 본 그녀는 용기를 얻었다. 2001년, 시아버지가 가수로 재기를 꿈꾸는 며느리인 자신에게 오디오 풀세트를 선물했다.

남편도 노래연습을 할 수 있도록 작업실을 마련해 주었다. 그녀에게 작업실은 가족들이 한데 모여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무대보다 소중한 그들만의 공간이다. 2001년, 72년의 히트음반을 남편이 직접 재킷디자인을 해 CD로 내주었다.

이수미는 “너무 신났다. 나도 CD가 있구나하는 마음에 행복했다”며 “아직도 이수미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올해 10월 데뷔 30년을 기념하는 신보를 발표했다. 20년만에 다시 낸 음반이었다. 여러 작곡가들이 그녀의 재기소식을 듣고 선뜻 곡을 만들어주었다.

여고시절 등 왕년의 히트곡 3곡을 리메이크하고 신곡 ‘또다른 세상에서’를 타이틀곡으로 꾸몄다. 20년 동안 쉬었던 목청에 대한 걱정은 미사리 카페 촌에서 한 달 동안 공연을 하며 극복했다. 그녀는 “무대에 올랐을 때 얼마나 신이 나던지… 아직도 제 노래를 기억하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정말 몰랐어요”라며 밝은 모습을 내보였다.

올해 11월 30일 이수미는 선배 최희준의 콘서트 마지막날 무대에 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담은 재기 곡을 불렀다. 그녀는 이날 27년전 자신의 재기곡이자 스스로의 금지곡인 ‘내 곁에 있어주’를 모처럼 부르며 세상과 다시 교감을 시작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건재함에 감격한 올드 팬들은 “그동안 힘든 삶을 살아온 이수미씨가 이제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며 “밝은 모습으로 다시 노래하는 것을 보니 더욱 반갑다”고 격려했다. 12월 2일에는 정훈희와 부산 롯데백화점에서 우정의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시련과 아픔 털어내고 재기

다소 허스키한 저음의 창법으로 변한 이수미는 “이제 저는 한 남자의 여자로 다시 태어났고 엄마가 되었고 가수로도 다시 태어났어요. 지금 더없이 행복합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 하는 이수미. 그녀의 새 노래는 자신의 인생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솔직했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는 모처럼 팬들의 가슴을 파고들고 있다.

이수미는 “다시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모든 분들 앞에서 마음에 담아두었던 모든 감정의 찌꺼기들을 노래로 날려보내는 삶을 살고 싶어요. 아팠던 것 미웠던 것들을 하나하나 내보내면서 모든 것을 이젠 사랑하려 해요”라고 밝혔다.

“대중가요는 이번이 마지막이고 앞으로는 복음성가를 주로 부르고 싶어요”라며 향후의 음악적 방향도 조심스레 들려주었다.

그녀는 “인천의 집을 작은 딸이 고등학교를 마치는 내년 이후에 호젓하고 공기 좋은 곳으로 옮기려 한다. 내년에 분당에 음식점을 개업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생의 좌절 뒤에 소중한 제2의 인생을 얻고 20년 만에 대중에게 돌아온 이수미의 모습은 한없이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2002/12/2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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